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6
바바라에겐 특이점이 하나 있다.
‘의체와 육체를 가리지 않고, 신체를 교체할 수 있다는 것.’
물론 상당히 불안정했다. 자세히 관찰한다면 이질적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불안정한 교체라도 가능한 사람은 내가 알기론 바바라밖에 없었다.
바바라는 자신의 뇌만 이식하면 타인의 육체와 의체를 다룰 수 있는 괴물이었다. 그 특기 때문에 첩자로선 말도 안 될 정도로 우수했다.
바바라가 작정하고 정체를 가린다면 찾을 수 있는 자는 손에 꼽을 정도일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정신력, 아니, 광기라고 불러야겠지.’
타인의 육체와 의체를 쓰면서도 자아가 흐트러지지 않았다. 여전히 바바라는 바바라였다.
긁적, 긁적.
비위생적인 거지 노인이 머리를 벅벅 긁고 있다.
“루우카, 그래, 아, 뭐, 이 육체도 버릴 때가 됐네.”
노인의 꼴을 한 바바라는 어눌한 말투로 말했다. 그녀는 약물이 담긴 주사기 꺼내더니 목덜미에 투여했다.
잘은 몰라도, 신체 적응성을 올려주는 약물일 터다. 약물을 투여한 바바라는 한결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입술을 달싹였다.
“아직도 신체를 바꾸고 사는 건가?”
“하나의 신체는 추적이 쉬우니까. 먹고살려면 노력해야지.”
“제국의 추적으로부터?”
난 바바라가 아직도 제국에 속한 인물인지 궁금했다.
“키힛, 날 떠보는 거야? 나쁜 습관이야, 루카. 모르는 걸 아는 척하며 떠보면 기분이 나쁘다고.”
“네 기분이 나쁘든 말든.”
나는 찌든 냄새가 나는 의자에 앉았다.
이 허름한 가상 시뮬레이션 가게는 퀴퀴하고 칙칙하다. 후각에 집중하면 온갖 지저분한 악취를 비롯해 시취와 피 냄새까지 났다. 이 가게 어딘가에 부패하는 시체가 있다는 뜻이다.
“자, 난 널 죽이지 않고 있다, 바바라. 신뢰를 쌓아보자고.”
“히힛, 넌 내 힘이 필요하지?”
“너도 내가 필요할 거다.”
“맞아. 우린 서로가 필요해. 네가 지젤을 안지만 않았다면…… 나는 참, 널 좋아했을 거야.”
노인의 목소리로 사근사근 말하니 등골이 오싹했다. 당장이라도 저 노인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 넣고 싶었다. 내 손가락이 절로 까닥까닥 움직였다.
“아까부터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지젤을 집요하게 쫓아다니는 네가, 지젤의 행방을 전혀 모른다는 점이지. 아무리 지젤의 계획이라고 해도 말이야.”
여기까지 말을 내뱉다가 난 머릿속이 번쩍하는 걸 느꼈다. 입 밖으로 물음을 꺼내니 궁금증이 저절로 풀렸다.
‘바바라는 제국과 척을 진 게 확실해. 폭풍기 이후로 완전히 벗어난 거야. 헤일라스 같은 사람들이 우르르 죽어 나간 덕분이지.’
바바라는 자신이 잡혀도 지젤이 무사하도록 ‘모른다는’ 선택을 한 것이다. 아무도 모르는 것만큼 안전한 비밀은 없다.
“모든 건 지젤을 위해서야. 제국이든 키누안이든 내 머릿속 뚜껑을 열고 세포 단위로 해체하고 조사해 봐야 지젤을 찾을 순 없지. 모르는 걸 캐낼 순 없으니까.”
나는 미묘한 감정을 느꼈다. 지젤을 지키고자 하는 바바라의 의지는 정도 그 자체였다. 그것만큼은 거짓이 없는 여자였다.
“바바라, 지젤이 쫓기는 이유는 나 때문이었어. 날 빼돌렸기 때문에 모두가 지젤을 찾는 거지.”
그리고 지젤은 이제 나의 약점이다. 날 이용하고자 하는 이들이 지젤을 찾아다니고 있었다.
“그래서 넌 아직 깨어나면 안 됐던 거야.”
“넌 내가 깨어날 때까지 십 년은 남았다고 했지. 그게 무슨 의미인 거지?”
“그때가 되면, 제국은 더는 네게 역량을 쏟을 수 없어. 십 년 안에 많은 일이 일어나겠지. 제국의 칼은 봉기할 거고, 때맞춰서 연방과 신성국의 압박도 거세질 터. 국가와 종족의 용광로인 보더시티도 사라질 거고.”
“그래서, 날 늦게 깨우는 게 지젤의 계획이라고?”
“폭풍기의 너는 자신을 갉아먹으며 나아갔지. 지젤은 늘 널 안타깝게 여겼고, 그 꼴을 다시 보기 싫어했어. 그러니 모든 사태가 끝난 뒤에야 널 깨우려고 한 거지. 우린 제국으로부터 널 숨기는 데 성공했지만…….”
하지만 타지룬의 정보상 가문은 내 정보를 알고 있었다.
“타지룬으로부터는 실패했지.”
“외계종족은 우리와 다른 기술 체계를 가졌어. 정보 수집 방식도 다르다 보니 예상치 못한 일이 종종 일어나지. 특히 타지룬은 무척 영악하고 똑똑한 종족이거든. 모든 종족이 타지룬을 미워해. 그러나 그 어떤 종족도 놈들을 무시하지 못해. 나도 종종 놈들과 거래를 할 정도니까.”
예전 기억이 떠올랐다. 바바라는 타지룬의 네트워크 서버로 우회해서 나와 지젤에게 연락한 적이 있었다.
“그럼 지젤과 연락할 방법은 없는 건가?”
“지젤이 먼저 연락해 오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어. 정기…… 연락까진 앞으로 약 3500일 정도가 남았지.”
난 눈을 찌푸렸다. 바바라는 정말로 십 년을 기다릴 셈이었다.
‘난 그만큼 기다릴 생각이 없다.’
하지만 지젤을 찾기 전에 키누안을 제거하는 게 우선이었다.
‘지젤은 모든 혼란이 끝난 뒤에 날 깨우려고 했다.’
나도 마찬가지다. 지젤을 찾는 건 혼란과 위험을 잠재운 뒤다.
“바바라, 너와 나는 지금부터 키누안을 사냥한다. 아는 걸 전부 말해.”
난 바바라를 믿을 것이다. 정확히 말해서 그녀를 믿는 건 아니다.
‘지젤은 바바라와 협력했다. 그런 지젤의 판단을 믿는 거야.’
바바라도 마찬가지일 터다. 지젤이 선택한 나를 믿는 것이다.
스륵.
바바라는 품에서 단말기를 꺼냈다. 단말기의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렌즈의 수명이 다 되어가는지 홀로그램이 흐릿했다.
제국의 칼 조직도가 나왔으나 상당히 불명확했다. 바바라 직속 산하 조직 말곤 대부분이 공백이었다.
“제국의 칼은 네메시스보다 결합이 더 느슨한 조직이야. ‘머리’라고 불리는 수뇌부들조차 서로에 대해 잘 몰라. 나조차도 절반 정도만 파악하고 있어.”
“그런 느슨한 조직이 어떻게 하나로 움직일 수 있다는 거지?”
“때가 되면, 알아서 움직일 거니까. 우린 각자의 방식으로 현 황제에게 반기를 들 거다. 현 황제인 이반 크라치아에 대한 불만은 상당해. 역대 최악의 황제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지. 나와 지젤은 헤일라스를 추종하던 근위대원을 모아서 조직을 만들었고, 다른 누군가는 폭풍기에 줄을 잘못 대서 부귀영화를 잃은 귀족들을 규합했지. 그런 식으로 황제에게 반기를 든 조직들의 연합이 제국의 칼이다. 따지고 보면 네메시스도 그 일부지.”
“몇몇 조직은 움직이지 않을 거야. 황제가 심어둔 가짜들도 있겠지.”
“그것도 감안한 거야. 봉기하는 날도 들키겠지만…… 상관없어. 혁명이란 알아도 막지 못할 물결이거든. 그러니 이반도 필사적으로 제국의 칼을 뿌리 뽑으려 할 거야.”
나는 가슴 한구석이 계속 불편했다.
‘이반의 정치적 역량이 이 정도인가?’
내가 아는 이반은 굉장히 영악하다. 사람들을 구워삶으며 자신의 편으로 만들고도 남을 자였다. 그런 이반이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릴 것 같지 않았다.
‘당장 내가 제국에 있는 게 아니니…… 자세한 내막은 알 수가 없지.’
일레이와 만나면 물어볼 게 많았다. 하지만 다시 만날 수 있을진 의문이다. 일레이가 나와 접촉하려면 이반의 허가가 필요하다.
이반은 나와 일레이가 만나는 걸 쉽사리 허락하지 않을 터다.
“이제 내가 질문하지, 루카. 키누안을 유인할 방법이 있어?”
“보더시티를 벗어나 잠적하는 척할 거다. 그러면 키누안은 움직일 수밖에 없어. 놈은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내가 잠적하는 걸 바라지 않아. 내가 지금처럼 활개 치길 바라고 있지.”
바바라는 노인의 얼굴로 나를 유심히 쳐다봤다.
‘……내가 움직여야, 자신의 목적을 이룰 수 있는 거다.’
난 그 말까진 삼켰다. 키누안의 진의는 아직 모른다. 섣불리 확신하며 내뱉고 싶진 않았다.
“흐응, 그럼 준비해 보자고.”
바바라는 입술에 손가락을 올리며 비음을 흘렸다. 다시 말하지만, 지금 바바라는 추레한 노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
* * *
난 네 개의 세력에 발을 걸쳤다.
‘첫 번째는 쟈파 상사.’
쟈파 상사는 키누안을 찾고자 한다. 보더시티 내에서는 영향력이 있으나 어디까지나 일개 회사에 불과하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내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집단이긴 하다.
‘두 번째는 이스마엘과 연방 정부.’
내가 제국과 거래하려면, 연방 정부라는 방패가 있어야 한다. 연방 정부가 없으면, 제국의 폭력으로부터 날 방어할 순 없다.
연방 정부는 내게서 얻어낼 이득이 없다고 판단하면 날 버릴 것이다. 이들에겐 적당한 사탕을 계속 던져줘야 한다.
‘세 번째, 제국의 황제 이반 크라치아.’
이반이 나를 옭아매고 있었다. 놈의 말을 완전히 믿을 순 없지만, 이반은 키누안을 바친다면 내게 자유를 주겠노라 말했다.
‘네 번째가 바로 제국의 칼.’
지젤이 조직했다는 집단이다. 현재는 바바라가 지젤을 대신하고 있었다.
어쨌든, 결론은 하나다.
‘키누안을 잡는다.’
명상하며 생각을 정리하던 나는 눈을 떴다.
주륵.
난 인중에서 흐르는 피를 닦았다. 요즘 잠잠하다 싶었더니 다시 시작이었다.
‘사고가 멈추지 않아.’
상황이 위험하고 복잡해질수록 내 뇌는 쉬지 못했다.
수면과 명상할 때를 제외하면 뇌와 교감신경계가 상시 활성화된 상태였다.
보통 사람이라면 미치고도 남을 정도의 스트레스가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쿵, 쿵.
심박도 안정화가 되지 않아서 가슴 근육이 쩌릿하며 아플 지경이었다.
후룩.
나는 의식적으로 사고 중단을 위해 차를 마셨지만, 극한의 상황에서는 큰 의미가 없었다.
‘……당분간은 고생하겠군.’
나는 내 안의 방아쇠를 당겼다. 스스로 극한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내 뇌와 감각은 주변 상황과 정보를 흡수하듯 빨아당기고 있었다. 신경과민으로 인한 불안과 초조함 때문에 속이 뒤집힐 것 같았다.
으적, 으적.
난 영양바를 억지로 씹어 삼켰다. 소화불량과 위염까지 생겨서 가슴이 불편했다.
‘여기서도 오래 지냈지.’
나는 쟈파 상사의 사옥에 마련된 내 방을 둘러봤다. 이젠 내 집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정이 들었다.
그러나 언젠가는 떠날 곳이라고 늘 생각했었다. 그날이 오늘이었다.
스륵.
나는 일어서서 떠날 준비를 했다. 짐이라고 해봐야 허리 가방 하나가 늘어난 게 전부다.
철컹, 철컹.
난 화광자검와 새로운 크루시스를 챙겨서 허리에 매달아 고정했다.
‘시작하자, 쟈파, 바바라.’
나는 쟈파와 바바라에게 언질을 주었다. 내가 떠나는 것처럼 행동하라 했다.
쟈파는 내 크레딧칩을 정지했고, 내게 들어가던 지원을 전부 끊었다.
바바라는 랑테를 비롯한 전 근위대원에게 내 호위를 지시했다.
‘난 보더시티를 떠나 잠적한다.’
그렇게 보이게끔 연출하는 것이다.
키누안이 날 주시하고 있다면, 분명히 이런 움직임 중 하나를 감지하고 내가 떠난다는 걸 예상할 터다.
덜컹.
내가 문으로 걸어가기도 전에 황급한 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리면서 한 여인이 들어왔다.
“당, 당신이 떠, 떠난다는 게 사실인가요? 키, 키누안을 찾는 일은요? 하아, 하아…….”
앙귀스 레지나가 문틀을 잡으며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나는 민망하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였다.
“쟈파와 일하는 건 관두기로 했어. 이젠 쟈파 상사가 끼어들기에 일이 너무 커졌거든. 국가들이 움직이는 상황이야.”
앙귀스 레지나가 눈을 부라리더니 비틀거리며 내게 다가왔다.
휙!
앙귀스 레지나는 내 옷깃을 잡아당기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녀는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참으로 많은 듯이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스륵.
그러나 그녀는 수많은 말을 삼키며 내 옷깃을 놓았다. 난 담담히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제가, 사람을 잘못 본 건가요?”
“아마도.”
나는 짧게 말하며 앙귀스 레지나를 지나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