300
제국의 황제, 이반 크라치아는 내게 목줄을 채웠다.
금속 목갑은 서늘하게 내 살을 감싸고 있다. 폭약이 내장됐다면 내 머리가 터지는 건 일도 아니다.
아무리 단련하더라도 목에서 터지는 폭발을 견뎌낼 방법은 없다.
개척신전에 들어오자마자, 어떤 연유로 내 목갑은 이상 반응을 일으켰다.
치직, 칙.
나는 목갑에서 흐르는 전류를 느꼈다. 내장된 장치가 작동할 것 같았다. 그게 폭탄인지 아닌지는 알 방도가 없다.
이게 폭탄이라면, 난 죽음을 피하지 못한다.
세상이 느리게 보인다.
목갑의 이변에 반응하는 건 나만이 아니었다.
교구장도 눈을 가늘게 뜨며 날 보고 있었다. 그는 검은 손을 내게 뻗고 있었다.
촤르륵!
교구장의 소매에서 보석으로 장식된 사슬이 나왔다. 팔찌와 연결된 사슬은 포스의 빛을 머금더니 뱀처럼 홀로 움직였다. 저 팔찌와 사슬이 그의 포스 촉매인 듯했다.
“가만히.”
교구장이 나직하게 말했다. 그의 사슬 끄트머리가 날아오더니 내 목갑을 두드렸다.
키- 잉!
목갑과 사슬이 부딪치는 소리가 청명하게 울렸다.
우웅!
내 목갑은 포스의 빛에 둘러싸였고, 이윽고 ‘정지’했다.
우우웅.
포스 에너지의 미약한 진동만이 내 목에서 일고 있었다.
나는 목갑에서 일어난 기현상을 응시했다.
“……그 장치를 벗으시는 게 좋겠지만, 스스로 벗지 못하는 모양이군요.”
교구장은 내 목갑을 가리키며 말했다.
칙, 칙.
신전 내부에선 단말기나 망막 디스플레이 같은 전자장비가 오류를 일으키고 있었다. 의체도 묘하게 무거웠다. 보조적인 기능이 꺼진 탓이었다.
외부와의 통신도 완전히 끊어졌다. 신전 내부에 들어서니 바깥 세상과 격리된 느낌이었다.
‘전자장비 무력화.’
전자기파로 인한 무력화는 아니었다. 내 의체나 장비들은 전자기 차폐 등급이 무척 높았다. 열감이 느껴질 강도의 전자기파를 집중적으로 쐬야 오류가 날 터다.
‘포스 능력이나 아케인 기술을 응용한 코라의 기술인가?’
코라는 물리 현상을 벗어난 힘을 사용한다. 추측하기가 상당히 까다로웠다.
“그 목갑은 전자적 작동이 멈추면, 내부에서 특정한 장치가 가동하는군요. 상당히 정교한 기계식 장치인가 봅니다. 사람 한 명을 구속하기 위한 장비치곤 호화롭군요.”
교구장이 그리 말했다. 그의 동공은 무언가를 꿰뚫어 보듯 새파랗게 빛나고 있었다.
‘심상치 않은 인물이다. 그리고 이질적이야.’
코라의 인물들은 여전히 내게 낯설다. 그들이 사용하는 기술과 능력도 독특했다.
“뭐, 사정이 있…… 습니다.”
난 말꼬리를 끌다가 경어를 썼다.
“저와 멀리 떨어지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제 능력의 범위가 그리 넓진 않으니까요. 구속을 위한 목갑이니 내부 장치가…… 온화하진 않을 것 같군요.”
“물리적으로 제 목갑은 ‘정지’한 상태입니까?”
내가 묻자, 교구장이 눈썹을 치켜떴다.
“현상 인지가 빠르군요. 정확히 말하면 ‘감속’입니다. 우리의 인지로 정지했다고 느낄 만큼 천천히 시간이 흐르는 거죠. 자세한 건 형님에게 들으시면 됩니다.”
교구장은 가야에게 턱짓하더니 등을 내보이며 앞으로 걸어갔다.
슥.
나는 포스 능력으로 정지한 목갑에 손가락을 댔다. 온도감이 미적지근한 얼음을 만지는 듯했다. 질량이 사라진 것 같기도 했다. 나도 처음 경험하는 특이한 감각이었다.
가야가 내 옆에서 설명을 덧붙였다.
“감속장이라고 부르는 포스 능력입니다. 물리 현상 자체를 느리게 만들죠. 아우님, 아니, 교구장님 수준의 능력자라면 실질적으로 ‘정지장’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내 천성은 싸움꾼이다. 내 머릿속에선 감속장의 사용법에 대한 전투 시뮬레이션이 무수히 많이 떠올랐다.
‘상당히 까다롭군. 응용할 여지가 무궁무진해.’
교구장은 날 위해 포스 능력을 유지하고 있다. 능력의 촉매인 팔찌와 사슬은 은은하게 빛나며 중력을 거스르듯 흐느적거렸다.
“여기가 응접실입니다. 형님께선 이 방이 그리우시겠군요. 확장 공사 이전에는 집무실로 썼던 방이니 말이죠.”
교구장이 문을 열더니 안쪽 소파에 앉았다.
나와 가야도 맞은편에 앉아서 교구장과 마주했다.
소파 사이에 놓인 탁자에선 김이 모락모락 솟구치는 주전자와 찻잔이 있었다.
쪼르르르.
교구장이 능숙하게 따뜻한 차를 따르더니 우리에게 내밀었다. 찻물이 붉은 홍차였다.
교구장은 먼저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입을 열었다.
“지금 보더시티는…… 상당히 혼란하죠. 교단에서도 주의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불경한 사이보그, 루카우스 쿠스토리아도 제 이목을 끌었죠.”
교구장이 날 슬며시 바라봤다. 내 반응을 살피듯이 말이다.
내 신경계가 팽팽해지는 것 같다.
‘코라 신성국, 보더시티의 개척신전, 교구장.’
지금까지 보더시티에 겪었던 사건을 돌이켜 봤다. 나는 코라 신성국을 이번 사건의 흐름과 별도의 존재라 생각했다. 그들의 존재는 내 사고와 계산에 없었다.
그러나…… 코라는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어쩌면 개입을 했을지도 모른다.
코라라는 변수가 내 머릿속에 들어가면서 정리된 사건과 흐름조차 새로이 얽히고 있었다.
“교구장님께서 이 청년이 키누안을 찾는 걸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신성국의 장비를 키누안이 쓰고 있더군요. 불법적으로 새 나갔을 터니 교단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은 추적일 겁니다.”
가야가 공손히 말했다. 호칭도 아우가 아닌 교구장으로 굳어졌다.
“강해지기 위해 멀쩡한 사지를 잘라 기계를 덧댄 자를 제가 도와야 합니까? 머지않아 온몸을 기계로 바꿀 사내를?”
교구장이 웃으며 말했다.
코라는 의체에 대한 거부감이 유독 강했다. 특히 멀쩡한 육신을 버린다는 행위를 신성 모독이라 생각하는 듯했다.
“이자의 정신은 기계에 오염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보증하죠.”
가야의 말에도 교구장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날 훑어봤다.
“아직 오염되지 않았을 뿐이겠죠. 하지만 당장은 쓸모가 있어 보이는군요.”
나는 입이 근질근질했다. 빠르게 본론을 꺼내고 싶었다.
‘다 알고 날 들여보낸 거다. 교구장은 나와 협상할 생각이야.’
교구장이 날 써먹지 않을 생각이었으면, 입구에서부터 내치거나 ‘목갑의 장치’가 가동하는 걸 구경만 했겠지.
난 질질 끄는 건 질색이다.
“……교구장님, 제게 원하시는 게 있으시면 말씀하시죠. 해결사 역할은 질리도록 했으니까요. 세간에선 저를 명탐정이라고도 부릅니다.”
내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부드럽게 말해보려고 농을 던졌으나 무용한 듯했다.
교구장은 눈살을 찌푸리며 권위적인 표정을 지었다.
“형님의 요청이 아니었다면, 당신은 여기에 발도 들이지 못했을 겁니다. 그 사실을 명심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흔히 겪는 협박이다. 익숙해서 화도 나지 않았다.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군요. 교구장님께선 절 불경하다 칭하시면서 정작 키누안과 협력하시지 않았습니까? 키누안이야말로 전신의체인데 말이죠.”
난 날카롭게 찌르듯 말했다. 내 추측이 맞을 터다.
‘키누안의 부하들, 데드로닌이 사용한 장비는 교구장에게 제공받은 거다.’
키누안과 교구장 사이에는 모종의 협력 관계가 있었다. 그러면 나는 키누안의 능력을 과대평가하지 않아도 된다.
‘키누안이 그간 보더시티에서 활동하면서도 몸을 숨길 수 있었던 이유, 데드로닌을 조직하며 부하를 키울 수 있었던 까닭.’
폐쇄적인 세력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수수께끼 같던 키누안의 행방이 현실에서 보였다. 그는 밑바닥이 없는 괴물이 아니다. 현실의 존재이며 나와 같은 사람이었다.
“교구장님, 지금 이 사내의 말이 사실입니까?”
가야도 양손의 깍지를 끼며 물었다. 분위기가 서늘하게 들떴다.
‘교구장이 능력을 해제하면 난 죽을 수도 있지.’
숨이 막힐 것 같다.
내 머리가 목갑과 함께 터지는 상상이 자꾸만 들었다. 그런 최후를 맞이하고 싶진 않다.
그러나 세상사는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여기서 허망하게 죽는 것도 내 통제 밖에 있는 일이지. 난 그저 최선을 다할 뿐이다.
난 날뛰는 불안과 생각을 억누르며 무표정을 연기했다.
교구장은 입술을 달싹이다가 한숨을 슬며시 내뱉었다.
“……여긴 보더시티니까요. 이 말로 많은 대답이 됐으리라 봅니다.”
보더시티. 원래라면 어울리지 못할 자들이 이질적으로 뒤섞인 곳이다.
“가장 불경한 자와 협력한 건 교구장님이셨군요. 본국에서도 이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가야는 곁에 있는 내 처지를 잊은 듯이 공격적으로 추궁했다.
“형님이 절 추궁하실 자격은 없을 겁니다. 교구장이란 지위까지 올라서면, 깨끗한 신앙과 순수한 믿음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수두룩하게 맞닥뜨립니다. 당신은 그런 현실에 좌절해 교단을 떠나시지 않았습니까? 자신을 더럽힐 각오가 없었기에 말입니다!”
교구장도 물러서지 않았다.
‘자신을 더럽힐 각오.’
악덕을 삼킬 비위와 같은 뜻이겠지.
가야는 자신을 더럽히지 않는 자였다. 늘 자신의 신념에 어긋나지 않는 깨끗한 선택만 했다. 고결하긴 하나 어찌 보면 비겁하다 볼 수도 있고, 누군가는 꽉 막힌 사람이라 여길 터다.
“……맞습니다. 제가 교구장님을 추궁할 자격은 없죠. 하지만 ‘키누안’은 손을 잡기에 지나치게 위험한 인물입니다. 그 행적을 따라가 보면 언제나 파국뿐이죠. 태풍과도 같은 자입니다.”
교구장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형님은 외부인입니다. 제게 조언을 하고 싶다면 정식으로 돌아오시고 난 다음에 하시죠. 그게 아니면 현재 상황도 모르면서 지껄이는 건 삼가시고요.”
나는 가야 덕분에 개척신전에 들어올 수 있었다. 가야에 대한 호감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교구장의 말이 맞다고 생각한다.
교구장은 현실에서 당면한 문제를 헤쳐 나가고 있었고, 가야는 현실의 복잡함을 외면한 채로 이상적인 원론을 내뱉고 있었다.
‘가야는 존경받는 사제가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훌륭한 교구장이 되긴 힘들어.’
흥분한 교구장이 말을 계속 내뱉었다.
“본국의 의회에선 보더시티를 교화의 대상이 아니라 정화의 대상으로 보는 의견이 주류가 되고 있습니다. 아직 구원받을 수 있는 자들조차 버리자고 말하고 있죠.”
가야도 고요히 입을 다물었다.
“……그건 몰랐습니다.”
“현실을 외면하고 자신만의 세상에서 사니 알 수가 있을 리가 없죠! 당신은 정신병자 몇 명을 치료하면서 자기만족이나 하시면 그만이겠죠. 하지만 제가 책임지는 건 이 신전만이 아닙니다. 당신이 있을 때와는 많은 게 달라졌죠. 교육을 위한 수도원과 포교 활동 유지를 위해 얼마나 많은 예산이 필요한지 아십니까? 본국의 지원이 끊어지면 두어 달도 버티지 못할 겁니다. 보더시티의 신도들은 본국에 인정도 받지 못한 채로 버림받아 교구도 없이 방황하겠죠!”
가야의 침묵은 더 깊어졌다.
“교구장님께선 보더시티 교구의 가치와 쓸모를 본국에 증명해야 했군요.”
난 가야를 대신해서 말했다.
교구장도 차를 마시더니 다소 진정된 투로 대답했다.
“제겐 지하세계와 불온한 정보에 해박하며…… 무엇보다 본국에 공납할 아케인 유물을 찾아낼 능력이 있는 자가 필요했습니다. 그 수단과 방식은 중요치 않은 상황이었죠.”
설명만 들어도 적절한 인재가 떠오른다.
‘키누안.’
그리고 키누안은 교구장을 배신했을 터다. 아주 최근에 말이다.
흐름의 끈이 보인다. 키누안의 사고를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난 그 끈을 필사적으로 붙잡았다. 놓지 않고 따라가다 보니 시야가 한순간에 넓어지는 것 같았다.
‘키누안과 내가 충돌한 날로부터 발생한 보더시티 혼란. 이어진 종족 갈등, 이스마엘과 손석재…….’
추론이 꼬리를 물다가 멈춘 곳은 경매장이었다.
‘……경매장.’
이스마엘 라 차관이 에퀘시안 용병에게 공격받은 장소다.
보더시티의 혼란 때문에 정부의 이목이 사라진 틈을 타서, 경매장에서는 장물이나 불법적인 물건을 그날 많이 다뤘을 것이다. 그중엔 아케인 유물도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경매장에서 키누안이 유물을 빼돌린 겁니까?”
이스마엘이 습격받은 날, 경매장에 키누안이 있었을 것이다. 적어도 그의 부하라도 말이다.
내 말에 교구장이 눈을 크게 떴다. 내가 어떻게 알아챘는지 궁금할 터다.
“제가 요청한 물건을 키누안이 가로챘습니다. 그 이후로 잠적했지요.”
말이 요청이지, ‘도둑질’을 키누안에게 의뢰한 것이다. 보아하니 보더시티 교구는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었고, 경매장에 낙찰받아 아케인 유물을 공납했다간 적자만 심해질 터다.
스륵.
어느새 교구장도 내게 몸을 돌리며 집중했다. 흐릿한 단서만으로도 흐름을 따라가는 내가 제법 유능하게 보일 터다.
……어쨌든, 키누안을 찾는 건 교구장도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