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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레이와 이스마엘에게 받은 정보를 취합했다.
지앤지 사이버네틱스는 국영기업도 아니고 제국의 이익과 밀접한 회사도 아니다.
‘제국의 흔한 사이버네틱 기업 중 하나일 뿐.’
지앤지 사이버네틱스의 길다가 보더시티에 오는 이유도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제국에서 내수 주도의 성장은 끝났어. 지앤지 사이버네틱스가 더 나아가려면 다른 국가에서 사업해야 하지. 사이버네틱 장비를 제국 다음으로 많이 쓰는 나라는 연방이고.’
지앤지 사이버네틱스의 확장은 합리적인 순서였다.
‘하지만 일찍이 지젤이 먼저 보더시티를 기반으로 지앤지 사이버네틱스의 사업 확장을 시도했다. 당시에 길다는 그 확장을 반대했고.’
나는 기업가가 아니다. 회사 내부의 사정을 추측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길다와의 밀회를 앞둔 나는 손수공업을 방문했고, 손석재에게 지앤지 사이버네틱스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지앤지 사이버네틱스 말입니까? 이 시점에 그걸 물으시는 걸 보니…… 지앤지가 보더시티로 진출한다는 소문이 사실인가 보군요.”
손석재도 어디선가 들은 게 있는 모양이었다.
“나름의 화제인가?”
“제국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신생 기업의 진출이니 다들 주시는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근간이 사이버네틱 기업이니 우리 쪽과 시장이 겹치지 않아 큰 연관은 없지요.”
“신경계 직결은 요즘 외골격에선 자주 쓰니까, 기술 제휴나 협력도 할 만하잖아.”
내가 넌지시 물었다.
“가시적인 결과물은 비슷해도 다른 계통의 기술입니다. 사이버네틱 의체는 양방향 연결이지만, 강화 외골격의 신경계 연결은 단방향 연결이죠. 단방향 연결로 사이버네틱 의체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장점만 취하는 겁니다. 루카 씨, 기술은 계속 발전하고 있습니다. 예전엔 뇌와 기계를 양방향으로 연결하는 위험을 짊어질 만큼 반응성과 성능의 차이가 압도적이었지만…… 요즘은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좁혀졌죠.”
손석재도 태생이 공학자인지라 이런 부분에선 설명이 길었다. 그는 ‘사이버네틱 의체’의 효용성이 낮아지고 있다는 걸 언급하면서 내 눈치를 보았다.
‘강해지기 위해 팔다리를 자른 사람 입장에서 듣기 좋은 말은 아니지.’
하지만 손석재도 결국은 군인이나 전사가 아니다. 사업가이자, 공학자일 뿐이다. 효율과 수치로 장비와 무기를 바라본다.
“실전에선 그 작은 차이 때문에 생사가 갈려. 게임처럼 죽은 뒤에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전장을 살아가는 사람에겐 작은 차이가 아니야.”
내가 여유 있게 대답했다. 손석재도 생각하듯 턱을 매만지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지 못한 부분이군요. 루카 씨의 말도 일리가 있습니다. 죽으면 안전성이고 뭐고 의미가 없죠. 경제적 효용성과 안전성은 집단에겐 정답이지만, 개인에겐 언제나 정답일 수가 없으니까요.”
“현실에선 부작용의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조금 더 강해져야 하는 상황이 부지기수다. 특히 위로 올라갈수록 말이야. 기계가 정신을 좀먹더라도 당장 죽는 것보단 낫잖아.”
손석재는 자신의 사무실 찬장에 놓인 술을 꺼냈다. 그는 내게 술을 권했으나, 난 거절했다.
“하여튼 지앤지 사이버네틱스와 루카 씨는…….”
손석재가 중얼거리다가 술을 따랐다. 그는 잠시 단말기의 정보를 확인했다.
“……모종의 관계가 있었네요. 행방불명된 공동대표가 의붓남매였군요. 여러 가지로 루카 씨의 상황은 복잡하네요.”
손석재도 내 신원을 알고 있다. 그가 고분고분한 이유 중 하나다.
쟈파가 중상만 아니라면 손석재와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중상을 입은 쟈파를 몇 번이나 깨울 순 없었다.
“내 조사로는 지젤 쿠스토리아가 지앤지 사이버네틱스의 보더시티 진출을 추진했어. 12년 전에 말이야.”
“저도 기억이 납니다. 그랬던 적이 있죠.”
“당시엔 다른 공동대표인 길다가 보더시티 진출을 반대했다. 그런데 이젠 길다가 보더시티 진출을 추진 중이야. 이럴 거면 12년 전에 반대할 이유가 없잖아. 작은 지부라도 두고 천천히 준비했다면 훨씬 편했겠지.”
“이게 절 찾아오신 이유로군요. 기업가로서의 제 의견을 물어보시는 거겠죠. 제 대답이 도움이 될진 모르겠지만…… 전 그쪽 공동대표 두 분이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 모릅니다. 그러니 일반적인 경우라고 가정해서 추측해 보겠습니다.”
나는 물을 마시며 손석재의 말을 기다렸다. 손석재는 황금빛이 도는 술을 한 모금 마시고선 말을 이어갔다.
“지앤지 사이버네틱스는 제국 내에선 성장 동력을 잃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누가 봐도 예견된 결과죠. 일반적인 기업이라면 수년 전부터 사업 확장을 준비해 뒀겠죠. 12년 전이라도 싹을 미리 뿌리기엔 이른 시기가 아니었을 겁니다. 지사를 두고 직영점 하나만 운영해도 되니까요.”
“성장 동력이 다 멈추고 나서 뒤늦게 진출하는 건 부자연스러워. 기업가가 아닌 나도 그 정돈 알 수 있지.”
“하지만 크게 이상할 건 없습니다. 내부적으로 사업 확장과 진출 계획이 연달아 고꾸라질 수도 있죠. 아니면 외압으로 급격하게 계획이 바뀐 걸 수도 있고요. 제국에선 잦은 일이죠. 그리고 12년 전에 공동대표 두 분이 보더시티 진출을 가지고 찬반을 다퉜다는 건 처음 듣는 정보군요. 내부인이나 알 수 있는 정보죠.”
손석재가 골몰히 생각하더니 술잔을 탁자에 내려두었다.
“……아마도 권력다툼이었겠죠. 보더시티 진출 여부는 사실 중요치 않았을 터고, 기업 내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두 대표가 대립했을 겁니다. 보더시티 진출이 성공했다면, 그걸 추진한 대표가 회사 내의 주도권을 잡겠죠. 반대한 이는 발언권을 잃었을 거고요. 어쩌면 대표 한 분의 행방불명은…….”
손석재가 말하다가 내 눈치를 보았다.
“다른 대표의 짓일 수도 있다는 건가?”
“정황상 그렇습니다. 어디까지나 정황상으로는요. 저는 내부 사정과 그쪽 관계에 대해 모릅니다. 냉정하게 이익을 따져보며 생각해본 거죠.”
난 여기까지 온 보람이 있다고 생각했다.
손석재는 길다, 지젤, 지앤지 사이버네틱스에 대해 편견과 주관 없이 객관적인 사실만 보고 말했다. 제3자 입장에서는 상황이 저렇게 보인다는 이야기다.
“도움이 됐어.”
내가 짧게 말했다.
손석재는 술잔을 들어서 가볍게 빙빙 돌렸다. 황금빛 액체가 돌면서 휘발성 물질이 공기 중으로 퍼졌다.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이걸로 오 대리의 일은 잊었으면 합니다. 그땐 저도 감정적으로 꽤 흥분했거든요.”
“나도 거기에 대해 별생각 없어. 나도 무고한 사람을 죽인 적이 없다고 말했지만…… 사실 그렇지도 않거든.”
난 무고한 희생자를 낸 적이 있다. 제국과 상부의 명령 때문이었니 뭐니 하면서, 자의였니 타의였니…… 그렇게 구차하게 변명할 생각은 없다.
나도 범주로 따지면 악인에 속하는 인간이다.
“우린 모두가 회색입니다. 하얀색과 검은색은 없죠. 그리고 자신이 하얀색이라 믿는 자가 오히려 가장 사악한 자입니다. 한없이 시커먼 사람이죠.”
손석재가 술을 크게 들이마시며 말했다. 그는 목구멍이 타들어 가는 느낌을 즐기듯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입을 벌렸다.
‘손석재에겐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다.’
나도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자기합리화와 궤변이지만 묘하게 설득되는 부분이 있었다.
소년기의 루카가 손석재를 만났다면…… 꽤 큰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궤변이고 자시고, 자기 자신에 대한 강한 확신과 주관이 뚜렷해. 사람을 끌어들이는 인력을 가지고 있어. 자신의 색깔이 약한 자들은 손석재 같은 사람에게 감화되고 물들겠지.’
나는 손가락이 꿈틀거리는 걸 느꼈다.
‘역시 손석재는 위험한 인간이다.’
이 자리에서 죽여야 한다. 손석재는 막 피어나기 시작한 혼돈이다.
‘때가 되면, 자신의 목적을 위해선 사회적 질서와 도덕, 불문율 따윈 깡그리 무시할 거다. 더 무서운 건 그런 손석재에게 이끌린 자들이 호응하며 큰 집단을 이룰 거라는 점이지.’
나는 입술을 아주 작게 벌리며 호흡했다.
‘내가 무슨 자격과 이유로 손석재를 평하고 단죄한다는 거지?’
심경이 복잡했다. 나 자신이 오만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삐삑.
마침 손석재의 단말기가 울렸다. 그는 단말기를 확인하더니 싱긋 웃었다.
“아, 루카 씨. 선물이 있습니다.”
“선물?”
“무쉬르 알 카슈라의 잔해를 수습하다가 나온 물건입니다. 루카 씨도 따로 언급한 적이 있었죠. 잠시만 기다려주시죠.”
내 뇌리에 떠오르는 게 있었다.
‘화광자검.’
발렉의 것이었다가 무쉬르 알 카슈라에게 넘어갔다. 당시 전장에서 손수공업이 회수하는데 성공한 모양이었다.
‘교묘하군.’
화광자검은 진작 회수했을 것이다. 내게 말하지 않았다가 이제야 주는 거겠지.
‘적당한 순간에 환심을 사기 위해서.’
손석재의 시선이 문으로 향했다. 나도 복도의 발소리를 들었다.
끼익.
낡은 문을 열고 직원이 들어왔다. 직원은 금속함을 탁자에 내려두고선 나갔다.
“회수는 사실 꽤 예전에 했지만, 손을 좀 보느라 늦었습니다. 은하도공 출신의 생존자를 힘들게 찾아서 개수를 맡겼습니다. 특히 한 자루는 손상이 심했거든요. 뭐, 깜짝 선물이 더 기분 좋은 법이죠.”
회수 사실을 숨긴 핑계도 적당히 있었다.
‘날 쓸모없다고 판단했으면 자기가 화광자검을 챙겼을 터.’
얕은 수작이지만, 기분이 썩 나쁘진 않았다. 이 정도의 계산은 누구나 하는 법이다.
‘오히려 철저하게 계산적으로 날 대하는 편이 나아. 언제든 연을 끊을 명분이 있으니까. 불필요하게 엮일 일도 없지.’
손석재가 기다란 금속함을 열었다.
“개수한 화광자검 한 자루와…… 비수 세 자루입니다. 비수의 이름은, 아, 여기 날 아래쪽에 적혀 있네요. ‘불나방’입니다.”
불나방, 그 이름을 듣자마자 나는 피식 웃었다.
“마음에 드는군.”
나는 내용물을 보며 말했다.
화광자검은 원래 두 자루였다. 한 자루는 약간 손을 본 정도이고, 반파된 한 자루는 비수 셋으로 개조되었다.
‘마침 새로운 무기가 필요할 때였어.’
아무리 내 의체의 성능이 좋아도 근래 전투에서 화력이 부족했다.
내가 상대하는 자들은 말도 안 되는 최첨단 의체와 장비로 무장한 괴물들이다.
‘따지고 보면, 난 손석재에게 빚을 지고 있다. 놈이 마음에 들고 안 들고를 떠나서…….’
난 어지간해선 손석재를 해치기 힘들 것이다. 놈이 남들에겐 죽어 마땅한 악인이지만, 내겐 그런 면모를 드러내지 않았다.
‘내 성격을 파악하고 있는 거지. 난 그렇게 어려운 인간은 아니니까.’
사업가 입장에선 다루기 쉬운 사람이 나다.
어쨌든, 나는 받은 만큼 정직하게 돌려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게 악의든 호의든 말이다.
‘이 선물 하나 때문에 손석재는 훗날 목숨을 건질 수도 있지.’
나는 쓴웃음을 삼키며 새로운 화광자검과 불나방 세 자루를 챙겼다.
난 손석재의 사무실을 나갔다. 손석재가 날 배웅하려고 일어섰다.
저벅, 저벅.
복도를 지나 공터로 가니 연방의 공무용 공중차량 한 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치이익.
공중차량의 문이 위로 열렸다. 거기엔 이스마엘 라가 앉아있었다.
이스마엘은 고개를 숙여 나와 손석재에게 인사했다. 그리곤 시간을 확인하고서 날 재촉했다. 생각보다 손석재와의 대화가 길어지긴 했다.
“가시죠, 루카 씨.”
이스마엘이 말했다.
이제, 나는 길다와 마주한다.
끼릭.
공중차량으로 올라서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땅이 나를 잡아끄는 것 같았다. 이야기를 길게 하며 시간을 벌고 싶은 건 나였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