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8
내게 자유낙하와 추락은 특별한 사건이 아니다. 일상까지는 아니더라도 간혹 겪는 일이지.
키이이이잇!
내가 올라탄 승강기가 격렬하게 통로를 긁으며 추락했다. 듣기 싫은 굉음과 마찰음이 쩌렁쩌렁 울렸다.
‘길다는…….’
오만 생각이 뇌리를 오갔다. 그 와중에서도 나는 동공을 움직여 길다가 있는 층에 도달하는지 확인했다.
승강기의 전자 패널 숫자가 쉴 새 없이 내려가고 있었다.
‘50, 49, 48…….’
길다가 있는 층에 도달하기 직전이었다.
나는 천장을 찌그러뜨리며 승강기 바깥으로 나갔다. 그리곤 통로 벽을 손가락으로 긁으며 아래로 내려갔다.
후우우웅!
내 몸과 떨어진 승강기는 한없이 아래로 추락하고 있었다. 나는 밑을 바라보며 42층까지 미끄러졌다.
‘42층.’
길다가 있는 층이다.
나는 매달린 채로 발에 힘을 줬다. 의족의 출력이 올라가면서 진동이 일었다.
콰직! 쾅!
난 철문을 밀 듯이 반복적으로 찼다. 철문이 조금씩 찌그러지더니 사이가 벌어졌다.
콰드드득!
내가 손가락을 벌어진 철문에 걸고선 바깥으로 내쳤다. 철문이 휘면서 사람이 지나갈 만한 틈이 드러났다.
구우우웅!
아래에서도 머리가 울릴 정도의 충돌음이 일었다. 승강기가 밑바닥까지 도착한 모양이었다.
‘차라리 누군가의 장난이길…….’
물론, 이런 상황에서 안드로이드 해킹이 장난일 리가 없다. 벌써 내 머릿속에선 짚이는 이가 있었다.
‘나만큼이나 지젤의 행방을 쫓는 이.’
그 ‘여자’가 살아있다면 당연히 어디선가 움직이고 있었겠지. 지금까지 흔적이 없었던 게 오히려 기이할 따름이었다.
나는 안쪽으로 뛰어들며 착지했고, 그대로 무릎을 구부리며 가속을 붙였다.
부- 웅!
공간이 일그러지듯 나는 훌쩍 뛰어서 안으로 들어갔다.
안쪽에서 길다의 냄새가 났다. 다른 흔적은 내 감각에 걸리지 않았다.
‘여긴 밀실이다.’
내가 들어온 통로 말곤 외부에서 들어올 방법이 없다.
‘내 감각을 속이고 숨어있거나…….’
아니, 그건 배제하자. 내가 그리 무능한 사람은 아니다.
‘강제로 벽을 부수거나, 다른 통로가 있거나…….’
그리고 내 사고는 마지막 결론에 도달했다.
‘……내가 너무 빠르게 온 거지.’
나는 길다를 보았다.
길다는 굉음 때문에 잔뜩 긴장했는지 호신용 권총을 내가 서 있는 통로 쪽으로 겨누고 있었다
“루, 루카? 어째서?”
날 알아본 길다가 권총을 느슨하게 내렸다.
“제 뒤에서 나오지 마세요, 절대로요.”
내가 짧게 말하며 자동추적 권총을 오른손에, 화광자검은 왼손으로 쥐었다.
길다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녀도 내 심각한 표정을 보고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언제나 영리하고 눈치가 빠른 여자였다.
나, 루카는 여기서 길다를 지킨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지킬 것이다. 내 목숨을 던질 준비는 끝났다.
“아래층에 제 수행원과 경호원이 있어요. 곧 올 거예요.”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식은땀이 살짝 나올 것 같았다.
“승강기는 제가…… 부쉈습니다.”
“네? 왜, 왜요?”
“성질머리가 급해서요. 제가 하는 일이 다 그렇죠, 뭐.”
난 걸어왔던 통로를 응시했다. 소리는 없다, 그러나 내 오감에 걸리는 흐름은 다르다. 담이 결린 듯 위화감이 들었다.
‘자동추적 권총의 센서에는 잡히지 않아.’
권총을 앞으로 겨누어도 아무것도 없다는 메시지만 망막에 떠올랐다.
“똑…….”
눈을 감은 내가 혀를 찼다.
“……딱.”
소리의 파장이 번졌다. 격자 형태로 심상의 청각 시야가 내 뇌에서 구성됐다.
‘놀랍군.’
기술의 발전은 빠르다. 요즘은 개인장비로도 반향음 교란이 가능한 모양이다.
적은 모종의 장치로 다가오는 소리를 머금었고, 다른 반향음에 맞춰서 소리를 다시 내뱉었다. 그래서 청각 시야로도 걸리지 않았다.
이 정도면 나 자신이 과민하지 않았나 의심할 만도 했다. 눈으로도 귀로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적이 있다고 확신하며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타- 앙!
탄창이 아예 빌 때까지 방아쇠를 재차 당겼다. 통로를 향해 총알이 팅팅 날아갔다.
‘어차피 개인용 교란 장치다.’
사방에서 몰려오는 불규칙하고도 복잡한 소리까진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거기로군.’
적의 은폐가 껍질 벗겨지듯 흐릿하게 사라졌다. 난 그쪽으로 총구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튕겨내든 피하든, 격렬하게 움직여야겠지.’
청각 시야로 적의 모습이 완전하게 보였다. 놈은 총알에 반응하며 상체를 옆으로 틀었다. 놈의 움직임에 따라 공기의 흐름이 선명하게 흔들렸다.
콰직!
자동추적 권총을 떨어뜨리며 곧바로 무릎을 숙였다.
나는 쏴 보낸 총알처럼 일순간에 뛰쳐나가며 거리를 좁혔다.
‘누군지는 몰라도…… 아니, 알고 싶지도 않아. 곧 죽을 놈 따윈.’
지독한 살의가 내 머릿속을 그득 채웠다. 동공이 커질 것만 같았다.
우수한 전사이자 군인은 살인할 때 죄책감을 느끼면 안 된다. 죄책감은 망설임으로 이어진다.
키이잇!
살의로 빛나는 화광자검이 허공을 매섭게 갈랐다. 상체를 옆으로 숙인 놈의 위장변색 기능이 불안정하게 반짝거렸다.
‘무릎으로 놈의 턱부터 깨부순다. 지금 놈은 맨손이야. 무기를 뽑기 전에 결판을 내.’
나는 무릎을 끌어올리며 고개를 숙인 적의 턱을 노렸다.
무기까지 위장변색이나 은엄폐 장치를 다는 자는 없다. 아직 놈은 무기를 뽑지 못한 상태다.
‘절대적 우위.’
놈은 내가 자신을 감지 못 할 거라 여겼을 터다. 그 방심을 이용해 상황을 내게 유리하게 만들었다.
쉴 틈을 주지 말고 공격을 이어가, 놈의 손이 무기로 가지 못하게.
참으로 노련하구나, 루카.
나 자신에게 만족하며 칭찬할 정도로 멋진 판단과 대처였다. 전사로서 성장했다고 자부할 만하다.
콰드득!
놈이 깍지 낀 두 손으로 내 무릎을 막았다.
‘전신의체.’
충돌하는 순간의 울림으로 놈의 신체가 전신의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것도 상당히 고성능인지, 내 무릎을 받아내고 나서도 손이 부서지지 않았다.
탁!
놈이 재빨리 균형을 잡으며 팔꿈치를 뒤로 뺐다.
놈은 주먹으로 내 얼굴을 노리는 척하더니, 걷어차기로 내 발목을 노렸다.
‘맨손 전투도 노련하다. 제대로 훈련받은 놈이야.’
그것도 상당한 수준이었다.
틱, 티잉, 틱.
위장변색 전투복이 꺼졌다가 켜지길 반복했다. 놈이 세상에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는 것처럼 보였다.
‘틈을 주지 마. 원거리 무기라도 뽑으면 내가 단숨에 불리해진다. 난 길다를 지키면서 싸워야 해.’
앞으로 몰아쳐라, 계속, 위험을 감수해. 내 목숨을 칼날 위에 놓고선 나아가.
의지가 동작으로 이어졌다. 나는 놈을 승강기 통로까지 몰아내듯 밀어붙였다.
놈은 내 안전을 도모하면서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길다까지 지키려면 내 목숨을 내놓고 싸워야 한다.
치익, 칙.
놈이 연달아서 뒷걸음치며 미끄러졌다. 나도 같은 속도로 곧장 따라붙었다.
휘잇!
화광자검을 손아귀에서 돌리며 역수로 잡았다. 섬뜩한 화광이 꼬리를 끌며 빙글빙글 돌았다.
고함도 없는 전투가 이어졌다.
‘놈은 암습태세에서 전투태세로 전환할 시간이 필요해.’
난 그 시간을 여태 주지 않았다.
통!
놈이 길게 뒤로 뛰며 가속을 붙였다. 마치 후퇴하는 듯한 모습이다.
‘후퇴가 아니다.’
불리한 상황에서 내 공격을 연거푸 막아내며 대응하는 실력자다. 다음 수를 생각하고 있을 터다.
‘승강기 통로로 뛰어내려서 태세를 정비할 생각이다.’
재정비는 찰나면 충분하다. 불필요한 암습 장치를 벗고 무기를 뽑으면 잽싸게 올라오겠지. 저 정도 실력과 의체 성능이면 수직 통로도 뛰듯이 오를 수 있다.
‘좋은 판단이다. 하지만…….’
루카라는 독종은 한번 물면 쉽게 놓지 않는다. 미친 짓이라면 나도 한가락 하는 놈이다.
나도 가속하면서 놈을 따라 승강기 통로로 뛰어내렸다.
쿠- 웅!
놈과 내가 뒤엉키면서 통로 아래로 떨어졌다.
추락하는 와중에도 화광자검을 밀어 넣으며 놈의 옆구리를 찔렀다.
놈은 옆구리를 찔리자마자 몸을 옆으로 급히 빼면서 화광자검에서 벗어났다.
잔열의 매캐한 연기가 떨어지는 우리를 따라 뭉게뭉게 이어졌다.
몸뚱이가 육체인 나라면 죽고도 남았을 공격이다. 그러나 놈은 전신의체였다. 사이버네틱 장기가 타들어 가는 정도로 끝났다.
그리고 놈은 발을 올려서 나를 위로 걷어찼다.
터- 엉!
나는 팔다리를 오므리고 놈의 발차기를 받아내며 위로 살짝 떴다.
우리 둘 사이의 거리가 멀어졌다.
‘젠장.’
드디어 놈에게 재정비 시간이 생겼다.
철컹, 철컥.
놈이 불필요한 모듈을 제거하고 있었다. 팔다리와 등에 있던 장비들이 떨어졌고, 위장변색 기능조차 사라진 얄팍한 전신 전투복만 남았다.
‘놈이 뽑은 무기는 칼과 권총.’
재정비한 놈이 칼을 든 손으로 벽을 붙잡으며 제동을 걸었다. 나도 공중제비를 돌며 통로의 벽에 발을 걸쳤다.
끼이이익!
내 발끝에 걸린 쇠막대가 기괴한 소리를 내며 휘었다.
타- 앙!
놈이 내 미간을 향해 총을 쐈다. 단순한 견제용이었다.
난 진작 목을 비틀어 총구의 궤도에서 벗어난 상황이었다.
‘나와 대등하다. 간발 차의 수싸움이야.’
누가 우세하거나 열세일 정도로 차이가 나지도 않았다. 어쩐지 기시감이 든다. 뭐, 당연한 거긴 하지.
우우우웅!
뇌가 쪼그라드는 느낌이 들 정도로 집중력을 짜냈다. 감각은 고조되었다. 길다를 지킨다는 목적과 생각조차 의식 밑으로 깔아버릴 정도였다.
터엉! 퉁!
놈은 나를 무시하고 싶은 듯이 벽을 박차며 구조물을 붙잡았다.
‘길다가 있는 층으로 먼저 올라가면 놈의 승리지.’
난 입을 열어서 놈의 행동에 제동을 걸었다.
“일레이, 길다에게 손대면 아크바란까지 찾아가서 널 죽여버릴 거다. 카르티카 일가까지 내 손에 깡그리 몰살당할 거야.”
놈이 벽을 잡으며 멈춰 섰다. 일시적인 소강이었다.
……이 정도로 싸웠으면 알 만도 했다. 드문드문 기시감도 느껴졌다.
놈의 정체는 ‘일레이 카르티카’다.
딸깍.
전신 전투복의 하관이 열렸다. 헬멧의 안광이 흐느적거렸다.
“루카, 이건 널 위해서다.”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날 위해서 길다를 죽여? 웃기고 있네, 이 사이코패스 새끼야.”
우린 통로 벽에 매달린 채로 서로를 보았다.
“길다의 죽음은 너만을 위해서도 아니야. 나아가…… 제국을 위해서지.”
“망할 놈인지 년인지 모를, 변태 황제를 위해서겠지. 내가 알아먹을 수 있게 설명해라. 의미심장한 말을 던지며 사라지는 새끼는 키누안 하나면 충분해.”
“황제는 너와 나의 내통을 의심하고 있어. 내가 널 발견하고도 보고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거지. 길다를 죽이고 그 죄를 네게 뒤집어씌우면 의심에서 벗어날 수 있다.”
저 말을 침착하게 하는 일레이를 보니 이가 바득바득 갈렸다.
만약, 바로 되돌아가지 않았다면…… 나는 길다를 살해한 용의자가 된다.
“날 위해서 길다를 죽이고 그 죄를 내게 뒤집어씌운다고? 야, 장난해?”
“그래야 제국의 동향으로부터 널 지킬 수 있어. 널 살리기 위해선 내 손으로 너를 곤란한 처지로 밀어야 해. 자칫하면 죽을 수도 있는 상황까지 말이야.”
일레이의 말을 듣던 나는 절망감을 느꼈다.
방금까지 치밀었던 화조차 얼어붙는 것 같았다. 일레이의 말에는 일리가 있었다.
그러나, 일리만 있을 뿐이다.
“일레이, 아무래도 넌 진즉 미쳐버린 것 같다.”
내 말을 듣던 일레이의 입술이 일그러졌다. 그가 한숨을 쉬었다.
“……너와 내가 보는 시야가 달라진 거지. 젠장, 이게 최선이라는 걸 왜 이해 못 해? 멍청아, 지젤을 찾고 싶지 않은 거야?”
나는 그저 일레이를 노려보기만 했다.
끼리릭.
일레이의 입마개가 다시 닫혔다. 일시적인 휴전과 소강은 끝났다. 난 다시 일레이의 발목을 잡아끌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