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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군사용 MAU 계획은 여러 곳에서 진행 중입니다. 하지만 가장 대표적인 곳은 보더시티와 벨라토시티죠. 여긴 보더시티 지부의, 음, 공식 명칭이 기니 그냥 파일럿 양성소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스마엘 차관이 MAU 연구 및 파일럿을 교육하는 양성기관을 안내하며 말했다. 20글자 정도 되는 거창한 공식 명칭이 있는데, 기억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난 깔끔한 복도를 보며 유리창 너머의 시설을 응시했다. 내부는 벨라토의 기풍을 나타내듯 폐쇄적이지 않고 개방성이 있었다. 각 부서와 연구실이 외부에서도 보이는 형태였다.
뚝.
난 의료장비가 보이는 시설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야나카와 비슷한 또래의 소년들이 몸에 전극을 달고 이런저런 검사를 받고 있었다. 약물을 투여하는 모습도 보였다.
‘야나카의 능력도 자연체를 벗어나긴 했었지.’
레기온과 대응할 병기의 파일럿에겐 초인적인 반응 속도와 인지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래도 시술의 강도는 근위대 생도에 비하면 가벼울 터다.
“벨라토시티는 연방의 인재와 기술이 집약된 수도이니 그쪽에서 연구개발을 하는 것이고, 보더시티는 이종족과 타국의 기술도 적극적으로 수용할 수 있기 때문이군요.”
난 이해한 내용을 말로 내뱉었다.
“제국에서 망명한 근위대원이 파일럿들의 교관으로 있는 것도 보더시티에서만 그렇습니다. 벨라토시티에선 어림도 없는 일이죠.”
본관 끝으로 걸어가니 별관으로 가는 문이 나왔다. 이스마엘은 문을 열며 나를 안내했다.
본관과 별관 사이에는 꽃과 풀이 있는 휴식용 야외 정원이 있었다.
정원에서 쉬고 있던 사람들이 나를 힐끗힐끗 쳐다봤다. 그중 일부는 제국 출신인 듯했다.
‘전 근위대원인가? 나라고 모든 근위대원의 신상을 외우고 있는 것도 아니니…….’
전투의체는 멀리서도 분위기가 남달랐다. 한 사내가 나를 보더니 가벼이 고개를 까닥여 인사했고, 나도 그가 누군지 몰라도 고개를 숙여 화답했다.
“아는 사람입니까? 저쪽도 근위대 출신입니다.”
“전 저 사내를 몰라도, 저 사내는 저를 알겠죠.”
나는 짧게 답하며 정원을 지나쳤다.
“연방의 관료 입장에서 이런 말하긴 뭣하지만, 제국의 전투 기술은 다른 국가보다 앞서 있습니다. 오랜 투쟁의 결과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죠.”
유연성과 다양성이 연방의 장점이다. 연방은 경직된 제국과는 달랐다. 수용과 변화에 적극적이었다.
그 어느 쪽이 옳다기엔 장단이 있으리라. 어느 방식과 체제가 낫다고 말하기엔, 내 정치적 식견이 좁았다.
별관부터가 본격적인 파일럿 훈련소였다. 옆을 보니 원통 기계에 누워서 시뮬레이션 훈련을 받는 아이들이 있었다.
별관 끝에는 커다란 양문이 있었고, 그 위에는 ‘주 훈련실’이라 적혀 있었다.
주 훈련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체력단련과 격투기 훈련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격투기 훈련도 열심히 하는군요.”
생각해 보면, 야나카도 근접전투 실력이 나쁘지 않았다.
“신경계 직결 조종장치도 일부에선 시험적으로 도입하고 있거든요. 신경계 직결에선 몸을 쓰는 법을 익히는 게 중요하죠. 저희도 어느 조종 방식이 더 효율적인지 여러 방면으로 전부 시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MAU만큼이나 파일럿도 비싸죠. MAU가 반파당하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단독으로 생환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이스마엘은 주 훈련실의 중앙에서 손뼉을 쳤다.
짝!
이목이 이쪽으로 모였다.
“오늘은 특강이 있습니다. 이쪽은 제국 출신의…… 루카 씨입니다.”
곧 다른 시설에 있던 파일럿도 호출을 받고 모여들었다.
보더시티의 MAU 공식 파일럿은 14명이었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숫자였다. 벨라토시티에서 양성 중인 파일럿의 숫자는 더 많을 터다.
‘공식이라는 말이 꼬박꼬박 붙는다는 건, 비공식 파일럿도 있다는 이야기겠지.’
이 아이들은 대외적인 파일럿이다. 공개하지 못할 파일럿도 어딘가에는 있을 터다.
야나카도 특수부대치고는 지나치게 정상인이며 양지의 사람이었다. 미성년자인 걸 감안하더라도 그러했다.
‘살인 기계는 정상인의 감수성으로 해낼 수 있는 역할이 아니지.’
살인마에겐 왜곡된 가치관과 뒤틀린 도덕성이 있어야 한다. 생명을 가벼이 여기는 자는 사람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그러지 않고선 수십, 수백 명을 제 손으로 죽일 수가 없다.
“또 근위대 출신이야?”
“여기가 제국인지 연방인지, 나 참.”
“이번엔 나이도 어려 보이는데…….”
투덜거리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확실히 다른 근위대원에 비하면 내가 어려 보이긴 할 것이다. 망명한 근위대원은 대체로 나이가 많은 베테랑 위주일 테니까.
공식 파일럿은 모두가 야나카 또래였다. 생물학적 강화는 나이가 어릴수록 효과적이고 성공률도 높은 편이기 때문이다.
‘야나카.’
야나카도 적당히 땀을 흘리며 파일럿 사이에 서 있었다. 그녀도 날 보고 있었다.
‘특강.’
내가 이스마엘에게 요청한 것이다. 망명한 근위대원들의 얼굴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망명한 근위대 중 상당수가 제국의 칼 소속이겠지.’
내 망명 소식도 여기서 새어나가 랑테에게 전달된 것이다.
“전 말이나 설명으로 남을 가르칠 능력이 부족한 사람입니다.”
나는 무기와 외투를 바닥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쿵 하는 충격음이 거칠게 퍼졌다.
띡.
셔츠의 단추 하나를 푼 내가 제자리에서 통통 뛰었다.
“14명이니, 대련으로 한 명당 5분을 쓴다고 해도 1시간 정도 걸리겠군요. 말로 몇 시간 떠드는 것보다 이편이 낫겠죠.”
이스마엘은 살짝 곤란한 표정을 짓다가 한숨을 쉬었다.
“살살 부탁드립니다. 연방의 재산이 훈련으로 다치면 곤란하니까요.”
이스마엘이 속삭이며 말했다.
파일럿들 사이에서 나오는 투덜거림은 끝나지 않았다.
“불공평하잖아요. 우린 맨몸인데 의체를 쓰는 사람에게…….”
“너흰 실탄 총기든 뭐든 무기라면 써도 돼. 그리고 나는 너희를 상처도 입히지 않고 제압할 거다. 이것만으로도 부족하면 팔 하나만으로 상대해 주지.”
“진짜 실탄을 써도 됩니까?”
말을 꺼낸 파일럿 소년이 이스마엘을 보며 말했다. 난 이스마엘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이스마엘도 마지못해 허락했다. 그도 일반적인 근위대원의 능력을 알고 있겠지만, 불안하긴 할 것이다.
“그럼 내가 처음으로…….”
말을 꺼낸 파일럿 소년이 자신의 장비를 냉큼 챙겼다. 휴대가 편한 나이프와 권총이었다. 권총은 기계와 의체 대비용인지 구경이 상당히 컸다.
탁, 탁.
난 가볍게 뛰며 대련장에 섰다.
우우웅.
파일럿 소년이 대련장으로 들어오자마자, 대련장 테두리를 따라 유리 벽이 올라왔다.
통.
손등으로 두들겨 보니 방탄 및 방호 기능이 있는 특수유리였다.
“당신들이 뛰어난 군인이라는 건 압니다. 여차하면 총알도 피할 수 있다는 것도요. 하지만 이번만큼은 쉽지 않을 겁니다.”
파일럿 소년은 사격에 자신이 있는 듯했다. 아마도 예측 사격으로 날 맞출 수 있을 거라 생각하겠지. 탄종도 의체에 타격을 줄 만큼의 고위력탄일 것이다.
“아, 참고로 난 너희가 본 다른 근위대원들과 다르다. 팔다리만 의체이고, 머리와 몸통은 너희와 똑같이 피와 살이지. 그럼 시작하자고.”
내 말에 파일럿들이 웅성거렸다. 특히 권총을 든 파일럿 소년의 동공이 떨렸다.
나는 제자리에 서서 소년의 동작을 기다렸다.
끼릭.
소년이 권총을 내게 겨누었다. 그는 처음에는 내 머리를 노리는 듯하다가 총구를 내려서 몸을 조준했다.
‘하지만 몸에 맞아도 내가 죽을 수도 있지.’
소년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그는 아랫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이봐, 시간이 지나간다고, 한 명당 5분이야.”
난 무방비하게 손을 위로 들며 말했다. 소년의 동공이 더욱 떨렸다.
‘역시.’
파일럿 소년에겐 사람을 죽일 비위가 없었다. 그의 총구가 내 팔다리를 향했다.
“몸과 머리를 노려도 부족할 판에 팔다리를 겨눈다고?”
내가 빈정거렸다.
“젠장! 이걸 의체가 아닌 곳에 맞으면 그쪽이 죽, 죽는다고요.”
“실탄을 쓰겠다고 말한 건 네 쪽이야. 그럴 각오도 없이 내뱉은 말이었어?”
“그건 당신이 전신의체라고 생각해서…….”
“전쟁터에서 네가 전신의체이든 생살을 가진 육체이든 간에, 그걸 구분해서 적이 화력을 조정해줄 것 같아?”
“지, 지금은 그런 이야기가 아니잖습니까!”
파일럿 소년이 화를 냈다. 그러면서도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다.
난 이스마엘을 힐끗 보았다. 그는 머쓱하게 웃더니 봐달라고 입을 뻥긋거렸다.
파일럿 소년이 망설이고 있었다. 이대로 물러나자니 자존심이 상할 것이나, 겁쟁이처럼 보이긴 또 싫을 터다.
치이익.
대련장의 유리 벽 일부가 열렸다.
“비켜, 내가 보여줄 테니까. 저 인간은 이 정도로 죽지 않아. 괴물이거든.”
파일럿 소년을 밀치며 권총을 뺏는 소녀가 있었다.
소녀의 훈련복 오른쪽 가슴에는 야나카 본드레드라 적혀 있었다.
파일럿 소년도 군말 없이 뒤로 물러나며 야나카를 지켜봤다.
야나카는 파일럿 아이들 사이에서도 암묵적으로 대장으로 인정받는 듯했다.
‘이 중에서 가장 우수하니 실전 임무에 투입된 거겠지.’
야나카는 내게 총을 겨누었다. 그리고 시작한다는 말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터- 엉!
굉음이 퍼졌다. 야나카의 머리카락이 흔들릴 정도의 충격이었다.
나는 고개를 옆으로 틀어서 꽤 아슬아슬하게 사격을 피했다.
‘이 자식이…… 정확히 머리를 노렸어.’
날 죽일 생각은 아니었을 것이다. 다른 의미로는 내 능력을 믿고 있었다는 거겠지.
드르르!
대련장을 둘러싼 유리는 충격을 흡수하듯 파르르 진동했다.
“봤지? 이 인간은 이런 공격으로 안 죽어. 편하게 방아쇠를 당겨도 돼.”
야나카가 시범은 끝이라는 듯이 권총을 파일럿 소년에게 던지려 했다.
“아무리 그래도…….”
파일럿 소년이 망설이듯 말했다. 야나카는 내 쪽은 보지도 않고 방아쇠를 짜증스레 재차 당겼다.
텅!
나는 손등으로 총알을 쳐내듯 궤도를 바꿨다.
‘무지막지하게 구네.’
스쳤는데도 충격 때문에 손과 어깨가 저릿저릿했다.
‘역시 엘리트 군인 양성소다워. 벌써 이 정도 수준의 개인화기를 지급할 줄이야.’
난 손등을 휘휘 털었다. 실전도 아닌 일로 흠집이 크게 났으니 라피스가 슬퍼할 터다.
“봤지? 안 죽는다고.”
야나카가 권총을 소년에게 던지며 넘겼다. 파일럿 소년도 마음을 굳힌 듯이 나를 향해 총을 겨누며 자세를 잡았다.
……파일럿 소년을 시작으로 살벌한 대련이 시작됐다.
당연히 내가 파일럿들을 전부 제압하긴 했으나, 야나카 때문에 제법 고생했다. 다들 망설임 없이 살상 무기를 써댔기 때문이다.
‘내가 쓰라고 말하긴 했지만…….’
투덜거리는 것 정돈 속으로 할 수 있는 법이다. 남이 듣는 것도 아니고.
일정을 마친 나는 외투를 입으며 기진맥진한 파일럿들을 쳐다봤다.
“제일 처음에 특강을 하시겠다고 하시길래, 조금 의문이었는데 제 생각보다 더 알찼습니다.”
이스마엘이 내게 다가오며 가식인지 진심인지 모를 칭찬을 내뱉었다. 나는 물을 마시고선 그와 함께 자리를 벗어났다.
“뭐, 연방의 비밀 병기라는 친구들이 궁금하긴 했습니다. 제가 연방의 훈련 기조는 모르겠지만, 군인치곤 공격성이 낮은 친구들이 많군요.”
“파일럿이니까요. 군사용 MAU의 목표는 레기온입니다. 레기온을 대파해도 살인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겠죠.”
“그러나 파일럿이라고 사람을 죽이지 않는 건 아닐 겁니다.”
“조종석에선 현실 감각이 둔해집니다. 사람을 죽여도 정신적 충격이 덜하죠. 약간의 내부화면 조율과 적당한 전투 자극제를 투여하면 금세 연방이 요구하는 살인 병기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이스마엘은 의외로 살벌한 말을 내뱉었다.
나는 준비된 물을 마시며 눈동자를 굴렸다. 알게 모르게 근위대원들이 많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그들은 내가 진짜 루카우스 쿠스토리아인지 궁금했을 것이다.
‘내가 건재하다는 걸 보여줄 필요가 있어. 직접 봐야 믿는 사람도 있을 테니까.’
이스마엘은 계속 내 곁에 붙어있었다. 그는 내가 다른 근위대원과 접촉하지 못하게 경계하고 있었다.
‘제국의 칼은 그 규모가 어느 정도인 걸까.’
제국도 이건 정확히 파악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제국 내부에도 칼의 협력자들이 있을 터다.
‘이반이 정말로 알고 싶은 건 외부의 반역자가 아니야. 내부의 적이지.’
나는 땀방울이 흐르는 눈을 감았다가 게슴츠레 떴다. 생각이 많아지면서 사고가 폭주하듯 넘쳐나고 있었다.
‘난 제국의 칼에 깊게 관여해야 한다. 칼을 이용해 이반을 치든, 칼을 이반에게 공물로 바치든 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