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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카슈라의 정비실에서 금속 상자를 바라봤다.
무쉬르 알 카슈라는 자신의 금속 상자에 팔다리를 임시로 달고 있었다.
끼리릭, 끽.
의족과 의수가 달린 금속 상자의 모습은 싸구려 장난감 같아서 제법 웃겼다.
-절 죽이지 않으시는 겁니까? 재밌군요.
팔다리를 붙인 카슈라가 엉성하게 일어서며 내게 말했다.
현재 무쉬르 알 카슈라에겐 완성품 전갑의체가 없었다. 반파된 전갑의체와 예비로 남겨둔 부품이 고작이었다.
“네가 날 쫓지 않는다면 죽일 이유가 없으니까.”
-하지만 당신은 절 싫어하죠. 누군가를 죽일 이유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습니까?
나는 건조하게 눈을 깜빡였다.
“그래서 죽여달라는 건가?”
-그건 아닙니다. 솔직히 터놓고 이야기하자는 것이죠.
카슈라가 금속 상자에 달린 팔을 매만졌다. 그는 손가락을 하나씩 접어가며 연결 상태를 꼼꼼히 확인했다.
-당신이 절 살려두는 이유는 두 가지겠죠. 첫 번째는 당신의 뇌를 포기한 제가 노릴 다음 상대는 키누안이기 때문이고…….
그가 말꼬리를 끌며 내 눈치를 살폈다.
난 미간을 찡그렸다. 내 불쾌한 기색에도 카슈라는 말을 이어갔다.
-……두 번째는 제가 지젤 쿠스토리아의 행방을 조사할 수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겠죠.
“이유를 잘 알고 있군. 그래서?”
-전 당신을 위해 지젤 쿠스토리아의 행방을 조사해 드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가가 필요합니다.
“대가? 네 목숨을 살려두는 것만으로 부족하단 말인가?”
카슈라가 금속 상자의 덮개를 열었다.
금속 상자 내부에는 뇌가 담긴 유리 용기 네 개가 있었고, 그 주변에는 복잡한 회로와 케이블, 용액이 지나가는 관 따위가 빼곡하게 차 있었다.
저 끔찍한 형태가 현재의 무쉬르 알 카슈라를 구성하는 본질이었다.
-제 역량으론 최적의 사고 형태가 네 개의 뇌입니다. 상황에 따른 교체용은 둘인데, 해킹과 네트워크 접속용으로 하나, 전투용으로 다른 하나를 사용하죠.
그 말을 들은 나는 기억을 더듬었다.
‘음.’
예전보다 기억을 더듬는 속도가 느려진 것 같았다. 뇌 수술한 지 얼마 안 됐으니 당연한 거긴 하다. 사실은 당장 기능에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처지다.
카슈라는 이 우주에 레그네이터, 군림자라 불리는 비밀스러운 종족이 있다고 했다.
“레그네이터의 서버 접속을 하려면 ‘소모’해야 한다고 네가 말했지.”
내가 중얼거리며 턱을 매만졌다. 사소한 기억을 떠올리는데 꽤 많은 집중력을 써야 했다. 이게…… 일시적인 현상이면 좋겠다.
-수준급 해커의 뇌가 다수 필요합니다. 매초 마다 하나씩 뇌사할 테니까요. 지금 당장 제게 있는 예비용만으론 부족합니다.
“당장은 조사가 어렵다는 거로군.”
-정확히 말하자면, 가능하긴 합니다.
내가 고개를 들었다. 난 입술이 마르는 걸 느꼈다.
내 머릿속에서도 한 가지 발상이 떠올랐다. 그렇기에 나는…… 곧장 경멸을 담아 놈을 보았다.
-바바라의 뇌가 있으면 됩니다. 그 아이라면 레그네이터의 네트워크에서도 상당히 오랜 시간을 버틸 수 있을 것 같더군요.
카슈라는 내 뇌리에 떠오른 생각과 똑같은 내용을 말로 내뱉었다.
“넌…… 딸의 뇌마저 손에 넣고 싶다는 건가?”
-전 바바라의 뇌가 굳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가지고 싶었다면 진작 손에 넣었겠죠. 이건 순전히 당신을 위한 제안입니다.
난 감정적 동요 때문에 손가락 끄트머리부터 미미하게 떨렸다.
‘카슈라의 말은 진심이다. 날 위한 제안이야.’
난 눈을 감았다.
카슈라는 어디서부터 엇나간 괴물인 걸까. 아니면 일레이의 말처럼, 처음부터 인간의 정신이 없었던 걸까?
-바바라와 당신은 그다지 우호적인 관계가 아닐 겁니다. 차후에 적이 될 수도 있는 상대죠. 애초에 당신이 바바라와 손을 잡은 이유가 지젤 쿠스토리아를 찾기 위해서가 아닙니까?
“……맞는 말이야.”
내가 여기서 카슈라에게 바바라를 내주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바바라는 불온하며, 불안정하고, 불편한 존재다. 지젤을 찾기 위한 제물로 바바라를 소모한다?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계획이다.
-저는 당신과 긴밀한 협력 관계를 맺고 싶습니다. 합일은 실패했지만, 당신과 저는 통하는 게 있죠. 서로의 생각을 알 수 있습니다. 물리적 연결이 아니라도요.
난 속이 들끓어 미칠 것 같았다. 카슈라의 사고가 이해되고 있었다.
카슈라에게 가족과 친구 따윈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일반적인 관계에선 유대를 느끼지 못한다.
‘합일.’
뇌를 연결한다. 그보다 더 밀접한 관계와 유대가 또 어디에 있겠는가.
카슈라에겐 합일한 뇌가 가족이며, 연인이며, 또 다른 나이기도 하다. 그에게서 의미가 있는 타인이란 기껏해야 합일 후보 정도였다.
……그러나 무쉬르 알 카슈라는 내게 아주 강렬한 친밀감을 느끼고 있다.
카슈라는 나와 합일 직전에 이르렀다가 실패했다.
내기에서 이긴 나는 카슈라를 죽이지 않았고 ‘협력 관계’를 선택했다.
물리적 연결은 아니더라도, 유사한 합일 관계인 셈이다.
카슈라가 내게 느끼는 감정과 유대는, 보통 사람이 가족이나 연인에게 느끼는 것과 다를 바 없겠지.
내 내면에도 변화가 있다. 내가 카슈라에게 품고 있는 생리적 혐오감이 줄어들고 있었다.
나도 어느덧 무쉬르 알 카슈라가 마냥 싫지 않았다. 저 기묘한 존재에게 호기심이 생겼다.
아마 나는 카슈라와 계속 교류하면서 관계를 유지할 터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를 친구라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카슈라는 가끔 헌신적으로 날 돕기도 하겠지.
……그런 미래가 보인다.
난 카슈라를 싫어하거나 증오하지 못하게 될 터다.
‘딸의 뇌를 소모하자고 말하는 저 괴물을…….’
나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콰직! 쨍그랑!
내 손은 카슈라의 유리 용기를 깨뜨리며 뇌를 쥐어짜고 있었다. 질척한 고깃덩이가 내 손가락 사이에서 찌그러졌다.
-이런, 제 착각이었습니까?
카슈라의 목소리에서 잡음이 일었다.
으드득!
나는 뇌를 쥐어짠 손을 휘둘러서 옆에 있던 뇌 용기도 깨부쉈다. 카슈라도 일시적으로 충격을 입었는지 팔다리를 잠시 부들부들 떨어댔다.
“착각이…… 아니야. 난 네게 마음이 끌리고 있어. 확실해. 내 뇌 수술을 기꺼이 네게 맡길 정도니까.”
카슈라에게 남은 뇌는 둘이었다.
카슈라의 자아와 인격에는 의식의 연속성이 중요하다. 카슈라는 온전한 수면도 취하지 않을 것이다. 뇌가 번갈아 가며 휴식할 것이고, 그는 의식을 항시 유지하고 있을 터다.
-우리 사이의 유대가 제 착각이 아니라니 다행이군요. 짝사랑은 질색이거든요.
카슈라가 담담하게 말했다.
“그렇기에 난 너란 존재를 인정할 수가 없어. 널 인정한다면…….”
내 목소리가 떨리고 있다.
-괜찮습니다, 루카. 절 인정하고, 타고난 인간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겁니다. 빈약한 자들은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의 틀에서 살아간다는 것에 그 어떤 가치가 있다고 떠들어대죠. 그건 인간을 초월하지 못하는 자들의…….
더 들을 수가 없다. 나는 하단부의 유리 용기를 발로 걷어차며 뇌를 짓눌렀다.
콰직!
금속 상자에 엉성하게 달려 있던 팔다리가 떨리고 있었다. 그는 의수를 힘겹게 뻗어서 내 발목을 잡았다.
……남은 뇌는 하나다. 이걸 부수면 ‘무쉬르 알 카슈라’라는 망령은 이 우주에서 사라진다.
-애처롭고도, 가냘픈, 당신의 미래에 행운이 있길.
카슈라는 내게 살려달라 빌지도 않았고, 저주를 퍼붓지도 않았다.
여전히 인간의 사고방식과 감정선을 벗어난 언행이다.
난 무쉬르 알 카슈라라는 존재를 인정할 비위가 없었다.
놈에겐 진득한 악의도, 따사로운 선의도 없다. 그렇다고 딱딱하고도 합리적인 기계인 것도 아니었다.
무쉬르 알 카슈라는, 그저 무쉬르 알 카슈라였다.
“내가 널 죽이는 까닭은, 하나다.”
-알고 있습니다. 두려움이죠. 전 당신을 이해하겠습니다.
날 타이르는 듯한 말투다. 내 속에서는 욕지거리가 나왔다.
‘……훗날, 난 자진해 합일을 청할 거야.’
앞으로 내겐 무쉬르 알 카슈라라는 존재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니 최후의 순간, 나는 놈이 되겠지.
이건 아키에스 빅티마의 직관이며, 미래의 가능성이다.
으득!
내 손이 마저 움직였고, 나는 가능성의 가지를 여기서 꺾었다.
무쉬르 알 카슈라는 사라졌다.
* * *
일레이와 바바라가 타고 온 우주선은 제국의 군용 화물선이었다.
나는 화물칸에 실린 레기온을 응시했다. 일레이의 뇌가 담긴 레기온은 전원이 나간 안드로이드처럼 축 늘어진 채로 앉아있었다.
‘인공 수면.’
일레이의 뇌는 레기온과의 모든 연결을 끊고 인공 수면에 들어갔다. 더 활동했다간 뇌 손상이 올 것이다.
‘하루라도 빨리 인간형 의체에 들어가야 해.’
일레이는 인간형 의체에서 정신을 회복해야 한다. 인간의 모습으로 세상을 인지하고, 먹고 마시는 등의 인간적인 행위가 있어야 뇌가 인격과 자아를 유지할 수 있다.
전신의체가 불필요할 정도로 인간의 육체를 모방하고 흉내 내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렇게 애를 써도, 대다수는 서서히 인격이 무너지고 말지. 결국 전신의체는 인간의 육신이 아니니까.’
나는 자리에 앉은 채로 영양액을 빨대로 마셨다. 식감이 불쾌할 정도로 걸쭉하고 맛도 오묘하다 못해 더럽게 없었지만, 영양소만큼은 풍부하다.
“결국, 무쉬르 알 카슈라를 죽였네.”
등 뒤에서 발랄한 목소리가 들렸다. 전신의체의 바바라가 걸어오고 있을 터다.
“의체 외형을 정할 때는 나잇값 좀 하지?”
나는 핀잔을 주며 바바라의 전신의체를 보았다. 그녀는 전용 전신의체를 사용하고 있었다. 육체 시절의 화사한 주황색 머리카락은 상징처럼 전신의체에서도 여전했다.
‘그러나 어린아이의 모습…….’
바바라는 아카데미 시절의 육체보다 더 어린 외형을 하고 있었다. 기껏해야 열 살 전후처럼 보였다.
“여자아이의 모습은 여러모로 도움을 받기 유리하거든. 상대의 공격성도 누그러뜨리고 방심시키는 효과도 있고.”
“내겐 역효과야. 네 가식적인 모습을 보니 구역질부터 날 것 같거든.”
“잘생긴 남자가 못된 말을 내뱉으면 매력적이지. 지젤도 네 그런 모습에 반했나 봐? 아, 잠시만, 소행성지대라서 운행이 까다롭네.”
바바라의 동공이 잠시 빛나더니 우주선의 이동 경로가 바뀌었다. 바바라는 이 우주선과 연동한 상태였다.
“그리고 네 출생에 대해서…….”
이미 바바라는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그녀는 내 말을 다 듣지도 않고 대답했다.
“아, 무쉬르 알 카슈라의 딸이라는 것? 재밌는 사실이긴 해. 여기까지 온 보람이 있을 정도야.”
역시 그 아버지에 그 딸인가 싶다. 바바라도 재미를 느낄 뿐이지, 가족에 대한 감흥은 없는 듯했다.
“일레이는 그렇다 쳐도, 너까지 올 줄은 몰랐다. 지젤의 부탁이 있다고 해도, 나 때문에 목숨을 걸 정돈 아닐 텐데 말이야.”
“일레이가 재미난 제안을 했거든. 저 카르티카의 여우도 보통내기가 아니야. 이번에 나도 깜짝 놀랐어. 자칫하면 된통 당할 뻔했지.”
바바라가 입에 손가락을 대며 음침하게 웃었다.
“제안?”
“흐응, 떠보는 건 질색이야, 루카. 어쨌든 농담이 아니라, 나도 이번엔 장난 아니게 심각해. 지젤과 내 계획이 엉망진창으로 꼬이고 있다고. 거기다가 넌 자진해서 황제에게 간다고?”
난 손가락을 허리춤에 댔다. 혹시라도 바바라가 우주선을 멋대로 조작할 수도 있었다. 물론, 그땐 그녀의 머리통이 날아가겠지.
“참고로, 무쉬르 알 카슈라는 네 뇌를 써먹자고 했어.”
“뭐, 그래서 어쩌라고? 고마워하라고?”
바바라가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이며 날 쳐다봤다.
“……아니, 됐어.”
“노바스로 돌아가자마자 나는 은거할 거야. 황제에게 죽고 싶진 않거든. 난 지젤이 돌아올 때까지 죽을 생각이 없어. 그러니 앞으로 내 도움을 받을 생각은 마.”
바바라는 자리에 털썩 앉더니 턱을 괴었다.
“‘제국의 칼’은? 네 조직이잖아.”
“일레이 카르티카에게 물어봐. 아까 말했지? 일레이의 제안을 받았다고. 그러니까,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까, 흠. 들어봐, 일레이 카르티카가…… 사실상 ‘제국의 칼’ 조직의 절반을 어느새 좌지우지하고 있었어. 나도 몰랐던 사실이야. 이대로 있었으면 나부터 꼼짝없이 당할 뻔했지.”
나는 먹먹한 한숨이 나와서 눈부터 감았다. 어디서부터 과거를 되짚어가야 할지 가늠이 가지 않았다.
……빌어먹을, 일레이 카르티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