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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곁에 붙은 특임대원 라르스의 배경은 나와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일단 근위대 생도 출신은 아니야.’
제국의 민간 군사기업에서 훈련을 받은 상급 군인이었다.
‘훈련소에서 라르스는 괜찮은 성적을 거두었고, 황실에서 라르스를 특임대원으로 차출했다.’
전통의 근위대는 점차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었다.
“요즘은 하층 구역에서도 상급 군인이나 관료로 뽑히는 사람이 많다고 해요. 저도 그런 부류고요. 아마도 루카 님 덕분이겠죠. 그날 이후로 많은 게 바뀌었어요.”
라르스가 기어코 내 얼굴에 금칠을 해댔다. 저 주둥이를 주먹으로 짓눌러버리고 싶었다.
‘나 때문에 그런 게 아니야! 이 멍청아!’
라르스는 아무것도 모르는 소년이다. 우리가 키누안을 왜 쫓는지도 몰랐다. 그저 제국과 황실을 믿고 충성할 뿐이었다.
‘그간 이런 애들이 얼마나 죽어나갔을까…….’
키누안을 추적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일레이의 특임대에선 인력의 ‘소모’가 잦았을 것이다. 일레이는 소모를 꺼리는 성격이 아니다. 부하에게 정을 주지도 않을 터다.
‘황실이 근위대 생도의 규모를 줄이고, 민간기업에 상급 군인 훈련을 위탁한 이유는…… 전통적인 귀족 가문의 힘을 떨어뜨리려는 수작이다. 그래서 귀족 가문이 아니라 하층 구역에서 상급 군인과 관료를 많이 뽑아올린 거고.’
정치적 지도에 따른 균형과 견제일 뿐이고, 나는 명분을 위한 도구였다.
‘벌써 한숨이 나오네, 염병할.’
나는 일레이가 데려온 특임대원의 신상정보를 본 적이 있었다. 다들 한미한 가문의 자제들이거나 이레귤러였다.
‘죄다 소모하기도 편하고 죽어도 뒤탈이 없는 이들이다.’
일레이는 부하들의 생존확률을 매우 낮게 잡고 있을 것이다.
‘특임대원들은 키누안이 어떤 인물인지도,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이들은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순수한 군인이었다.
‘라르스도 이레귤러라지만…… 정말로 특출한 녀석은 아니야. 우수한 정도이지.’
내 자랑을 하고 싶진 않지만, 내가 근위대 생도에 뽑힐 무렵의 이레귤러는 정말로 특별했다. 열등한 배경과 출신을 뒤덮을 만큼의 특출한 재능이 있어야만 이레귤러라고 불렸다.
대대로, 근위대 생도의 이레귤러는 극소수였으나 다들 수료 성적이 상위권이었다.
‘내 앞가림도 바쁜 처지에 누굴 걱정할 여유는 없어. 정신 차려라, 루카.’
나는 머리를 살짝 흔들면서 보더시티의 미로 같은 골목길을 걸어갔다. 라르스도 나를 따라왔다.
투웅! 탕!
멀리서 총성이 이어졌다. 폭발하는 소리도 간간이 들렸다.
지금 보더시티는 분쟁지역이나 마찬가지였다. 굉음이 주기적으로 퍼졌고, 거리에는 기업 소속의 사병과 용병이 순찰하듯 오가고 있었다.
쟈파와 앙귀스 레지나, 라피스 라줄리 같은 이들은 보더시티 어딘가에 숨어있었다. 그들은 보더시티 곳곳에 안전가옥을 만들어놨을 테니 어떻게든 버티고 있을 것이다.
‘보더시티의 상황을 알려면 이스마엘 차관과 접촉하는 게 좋아. 하지만 지금의 나를 이스마엘이 믿을지 의문이지.’
잠시 생각해봤지만, 이스마엘에겐 내가 죽거나 행방불명이 되었다고 여기게 하는 게 나았다.
보더시티에서 그나마 아군이라 부를 만한 세력은 쟈파 상사 정도였다. 이스마엘이나 손석재 같은 부류는 언제 적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일단은 가야와 접촉하는 게 우선이야.’
선후를 착각하지 말자, 루카. 난 쟈파 상사를 돕기 위해 여기에 온 게 아니다.
‘내 목표는 키누안이야.’
난 가야의 병원으로 향하는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이대로 쭉 걸어가다가 꺾으면 가야의 병원이 보일 터다.
가야의 병원은 골목길 끝에 벽처럼 자리를 잡고 있다.
철컥.
갑자기 라르스가 권총을 뽑으면서 벽에 등과 어깨를 붙였다.
“전방에서 전투 소음이 들립니다.”
라르스가 눈짓으로 모퉁이 너머를 가리켰다.
“나도 알아. 귀가 달려 있으니까.”
“아, 음. 죄송합니다. 명령을 기다리겠습니다.”
라르스가 재빨리 사과했다. 녀석의 순종적인 반응을 보니 내가 괜히 부끄러웠다.
젠장, 난 불필요하게 빈정거리고 있다. 그만큼 내가 불안하고 초조하다는 뜻이었다.
보더시티에는 혼란이 드리우고 있다. 이 혼란에서 난 무언가를 잃어버릴 것만 같았다. 막연한 걱정만으로도 기분이 나빠졌다.
“라르스, 뒤에서 눈치껏 지원해라. 훈련을 제대로 받았다면 내 명령이 필요가 없겠지.”
“알겠습니다.”
나는 모퉁이로 걸어가며 병원 입구를 살폈다.
‘가야?’
가장 먼저 보이는 건 가야였다.
백의의 가야가 병원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옷자락이 푸른 오라에 밀려나가듯 들썩거렸고, 그는 포스 능력의 촉매인 팔찌가 짤랑짤랑 흔들렸다.
우우웅.
가야의 주변에는 총기와 칼, 돌멩이 따위가 둥둥 떠다녔다. 일종의 염동력인 것 같았다.
병원 근처에는 습격하러 온 듯한 다종족 용병들이 쓰러져 있었다. 그들은 가야에게 당했는지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그 숫자는 여덟 명이었고, 크롤러 같은 전투 종족도 섞여있었다.
“으, 으으윽, 끅.”
가야에게 당한 용병들이 신음하며 쓰러져 있었다. 가야는 그들을 바라보다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이대로 보더시티를 떠난다고 약속하시면 목숨을 거두지 않겠습니다.”
가야가 눈을 감았다. 참으로 자비로운 제안이었다. 그렇기에 용병들은 가야의 제안을 쉽게 믿지 못했다.
용병들은 머뭇거렸다. 그중 한 명이 잽싸게 일어나 도망가고 나서야 다들 우르르 자리를 떴다.
짝, 짝, 짝.
나는 삼류 악역처럼 박수 치며 가야에게 걸어갔다.
“역시 댁의 실력이 좋을 줄 알았어, 가야 선생.”
도망치는 용병들이 나와 라르스를 힐끗 쳐다보다가 흩어졌다.
“당신은…….”
가야가 잔뜩 경계했다. 내가 두건을 뒤로 젖히니 그는 이내 날 알아보곤 얼굴을 풀었다.
“오랜만이야. 선생께선 내가 그다지 그립지 않았겠지만, 그래도 우리가 서로 총칼을 겨눌 사이는 아니겠지?”
“전 당신이 꽤 반갑군요, 루카. 아끼는 차를 내줄 수 있을 정도로요. 옆엔 누구입니까? 전신의체로 보입니다만.”
가야의 안광이 푸르게 빛났다. 그는 단숨에 라르스가 전신의체라는 걸 꿰뚫어봤다.
전신의체는 대체로 제국 출신이다. 그것도 전문적인 군인이거나 귀족일 가능성이 높다.
“새로이 붙은 내 부하야.”
“제국 소속으로 돌아가신 겁니까?”
“……일단은 그렇게 됐어. 사정은 복잡해.”
가야의 검은색 피부 위로 포스의 빛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전투태세였다.
난 뒤를 보았다. 라르스가 가야를 향해 총구를 들이밀고 있었다.
“라르스, 총을 집어넣어. 가야는…… 내 지인이다.”
흠, 친구라고 말할 사이는 아니지.
“저 사내는 포스 사용자입니다. 굉장히 위험하죠.”
포스 사용자를 엄청나게 경계하는 걸 보니, 라르스가 교육은 잘 받은 모양이다.
“후, 그 손가락 분질러 버리기 전에 집어넣어.”
내가 짜증을 내자, 그제야 라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우웅.
가야의 포스 반응도 사라졌다. 그의 팔찌와 백의가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일단 들어오시죠. 손님을 밖에 세워두기도 싫고, 차도 대접하고 싶으니까요.”
가야가 고개를 까닥이더니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휘파람을 불며 골목길의 벽을 보았다. 근래 일어난 전투 흔적이 다수 보였다.
‘혼자서 습격을 여러 번 쳐냈군.’
우리가 들어가자마자 병원의 입구가 굳게 닫혔다. 창문과 문에는 방범용 금속판이 내려왔다.
“지금 보더시티는 상당히 혼란합니다. 여러 기업 간의 전쟁이 붙었거든요. 종종 있었던 일이지만, 이번엔 규모가 상당히 크더군요.”
난 가야를 훑어보았다. 그의 신발과 옷자락 끄트머리에는 흐릿한 핏자국이 있었다.
우리는 응접실 앞에 도착했다. 난 따라 들어오려는 라르스를 제지하며 복도를 가리켰다.
“라르스, 저기서 경비나 서. 그리고 경고하는데, 내 지시에 토를 달지 마라. 내가 네 직속상관은 아니지만…… 지금 넌 내 밑에 있어. 이해했나?”
“이해했습니다. 방금의 일은 사죄드리겠습니다.”
“좋아, 내 말만 잘 들으면 이번 임무가 끝날 때까지 네 머리통이 무사할 거야.”
난 라르스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눌렀고, 녀석은 주춤거리며 복도로 밀려나갔다.
쿵.
그리고 나는 가야를 따라 들어가며 응접실의 문을 닫았다.
“아까 습격자들을 보니 부랑배나 갱은 아니던데, 선생 나리께서 어디 원한이라도 단단히 사셨나?”
“세상에 누군가에게 원한을 사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싶지만, 이번만큼은 제가 아니라 쟈파 씨를 노리는 자들입니다. 제 병원에 쟈파 씨가 숨어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더군요.”
가야가 보온병에 담긴 차를 따라서 내게 내밀었다.
후륵.
기분 좋은 쌉싸름함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왔다.
“좋은 차로군.”
“무슨 일로 여기까지 오신 겁니까? 통 소식이 없길래 보더시티를 떠나신 줄 알았습니다.”
“뭐, 이런저런 용건으로. 그보다 쟈파가 어디에 있는지는…… 댁은 모르겠지.”
난 물으려다가 말았다.
가야는 독립적인 존재다. 쟈파의 부하가 아니라 대등한 관계다. 쟈파가 가야 밑에 숨어있을 것 같진 않다.
“쟈파 씨는 보더시티 어딘가에 있겠죠. 앙귀스 레지나와 함께요.”
“쟈파 상사의 일은 둘째 치고, 가야 선생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
가야가 눈을 가늘게 떴다.
“쟈파 상사의 일을 둘째로 치부하시는 겁니까?”
“그보다 급한 일이 있거든.”
“하하, 급해 봐야 제국이 부여한 임무겠죠.”
가야의 웃음이 내 귀를 꺼끌꺼끌하게 긁어댔다. 꽤 불편하군.
“오해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제국의 목적과 내 목적이 일시적으로 일치한 것뿐이야.”
“현재 쟈파 씨는 궁지에 몰린 상태일 겁니다. 손수공업에서 쟈파 씨의 목에 현상금도 걸었고요.”
……별로 듣고 싶지 않았던 사정이다. 모르면 그냥 넘길 수 있다. 하지만 알게 된다면 마음 한구석 어디에 걸리고 만다.
“내가 쟈파를 돕길 바라는 건가?”
“그냥 사정을 이야기한 겁니다.”
“쟈파가 걱정된다면 그 잘난 포스 능력을 발휘해서 구해주지 그래?”
“전 병원을 지켜야 합니다. 스스로를 지키지 못하는 약자들이 여기에 머물고 있으니까요.”
“거봐, 댁에게도 이유가 있듯이 내게도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
난 최대한 차분하게 말하려고 노력했다.
가야의 심기를 거스르진 말자. 어쨌건 나는 가야의 도움을 받으러 온 거다.
가야가 차를 말끔하게 마시며 소매로 입술을 닦았다. 그는 눈을 감았다가 뜨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럼 쟈파 씨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죠. 루카 씨는 무슨 용건으로 절 찾아오셨습니까?”
“보더시티에도 코라의 신전이 있다고 들었어.”
“정확히 말하면 디셈교의 신전이죠.”
“내겐 그게 그거야. 어쨌든 신전을 방문하고 싶다. 선생의 소개라면 가능할 것 같더군.”
가야는 평온한 얼굴로 날 응시했다. 그에겐 아키에스 빅티마가 없을 텐데도 날 꿰뚫어보는 것 같았다. 여전히 묘하게 신비한 사내였다.
이내 가야가 피식 웃었다.
“곤란한 요청이군요. 당신도 제 심정을 이해할 겁니다. 국가를 등졌더라도,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죠. 제국의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을 신전에 소개하긴 꺼림칙하군요.”
“키누안을 찾기 위해서다. 키누안이 누군지는 당신도 알고 있겠지. 키누안의 부하들이 코라의 장비를 사용하고 있었어.”
가야는 앙귀스 레지나의 심리 치료를 맡은 사내다. 키누안의 존재도 어느 정도까진 알고 있다.
“루카 씨, 제가 당신을 도와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전 당신에게 빚을 진 적이 없죠.”
“알아. 오히려 내가 댁에게 빚을 지고 있지. 가브리엘을 보살펴준 것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
가야가 부드러운 미소를 내보였다.
“알고 있다니 다행이군요. 전 당신을 도와야 할 이유가 전혀 없지만, 당신을 돕겠습니다. 제가 조건 없이 베푼 친절과 호의가 당신을 통해 누군가에게 퍼지길 바라면서 말이죠.”
가야가 그리 말하면서 일어났다.
나는 찻잔의 녹색물에 비친 내 얼굴을 바라보다가 잔을 비웠다.
‘미치겠군. 코라인은 다들 이렇게 음흉한 건가?’
예나 지금이나 가야는 껄끄러운 사내다. 그는 쟈파의 안전을 대가로 나와 거래하지 않았다. 내가 쟈파를 돕지 않아도, 날 돕겠다고 말했다.
……여기서 내가 쟈파를 돕는다면, 그건 누군가의 강요나 거래 조건이 아니라 순전히 내 자유 의지였다.
가야는 나를 나약하게 만들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