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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보얀의 흔적을 응시했다.
‘사원의 복지를 위한 휴식용 정원이 3층 테라스.’
보얀이 착지했을 거라 추측되는 자리에는 수풀과 나뭇가지가 우그러지고 부서져 있었다.
‘보얀은 한밤중에 나갔겠지. 어젯밤이로군.’
낮이라면 누군가 보얀을 발견해 보고를 올렸을 것이다.
‘쟈파 상사도 고생이 많네.’
난 위를 올려다봤다. 이젠 쟈파 상사의 사옥에 정이 들 정도였다.
쟈파 상사 사옥의 외벽에는 수리용 드론과 안드로이드, 그리고 중장비가 군데군데 움직이고 있었다.
쟈파 상사 사옥은 연이은 습격 때문에 끝없는 수리와 보수를 반복하고 있다. 그 때문에 방범체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다.
“하아, 하아…….”
뒤늦게 따라온 야나카가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승강기가 아니라 계단을 훌쩍훌쩍 넘어왔을 것이다.
“범 무서운 줄 모르고 설칠 재간은 있어도, 뛰어내릴 강단은 없던 모양이지?”
“나, 나는 당신처럼 의체를 가진 게 아니야!”
“의체가 없어도 약간의 요령만 있으면 할 수 있어. 붙잡을 틈이 많은 벽이니까.”
내가 외벽을 손등으로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야나카는 내 손을 따라 시선을 옮기다가 눈썹을 치켜떴다.
“정말로 보얀이 저기서 여기까지 뛰어내렸을까? 그 얌전한 애가?”
“보얀의 아버지는 크롤러 중에서도 우수한 전사다. 보얀의 육체는 그 유전자를 잘 이어받았지. 보얀은 노력과 훈련 없이도 인간 기준으로 초인적인 완력과 순발력을 가질 수 있는 놈이야.”
야나카가 고개를 올린 채로 한참이나 위를 보았다. 그녀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왜 공부를 시키고 있는 거야? 전투 훈련을 받으면 금방 강해질 텐데…….”
“녀석이 그걸 원하니까. 그리고 보얀이 크롤러 중에선 인내심이 무척 강하고 시야가 넓은 것도 사실이다. 너도 다른 크롤러가 어떻게 사는진 알고 있겠지?”
나도 보얀 때문에 크롤러 종족의 정보를 깊게 찾아본 적이 있었다.
보더시티의 크롤러들은 근시안적으로 살아가고 있었고, 당장 눈앞의 쾌락과 폭력에만 취해있었다. 대다수는 범죄자와 갱단원이고, 기껏해야 합법적인 일이라곤 용병과 경호원이 전부였다. 그마저도 에퀘시안에게 밀렸다.
‘문명사회에서 크롤러들은 장기적으로 무언가를 이룰 능력이 없다.’
우월한 신체 능력과 타고난 폭력은 그들에게 저주나 마찬가지였다.
‘원하는 걸 전부 폭력으로 얻었기에 다른 방면의 능력을 기를 기회조차 잃은 거지.’
나는 턱과 목덜미 사이를 긁으며 보얀이 달려나간 방향을 응시했다.
‘보얀과 같은 별종, 이레귤러가…… 종족의 희망일 수도 있지.’
자신들의 모성에선 절대적 패자였던 크롤러 종족은 노바스 행성에서 도태되고 있었다. 힘이 아닌 다른 능력을 갖춘 개체도 그들 사이에 있어야 한다.
나와 야나카는 보얀의 흔적을 찾아 움직였다. 번화가와 도심지로 접어드니 보얀을 찾기가 힘들었다.
‘이런 일로 쟈파를 깨워서 정보망을 쓸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보얀은 집에 돌아올 것이다.
“뭐, 필요한 약물을 구하러 갔겠지.”
“……그럼 위험한 상황일 수도 있잖아. 보호자가 그렇게 태연해도 돼?”
“자신이 선택한 일이다. 책임도 스스로 져야지. 이미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그 대가가 무엇인지도 가르쳐줬어.”
나는 돌아갈 채비를 했다. 여기에 심력을 쏟긴 싫었다.
“책임을 다한 척하지 마. 그건 그냥 방치한 거잖아. 우린……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질 정도로 현명하지 않다고.”
나는 눈동자만 굴려서 야나카를 보았다.
야나카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떨렸다. 살짝 울먹이는 것 같기도 했다.
“어이, 너…….”
“당신도 똑똑하고 유능한 건 알겠어. 우리보다도 더 어릴 때부터 자신의 선택과 판단을 믿고 움직였을 거고, 그게 정답이었던 경우가 많았겠지. 그런데 그건…… 댁이 특출나게 뛰어난 탓이잖아.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아. 우린 잘못된 판단을 하는 게 일상이고, 자주 실패한다고, 항상 그래.”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에는 진정성이 있다.
야나카는 과거에 큰 실수를 저지른 듯했다. 자신의 인생이 송두리째 바뀔 정도의 판단이었겠지.
“멋대로 날 재단하진 마라. 나도 실패한 적이 많아.”
“당신이 실패했다면, 다른 사람들도 실패할 일이었겠지. 당신은 차관님과 느낌이 비슷해. 같은 인간인데도 종이 다른 듯, 사고 수준이 높고 판단력이 뛰어나지.”
칭찬인지 욕인지…….
“연방의 강아지다운 후각이로군.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나는 어깨를 낮게 들썩이며 웃었다.
“하루만 보얀에게 투자해. 나와 같이 녀석을 찾아. 아이의 실수를 대신 감당하는 게…… 부, 아니, 보호자의 의무잖아. 내 말이 틀렸어?”
듣다 보니 정론이다. 부모와 자식, 보호자와 피보호자의 관계에 대해선…… 야나카의 통찰과 사고가 나보다 우위에 있었다. 평소에도 야나카는 이 주제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고 있었겠지.
‘부모에게 버림을 받거나 그에 준하는 경험을 한 건가?’
야나카가 강박적으로 또래 아이들을 챙기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보얀의 아버지는 전형적인 크롤러 전사였다. 이름은 레고르였지…….”
난 골목으로 걸어가며 보얀의 과거를 이야기했다. 야나카도 집중하며 내 말을 들었다.
‘레고르는…… 거친 방식으로라도 부모로서 의무를 수행했지. 아이의 실수를 자신의 폭력으로 감당했다.’
레고르는 보얀을 죽이려는 동족들을 내치며 상대했다. 밤마다 자신의 아들을 죽이고 싶은 충동을 몇 번이고 참아냈을 터다. 부모 자식 관계는 애정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때론 증오와 분노가 더 클 수도 있다.
‘나도 어리석은 실수를 했다. 순간적인 충동으로 상당히 무거운 짐을 레고르에게서 건네받았어.’
누군가를 보호하는 건 익숙하다. 그런 관점과 개념으로 보얀을 거둔 것이다.
그러나 난 보얀을 보호하는 게 아니다.
‘……키우는 중이지.’
안 그래도 바빠 죽겠고, 온갖 문제가 내 앞에 닥쳤는데, 망할 크롤러 꼬맹이는 도움은 되긴커녕 내 속만 썩이고 있었다.
사실, 요즘은 보얀이 밉다.
* * *
야나카는 자신의 인맥을 동원해 보더시티를 뒤지고 있었다. 인맥이라고 해봐야 또래 불량배들이 전부였으나, 숫자가 제법 되니 생각보다 유용했다.
-뭐, 나 바쁜데?
-야나카의 부탁이야.
-아씨, 어쩔 수 없네. 어딜 가보라고?
야나카의 단말기 너머로 대화 소리가 들렸다. 야나카의 연락을 받은 아이들은 군말 없이 움직였다.
난 야나카가 연락을 돌리는 걸 지켜보았다.
‘두려움 때문에 야나카의 말을 듣는 게 아니야.’
야나카는 아주 드문 통솔력을 가지고 있었다.
‘……덕망.’
나와는 거리가 먼 말이다. 야나카는 공포를 사용하지 않고 사람들을 움직였다. 다들 야나카에게 빚이 있는 듯했다.
-아, 야나카, 미안해. 지금은 좀 바빠서, 대신에…….
“아니, 바쁘면 됐어. 상황이 바뀌면 연락 줘.”
야나카는 거절하는 상대에게 무리하게 요구하지도 않았다.
덕망은 작은 무리를 통솔하기엔 적합하다. 하지만 규모가 커지면 언젠가 공포와 폭력으로 아랫사람을 부려야 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누군가가 야나카에게 가르쳐주겠지, 아니면 스스로 깨닫거나.
내 시선에선 야나카가 어설프지만, 또래들에겐 무척이나 믿음직스러운 대장이다.
“애들을 거리에 뿌렸으니 연락이 올 거야.”
야나카가 단말기를 집어넣으며 말했다.
우리도 거리를 누비며 골목길의 약물 판매상을 만나 보얀을 수소문했다.
“크롤러 소년 말이오? 흠, 크롤러가 모인 거리라면 저쪽으로 가보쇼. 우린 그놈들과 거래 안 하니까. 괜히 트집 잡혔다가 무슨 꼴을 당할지 알고.”
불법 약물을 파는 사람들조차 크롤러를 꺼리곤 했다.
“시체로군.”
내가 그리 말하며 눈을 가늘게 떴다.
우린 골목길을 걷다가 피투성이 시신을 발견했다. 팔다리가 뒤틀린 걸 보니 고문하다가 죽인 듯했다.
보더시티 뒷골목에선 이런 시신이 종종 방치되어 있었다.
“으음…….”
야나카가 입을 잠시 막으며 시신의 곁을 지나쳤다. 눈을 피하는 걸 보니 그다지 시신에 익숙해 보이진 않았다.
“너, 사람을 죽여본 적이 없지?”
“있, 아니…… 없어.”
야나카는 습관적으로 허세를 부리려다가 말았다. 내 앞에선 어설픈 거짓말이 의미가 없다는 걸 벌써 깨달은 듯했다. 야나카도 영리하긴 했다.
“기회가 있을 때, 이렇게 처참한 시신도 봐둬. 예방 주사라고 생각해라. 죽음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네가 죽을 테니까.”
야나카는 내 말을 듣고선 입을 가린 손을 내리며 시신을 정면으로 보았다. 그녀의 동공이 흔들렸고, 손끝도 미미하게 떨렸다.
“……당신은 언제 처음 살인했어?”
“지금 너보다 어리거나 비슷할 때겠지.”
“누구에게 공격이라도 받은 거야? 정당방위?”
“아니, 훈련이었다. 상부에서 사람을 죽이라고 냅다 던져주더군. 전투력이 아무리 높아도 살인에 대한 거부감이 있으면 우수한 군인이 될 수가 없거든.”
야나카는 침음했다.
“살인을 훈련으로 가르친다니, 역시 제국은 우리와 다르네…….”
“크게 다를 건 없어. 여기나 거기나 사람 사는 곳이니까. 가식의 기준이 다를 뿐이다. 여긴 살인이 나쁜 것이라 가르치지만, 제국에선 필요한 것이라고 가르쳐. 그리고 현실 세계에선 살인은 ‘필요한 것’이지.”
나는 야나카가 부정하기 전에 말을 이어갔다.
“연방도 정예부대는 암암리 훈련과정에서 실전과 살인을 시킬 거다. 기껏 고도의 훈련을 수료한 군인이 살인에 대한 충격으로 허무하게 재기불능이 되거나 망설이다가 죽는다면? 큰 손실이지.”
“……나는 그런 교육과 훈련을 받지 않았어.”
“넌 MAU 파일럿이니까 그렇겠지. 네 주력 목표는 레기온이야. 레기온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마 통째로 레기온을 날려 버려도 살인이라는 감각이 없을걸. 겉으로 보면 로봇이나 마찬가지니까. 실제로, 너는 게임하듯 현실 감각이 떨어지는 모습으로 레기온과 싸웠어.”
내 말에 야나카는 입을 다물었다. 자신의 모습을 상기하며 돌이켜보고 있을 것이다.
“더 지적할 게 있으면 말해. 귀담아들을게.”
“딱히 없다. 난 네 교관이나 보호자가 아니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야나카의 단말기가 울렸다. 보얀으로 추정되는 크롤러를 봤다는 연락이었다. 우리가 있는 거리에서 멀지 않았다.
우린 더 음습하고 어두운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불안이란 추상적인 개념을 형상화한 듯, 버려진 건물들에선 우울한 신음과 비명이 흘러나왔다.
팅.
멀리서 총성이 희미하게 울렸다. 자칫하면 놓칠 수도 있는 소음이었다.
“잠, 잠깐 어디가? 연락이 온 방향은 거기가 아니야.”
야나카는 발걸음을 튼 날 보며 말했다.
“저쪽에서 총성이 났다.”
“난 못 들었어.”
총성이 난 방향으로 걸어가던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반문했다.
“그래서?”
“……따라갈게.”
야나카는 포기하듯이 내 뒤를 따라왔다. 파일럿이지만, 역시 군인으로 훈련을 받았으니 이런 쪽으론 다루기가 편하다.
군인은 자신보다 우수한 상관에게 복종한다.
야나카는 인정하지 않겠지만, 그녀의 뇌리에 나는 상급자로 인식됐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