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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재의 자택은 보더시티의 여느 부유층과 다를 바가 없었다.
부인은 나이를 속일 정도로 예쁘장했고, 아이들의 얼굴에는 그늘이 없었다. 고용한 하인 중에서 내가 본 것만 세 명이 이종족이었다.
‘어이가 없군.’
나는 식당으로 걸어가며 눈을 찌푸렸다.
손석재의 두 아들은 이종족 고용인과 웃고 떠들었다. 아비의 악행을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광경이었다.
‘손수공업의 사원들은 이런 모습을 알고 있는 걸까?’
아마도 모를 것이다.
손석재는 공장에서 살다시피 했고 집은 한 달에 한두 번 들어갈까 말까 했다. 당연히 가족과 사생활에 대해선 철저하게 비밀이었고, 그의 집무실과 차량에는 흔하디흔한 가족사진 한 장조차 없었다.
‘이게 가능한 짓인가? 에퀘시안이야 용병이니 그렇다 쳐도…….’
손석재는 꽤 유명한 차별주의자였다.
“이곳 하인들은 손 사장에게 큰 빚이 있는 자들입니다. 손 사장이 정말로 좋은 사람이라 믿고 있죠. 세상 사람들이 오해하는 거라 생각합니다.”
이스마엘이 내가 속삭였다.
우린 식당 입구에 도착했다. 배가분더스 종족의 고용인이 허리를 깊게 숙이며 문을 밀었다.
배가분더스는 인간과 같은 유인원 기반의 종족이지만, 키가 2배 가까이 크고 몸무게는 엇비슷할 정도로 빼빼 말랐으며 피부가 녹색이었다. 성향에서 인류와 공통점이 많아 친밀한 종족이기도 했다.
인류에게 호의적인 종족이라면 항상 타르파와 배가분더스가 언급될 정도였다.
끼이익.
식당으로 들어가는 문이 열렸다. 화려한 조명이 새어 나왔고, 배가분더스 종족 특유의 금속선이 피부 위에서 빛났다.
배가분더스도 노바스 행성의 주요 종족 중 하나이나 내 관심에선 항상 멀리 있는 종족이다. 그들은 타르파처럼 기계공학 전문가가 아니었고, 에퀘시안이나 크롤러 같은 전투 종족도 아니었다.
“고마워요! 마르타!”
손석재의 맏아들이 문을 열어준 배가분더스 고용인에게 감사를 표했다. 맏아들이라지만 열 살도 되지 않은 듯했다.
“마르타가 아니라 마르타 씨라고 해야지. 항상 예의 바르게 대해라. 그 상대가 누구라도 말이다.”
손석재가 맏아들의 귀를 꼬집으며 말했다.
“알, 알았어요. 마르타 씨, 고마워요.”
나는 이 기묘한 상황에 구역질이 났다.
손석재는 바깥에선 외계종족 혐오를 외치고 학살을 자행했으면서도, 아들에겐 외계종족을 존중하라고 가르쳤다.
저녁 만찬은 화려했다. 따스한 음식은 좋은 냄새를 풍겼고, 손석재는 부인과 아이들을 우리에게 소개했다.
‘갈비찜’은 손석재의 장담대로 야들야들했고, 손석재는 부인의 솜씨라고 자랑을 해댔다.
“……루카입니다.”
나는 덤덤하게 몇 마디만 내뱉곤 줄곧 침묵했다.
손석재의 일가족은 날 어려운 사람이라고 생각할 터다. 난 저들을 위해 내 조그마한 사회성을 발휘할 생각은 없었다.
“그럼, 당신은 아이들을 데리고 올라가 있어. 난 손님들과 좀 더 이야기해야 할 것 같으니까.”
손석재는 남편과 아버지 역할을 잘하고 있었다. 그는 부인과 아이들을 한 명씩 포옹하고선 식당에서 내보냈다.
스륵.
손석재가 손을 들자, 하인들도 하나둘씩 사라졌다.
“후…….”
모두가 사라지자마자 손석재는 기나긴 한숨을 쉬었다.
묵직한 가면이라도 썼다가 벗은 듯이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그는 시가를 꺼내다가 내 눈치를 보더니 술을 마셨다.
“……제게 하고 싶은 말이 많으신 듯합니다, 루카 씨.”
손석재는 내 사나운 기색을 알아챈 듯이 저자세로 나왔다.
“아니, 별로.”
난 많은 말을 삼키며 짧게 말했다.
“업보는 제 선에서 끝낼 겁니다. 제 아이들은 외계종족을 친구로 여기며 크겠죠. 구시대적인 사람은 저이고, 공존은 미래니까요. 저 같은 앞뒤 꽉 막힌 악당이 설 자리는 앞으로 없어야 합니다, 아무렴요.”
무척이나 역겹다. 이렇게 역겨운 인간은 오랜만이었다. 음식의 맛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구역질이 났다.
“손 사장님, 갑자기 루카 씨를 데려와서 죄송하게 됐습니다. 제 전담 경호원이 예기치 못한 부상을 입어서…….”
이스마엘은 민망하다는 듯이 말했다.
“아이고, 차관님, 아닙니다. 사과하실 건 전혀 없죠. 저도 루카 씨를 대접하고 싶었거든요. 좋은 기회가 됐습니다.”
손석재가 엉덩이를 슬쩍 들며 손사래 쳤다.
보아하니 이스마엘은 내 동행 사실을 도착 직전에서야 알린 모양이다.
‘젊은 여우와 늙은 너구리의 싸움이군.’
그리고 난 여우에게 목줄이 잡힌 들개다.
이스마엘과 손석재는 업무 이야기를 나눴다. 군사용 MAU 개발에 대한 말이 오갔다. 얼핏 들어도 꽤 순조로운 듯했다.
“흠흠, 음식이 워낙 훌륭해 저도 모르게 과식한 모양입니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루카 씨, 손 사장님.”
이스마엘이 배를 매만지며 일어섰다. 그는 의도적으로 자리를 비웠다.
삐걱.
이스마엘이 나가니, 식당에는 나와 손석재만 남아있었다.
참으로 서늘한 침묵이 일었다. 나와 손석재가 친밀하진 않아도, 이렇게 어색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하, 저도 상당히 위태로운 처지로군요.”
손석재는 모호한 말을 내뱉었다.
“이스마엘 차관에게 미움을 많이 산 모양이지?”
“미움을 살 짓은 하지 않았습니다. 차관님께서 절 견제하시는 거죠. 제가 전략무기연구부의 소관을 벗어나 독자적으로 활동할 수도 있으니까요.”
손석재는 이스마엘이 걸어 나간 문을 넌지시 쳐다보다가 말을 이어갔다.
“루카 씨가 차관님에게 무슨 말을 들으셨는지 전 모릅니다. 하지만 차관님은…… 우수한 관료입니다. 능력이 뛰어난 관료일수록 아랫사람을 잘 소모하죠. 국가라는 틀에선 동아줄을 잘 붙잡으며 갈아타는 자가 올라가는 구조거든요. 그런 관료에게 아랫사람은 쓰고 버리는 발 받침대에 불과합니다.”
“흠, 그럼 댁은 다르다는 건가?”
내가 빈정거렸다.
“적어도 저는 제 사람을 헌신짝처럼 버리지 않습니다. 어떻게든 끌어안고 가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다양한 사람을 품고 가는 리더에겐 잘난 정의와 올곧은 신념보다 수많은 모순과 악덕이 필요합니다.”
손석재는 드디어 내 눈치를 보지 않고 시가를 입에 물더니 불을 붙였다. 그는 매캐한 연기 속에서 눈을 빛냈다.
“루카 씨, 제가 바깥에서 악행을 저지르고, 집안에선 도덕을 가르치는 게 모순 같습니까? 루카 씨는 자식이 없으시겠죠. 이건 흔한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세상의 아버지들이란 다들 이렇게 살아가는 법이죠. 본인은 올바르게 살아가지 못하지만, 자식은 그렇게 살아가길 바라는 나약한 아버지들입니다. 저도 마찬가지고요. 저는 부덕과 악덕을 저지르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세상과 환경을 아이들에게 선물하고 싶습니다.”
참으로 달변가다. 듣기엔 그럴싸하다. 자식이라는 방패를 내세워 자신을 정당화하고 있다.
‘그러나 일리도 있다.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말들에서 일리가 있는 게 아니라…… 이스마엘을 조심해야 한다는 말에 일리가 있어.’
이스마엘을 도와 손석재를 처분한다고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현실에는 다음 과업과 이야기가 있다.
‘이스마엘은 지금이야 날 돕고 있지만, 내가 통제에서 벗어나면 제거하려고 들 터다.’
손석재는 이스마엘의 통제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그가 MAU 개발 성과물을 들고, 전략무기연구부와 대립할 수도 있는 모양이었다.
‘연방의 상부에서도 치고 올라오는 이스마엘을 경계하고 견제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야. 그 사람들은 손석재가 이스마엘을 견제하길 원할 수도 있지.’
손석재도 연방에서 교묘한 균형을 잡고 있을 터다.
스륵.
나는 말없이 문을 응시했다. 이스마엘이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손석재도 열리는 문을 보더니 가식적인 미소를 지었다.
“자리를 비워서 죄송합니다.”
이스마엘이 자리에 앉았다. 시답잖은 대화가 이십여 분 정도 이어졌고, 이후 나와 이스마엘은 손석재의 자택을 떠났다.
* * *
우우웅.
이스마엘의 공중차량은 쟈파 상사의 사옥으로 향하고 있었다.
“루카 씨, 어떠셨습니까?”
이스마엘이 창밖을 보며 말했다.
“식사가 맛있더군요. 특히, 갈비찜이요.”
손석재의 부인이 만들어준 갈비찜……의 여운이 아직 내 뱃속에 남아있었다.
이스마엘은 큭큭 웃더니 고개를 돌려 날 보았다.
“손석재는 양지로 올라오면 안 될 인물입니다. 야욕이 지나치죠. ‘적당히’를 모릅니다.”
난 고요히 이스마엘을 쳐다봤다. 그의 미미한 감정 신호가 느껴졌다.
이스마엘은 손석재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예전의 이스마엘에게선 저런 기색이 없었다.
‘손석재가 그사이에 무언가를 했다.’
나는 생각을 마치고선 입을 뗐다. 이스마엘에겐 바로 대답한 것처럼 보일 터다.
“차관님의 영향력이 닿지 않는 사람과 손석재가 근래 만났군요.”
이스마엘은 동공의 떨림을 감추듯 눈을 감았다가, 동요를 갈무리하고선 눈꺼풀을 올렸다.
“손 사장이 저를 발판으로 삼을지는 몰랐습니다. 군사용 MAU 개발의 선두로 올라서자마자 관심을 보인 윗선과 밀담을 가지더군요. 절 제쳐 놓고 말이죠. MAU 개발의 공정성과 효율을 위해, 두 개의 조직을 두고 경쟁시키자는 제안을 꺼낸 모양입니다.”
현재 군사용 MAU 개발은 전략무기연구부가 독점하고 있는 사업이었다. 당연히 그들 뜻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었다.
이스마엘의 승승장구와 기세를 견제하고 싶은 사람들은 손석재의 제안에 관심을 가졌을 터다.
“언제나 이렇더군요. 얄팍한 도덕과 명분을 벗겨보면 권력다툼, 구차하게 덧붙이자면 밥그릇 싸움이죠.”
……환멸이 날 지경이다.
“전 최선의 사람은 아닙니다. 하지만 루카 씨에게 저는 차악이나 차선 정돈 될 겁니다. 손석재는 최악의 인간이고요.”
이스마엘은 손석재의 이중성과 모순을 내게 보여줬다. 선택의 기로가 오면 내가 자신을 위해 움직이길 바라기 때문일 터다.
어차피 내겐 손석재나 이스마엘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서로를 이용하는 관계이고, 내게 더 이득이 되는 사람과 붙어있으면 그만이다.
난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이건 개인적인 질문입니다. 연방의 관료 사회에서 인간이 아닌 종족이 발을 붙일 곳이 있습니까?”
이스마엘은 의외라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대답했다.
“제국에 비하면 길이 자유로이 열려있죠. 할당제도 있고요. 특정 종족의 자치구도 형성해 그쪽 대표에게 일정한 권한을 주기도 하죠. 관료와 정치, 둘 다 길이 있습니다.”
“크롤러에게도요?”
이스마엘이 머뭇거렸다.
“이건 어려운 문제로군요. 말단에서 몸을 쓰는 특수직엔 종종 크롤러가 있습니다만, 일반적인 사무직 관료는 아니죠. 크롤러는 아무래도…….”
“저도 크롤러들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잘 압니다. 뒷골목에서도 자주 마주쳤고요.”
“크롤러는 지성체이나, 그 성향상 우리 사회와 융합되기 힘든 종족입니다. 암묵적으론 분리와 격리의 대상이죠.”
나는 보얀에 대해 이야기했다. 특이한 크롤러 개체가 있다는 수준의 설명이었다.
내 말을 들은 이스마엘이 눈을 깜빡였다. 내게 호의를 조금이라도 사려면 긍정적으로 검토해야 할 터다.
“보얀을 밀어달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어차피 자신의 능력이 아닌 타인의 힘으로 올라가 봐야 더 뼈아프게 추락할 뿐이니까요. 적어도 가능성이 있는지 없는지 옆에서 써봐달라는 겁니다. 엘리트 관료의 시점으로 냉정하게요. 가망이 없다면 하루라도 빨리 다른 길을 찾아야 할 테니까요.”
내가 말을 덧붙였다. 이스마엘은 한참이나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제가 방금 생각에 빠진 건 그 보얀이라는 크롤러 소년 때문이 아닙니다. 크롤러든 뭐든 인턴으로 넣고 두고 보는 건 일도 아니니까요.”
나는 눈을 찌푸렸다. 이스마엘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예상된다.
“하아.”
난 어깨가 떨어질 정도로 한숨을 쉬었다. 사형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이스마엘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의외로, 루카 씨는 꽤…… 착한 사람이군요.”
내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