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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d Born Blood Chapter 286

286
나는 벽에 걸린 거울을 바라봤다.

‘거참, 인상 한번 더럽고 칙칙하네. 세상에서 제일 힘들게 사는 것처럼 말이야.’

삭막하고도 음침한 놈이 서 있었다. 눈매도 더러워서 호감 사기가 어려운 얼굴이다.

‘그래도 제국의 의체 기술이 좋긴 좋군. 아주 말끔해.’

난 손가락으로 입술을 당겨서 치아 상태를 확인했다.

카슈라의 우주선에서 부러진 앞니는 제국의 인공 치아로 대체되어 있다. 무언가 씹을 때의 감각도 또렷해서 생체 치아와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나는 뒤로 걸어가며 의료 의자에 걸터앉은 채로 사람을 기다렸다. 눈동자를 굴려 본 방에는 새하얀 금속 타일이 빡빡했다. 위생을 위한 처리였다.

치익.

문이 열리면서 낯익은 사내가 날 바라보더니 히쭉 웃었다.

“이럴 수가! 루카우스 쿠스토리아! 자네가 살아서 돌아왔군, 정말로 놀라워. 세상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진가우 소장이 과장된 말투로 말하면서 흰색 가운을 흩날리며 내게 걸어왔다. 그는 건들건들한 태도로 날 모니터링하고 있는 기기들을 살폈다.

난 진가우에게 최종적인 점검을 받고 있었다. 진가우는 명실상부한 제국 최고의 석학이다. 생물학은 물론이고, 사이버네틱 공학, 아케인 문명에 관해서도 두루두루 박식했다.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습니다.”

난 짧게 말했다. 진가우는 자질구레한 사연에 집착하는 사람은 아니다. 제국에서 오랫동안 살아남은 데는 저런 무심함도 있었을 것이다.

‘진가우는 가끔 이상한 짓을 하긴 해도, 결과적으로 자신의 연구를 위한 것이지.’

진가우는 정치나 권력에 관심이 없었다. 막대한 지원을 받아 연구만 할 수 있으면 그만인 자다. 그렇기에 황실에서도 진가우의 여러 가지 일탈을 넘어가는 것이다.

“자넬 이렇게 다시 보게 될 줄이야. 세상만사 한 치 앞도 알기 어렵군.”

사실, 두 번째 만남이긴 하다.

나는 보더시티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 조직에 침투한 적이 있었다. 거기서 진가우와 마주한 적이 있었다. 진가우의 팔을 그때 에너지 병기로 날려버렸었지.

하지만 진가우는 아직 그 사내가 나라는 걸 모르고 있다. 굳이 당장 이야기할 필요는 없겠지.

“한 치 앞도 알기 어려운 건 동감합니다. 저도 제가 여기에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으니까요.”

“일단 거기 누워보게. 폐하의 명으로 자네를 최적의 상태로 만들어서 내보내야 하거든. 자네도 잘 알겠지만, 날 주치의이자 정비사로 쓰는 건 대단한 영광이네.”

“흠, 너무 황송해서 기절할 것 같군요.”

난 의료 의자에 비스듬하게 누웠다.

“자네의 그런 빈정거림이 반갑게 들릴 줄이야! 나도 자넬 꽤 좋아한 모양이군.”

진가우가 의료장비를 조작했다.

위이잉.

천장에서 의료기기들이 내려오더니 격자형 레이저로 날 조사했고, 이어서 바닥에서 아치형 기계가 치솟더니 굉음을 내며 내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고 지나갔다.

삑.

모니터링 화면에서 내 목덜미가 붉게 빛났다. 내 목갑 때문이었다.

“흠…….”

진가우는 내 목갑을 슬쩍 보더니 별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화제를 돌리듯 다른 주제로 내뱉었다.

“……자네는 제국 바깥에서 오랫동안 있었나 보군. 벨라토 연방인가? 아니, 이 의체는 타르파 종족 양식이군. 부품 규격도 그렇고, 나노 기술로…….”

“……타르파 장인의 맞춤의체입니다. 이왕이면 이걸 보수해서 계속 쓰고 싶군요.”

난 라피스 라줄리의 의체가 좋았다. 낯 뜨거운 말이지만, 라줄리 21호는 ‘정성’이 담겨 있는 기계다. 실제로도 라줄리 21호는 걸작이었다.

라줄리 21호는 제원상 출력이나 성능으로도 나타나지 않는 부분조차 우수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자면 사용감이 편하고 깔끔했다.

“지금이야 궤가 많이 다르지만, 제국의 공학기술도 타르파 종족의 영향 아래에 있네. 지금도 타르파 중 일부는 제국에 봉사하고 있지. 이 정도는 문제가 없어. 하지만 내가 더 궁금한 건, 누가 자네의 뇌를 치료했냐 하는 것이네.”

진가우가 안경을 치켜세우며 생각에 잠겼다. 나도 잠시 입을 다물곤 생각했다.

‘뉴젠 산하의 라자루스 시설.’

뉴젠이라는 바이오 기업이 있고, 그 산하에는 극한치료 전문 시설, 라자루스가 있다.

이걸 말해야 할지 말지 고민이었다.

“라…….”

내가 말하기도 전에 진가우가 손가락을 튕겼다.

“라자루스인가?”

역시 진가우의 지식은 넓었다. 그는 혼자 의문을 던지더니 말을 이어갔다.

“당시의 자네를 치료할 가능성은 두 가지 방법이 있었지. 둘 다 제국에선 불가능해. 자네도 알다시피 제국은 생체의 복원과 치료에는 많은 투자를 하지 않아.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이쪽 분야에선 뒤떨어져 있지.”

“뭐, 제국에서 치료가 가능했다면 제 주변에서도 어떻게든 했을 테니까요.”

난 어깨를 으쓱했다.

“첫 번째 방법은 아케인 문명과 포스 능력이네. 그쪽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기상천외한 현상을 일으키곤 하지. 기적과도 같은 힘으로 자넬 치료하더라도 이상하진 않아. 하지만 이건 아니겠고…….”

“절 치료한 집단은 라자루스죠.”

“그래, 벨라토 연방은 외계 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어. 여러 신기술을 도입해 실험적인 치료를 시도하는 라자루스 같은 조직에선 자넬 치료하는 게 가능했을 수도 있지. 물론 확률은 높지 않지만 말이야. 어느 쪽이든 제국 입장에선 꺼려지는 일일 텐데, 용케도 자네는 치료를 받았군. 으음, 라자루스의 기술이 이 정도까지 올라왔을 줄이야.”

“당시의 제 상태를 미뤄볼 때, 라자루스 치료의 성공 확률을 어느 정도로 예상하십니까?”

진가우는 대답할지 말지 망설이다가 입술을 달싹였다.

“잘 쳐줘도 절반이야. 보수적으로 생각하면 3할 정도지.”

나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다른 조각이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성공 확률은 올라가겠죠.”

“라자루스 같은 조직일수록 더 그렇지. 치료의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으니까 더 발전이 빨라. 라자루스에선 같은 불치병이라도 서비스 수준에 따라 치료비를 다르게 받네. 가끔은 무료로도 치료해주곤 하지. 그러나 돈을 적게 내면 사실상 실험체인 셈이니, 나라면 놈들에게서 절대 저가형 치료 서비스를 받지 않을 거야.”

진가우가 킥킥 웃었다.

‘지젤이…… 내 치료를 멈추고 냉동 수면 상태로 놔둔 것도 치료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였을 거야.’

지젤은 내 목숨을 가지고 낮은 확률의 도박을 하지 않을 터다.

‘지젤과 바바라가 예상한 내 복귀 시점은 지금으로부터도 십 년 뒤다.’

폭풍기부터 계산해보자. 지젤은 이십 년도 더 지난 뒤에 날 본격적으로 치료할 생각이었다.

이십 년은 긴 세월이다. 당시에 불가능한 수준의 손상도 이십 년 뒤면 가능할 터다.

‘다르게 보자면, 키누안은 낮은 확률의 도박을 해서 날 깨우려고 했다. 놈은 내 치료가 성공하길 간절히 바랐겠지.’

내가 상념에 빠진 사이에 진가우가 턱을 매만지다가 손뼉을 쳤다.

짝!

진가우는 씨익 웃으며 자신의 오른쪽 어깨를 매만졌다.

“어쩐지 자네를 간만에 볼 때부터 오른쪽 팔이 쑤시고 아프더니…….”

뭐, 진가우가 눈치챌 것 같긴 했다. 그가 타인에게 둔감하더라도 자신의 팔을 날린 사람을 쉽게 까먹진 않을 테니까. 더군다나 내 의체의 형식도 낯익을 터다.

“……그 이야기는 소장님도 저도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군요. 제국은 비밀을 나눌수록 위험해지는 곳이니까요.”

진가우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 나타난 괴한이 나라는 걸 알아챘다. 그는 재밌다는 듯이 웃었다.

“자네도 어른이 다 됐군. 순수한 시절의 자네가 그리워.”

“순수할수록 이용하고 부려먹기 편하니까 그립겠죠.”

내가 가시라도 날리듯 혓바닥을 놀렸다.

“하하, 이래서 어른은 싫다니까. 좋아, 설계 파악이 다 끝났군.”

진가우가 홀로그램을 띄웠다. 내 의체와 중추신경계가 촘촘하게 떠올랐다.

“이상이 있습니까?”

“아니, 감탄이 나올 정도로 연결성이 훌륭해. 역시 공장제 의체는 아무리 고급이라도 장인의 작품을 이기지 못하지. 아마 자넨 팔다리가 깃털처럼 가볍게 느껴질 때도 있을 거야.”

“그렇다면 이걸로 끝…….”

사실 난 조급했다. 일 초의 시간도 낭비하기가 싫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키누안은 목표를 향해 움직이고 있을 터다.

“그래도 사이버네틱 신경계가 흐트러져 있어. 이쯤에서 정렬하고 최적화해야 하네. 자네도 몸이 계속 무겁다 느끼고 있을 거야. 내 말이 틀렸다면 일어서도 좋아.”

……전문가는 전문가인 법이다. 난 군말 없이 기다렸다.

난 진가우가 시키는 대로 팔다리를 움직이며 점검했다.

“현재 안구에 시술된 망막 디스플레이도 그냥 사용할 건가? 제국의 것으로 바꿔줄 수도 있네.”

“일단은 지금 게 편합니다.”

“이번에 나온 신형이 있어. 시술은 오 분도 걸리지 않을 거야. 누가 뭐래도 자넨 제국군 출신이지. 이쪽이 더 맞을 거네.”

진가우가 드물게 강요하듯 말했다. 나는 가만히 그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칙.

진가우는 미세 전류를 내 안구에 흘려보내 기존의 디스플레이를 제거했다. 나노머신으로 이뤄진 디스플레이가 녹아내리면서 눈물처럼 흘렀다.

기이이익, 칙.

진가우는 내 각막에 렌즈를 덧붙였다. 이물감은 금세 사라졌고, 메시지가 반짝였다.

-자네의 목갑은 일정 시간마다 도청한 내역을 전송하고 있을 거야. 그리고 폭약도 있어. 안정화가 잘 된 물질이겠지만, 그래도 어지간해선 목에 충격을 받는 걸 피하게.

나는 눈을 깜빡였다. 진가우의 메시지는 증발하듯 사라졌다. 그리고 몇 가지 데이터가 인터페이스 구석에서 맴돌다가 꺼졌다.

“그럼 다 끝났으니 이만 가보게.”

“……감사합니다, 소장님.”

진가우가 먼저 일어서더니 문을 열었다.

“행운을 비네, 루카. 믿기 힘들겠지만, 난 자네를 꽤 좋아해.”

“저도 알고 있습니다. 저도 소장님을 꽤 좋아하거든요.”

진가우는 살짝 깊어진 미소로 날 배웅했다.

난 복도를 걸어가며 옛 기억을 떠올렸다. 과거의 나는 진가우가 특출난 사람이라 생각했다. 아니, 특출한 사람은 맞긴 하다.

‘그러나 특출난 괴물은 아니다.’

이젠 나도 안다.

진가우는 괴짜이지만 인간이다. 아주 평범한 보통 사람에 가까웠다. 백 년을 훌쩍 넘긴 사람이 저 정도 인격이라면 ‘평범’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다.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범주 내에서만 친절을 베풀고, 때론 남에게 해를 끼치면서도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며 살아남으려는 사람…….’

진가우의 본질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생존이든 뭐든 우린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대단한 존재처럼 보이려 하고, 때론 나약한 척하기도 한다. 그리고 누군가는 ‘괴물’처럼 보이려고 흉악한 가면을 쓴다.

그러나 결국은 가면을 벗기면 누구나 사람이었다.

내 앞에서 가면을 벗고도 괴물이었던 자는, 무쉬르 알 카슈라 뿐이었다.

이제 나는 키누안의 가면을 벗길 생각이다. 난 그 안에 있는 게 인간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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