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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d Born Blood Chapter 244

244
나는 오 대리가 살해한 타르파 창부의 시신을 이불로 가렸다. 괜히 라피스가 생각나서 보기가 어려웠다.

‘자칫하면 라피스도 이런 꼴이 될 뻔했다.’

나도 내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절실히 깨달았다. 난 외계종족에 대한 살의를 그득그득 담고 있는 짐승들 사이로 라피스를 밀어 넣은 셈이었다.

‘라피스는 투덜거리면서도 내 부탁을 들어줬지. 손수공업에 머물던 라피스의 언행이 거칠었던 것도 극도로 예민해진 탓이었어. 자신을 언제 죽일지 모르는 놈들이 주변에 득실거리니까.’

욕지거리가 절로 나왔다, 병신 같은 루카. 아직도 한심한 짓을 저지르고 다니는구나.

‘라피스가 살아남은 건 에퀘시안 용병이 상시 경호한 덕분이야.’

에퀘시안 용병이 없었다면 오 대리는 흉기를 들고 밤중에 라피스를 찾아갔을 터다.

‘그저 한 사람의 악의.’

거창한 계획이나 음모는 없었다. 타르파가 무척이나 미웠던 한 사내의 돌발 행동이었다.

“후우우…….”

시가 연기가 방안을 안개처럼 메우고 있었다.

손석재는 폐가 시커멓게 착색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매캐한 연기를 빨아들이고선 내뱉었다. 그는 머리가 지끈거리는지 관자놀이를 손으로 짚었다.

“오 대리, 도대체 왜 그런 건가? 내가 못 해준 게 뭐가 있다고.”

오 대리는 포박당한 채로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는 표독스러운 눈으로 손석재를 노려봤다.

“타, 타르파를 살려서 보냈으니까요. 그것도 절 모욕한 년을요.”

“그야…… 그건 사업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 자네도 이해할 만한 일이었지 않나?”

손석재는 ‘혐오’보다 ‘야망’이 우선이었다. 그는 자신의 다른 고차원적 욕망을 위해서 일차원적인 혐오 본능을 누를 수 있었다.

“제게 약조하신 게 있잖습니까!”

“그래서 타르파…… ‘사냥’에는 자네를 항상 데려갔지.”

손석재가 사냥이라는 말을 내뱉으며 내 눈치를 살폈다. 난 팔짱을 끼며 어깨를 으쓱했다.

‘손석재가 비열하고 잔인한 인간이라는 건 나도 알고 있다.’

손수공업은 혐오 범죄를 저지르는 집단이다. 그러나 사회적 약자만 골라서 희생양으로 삼았기에 지금까지 존속한 것이리라.

‘반항할 힘을 갖춘 외계인은 건드리지도 않았겠지.’

비열하고 약아빠진 짓이다. 손석재는 내가 혐오하는 부류의 인간이었다.

‘그러나 손석재는 호의로 날 대한다. 날 중요한 인물로 여기지.’

감정적 이유만으로 내치기엔 손석재는 유용한 인물이다.

‘내 눈앞에서만큼은 비열한 면모를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아. 내가 불편하게 여긴다는 걸 알기 때문이지.’

손석재가 내 앞에서 무고한 외계인을 죽이거나 고문했다면 나도 참기 힘들었을 터다.

‘완전한 협력이 어려운 불편한 관계.’

세상의 대부분 관계가 그러하다. 나와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사람은 없다. 불편하다고 내쳤다간 주변에 남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으리라.

물론, 손석재는 내 기준으로 불편의 범주를 상당히 많이 넘어선 존재다. 언젠가는 연을 끊어야 할 터다.

‘훗날의 일이지. 지금은 아니야.’

나는 손석재 뒤에 서서 상황을 관망했다. 직원 두 명이 총구를 오 대리의 뒤통수에 겨누고 있었다.

“오 대리, 나와 함께 쟈파 상사로 가세나. 자네가 진심을 다해 사과하면 내가 어떻게든 목숨을 건지게 해주겠네. 약속하지.”

손석재가 손을 뻗으며 오 대리에게 제안했다.

‘상관으로서 맞는 행동이다.’

손석재는 오대리를 책임지고 감당하려 했다. 그 모습을 본 다른 직원은 손석재를 더 신뢰할 것이다. 마지막까지도 부하를 버리지 않는 모습을 봤으니까 말이다.

“사과? 언제부터? 우리가 외계종족에게 비굴하게 굴었단 말입니까! 사장님도 이상해졌습니다! 연방 정부의 사업에 끼어들 때부터 달라졌단 말입니다!”

오 대리가 울부짖었다.

‘……그야 정부 밑에서 일하려면 외계종족과도 협상할 일이 자주 생기지. 작은 회사일 때처럼 막 나가기 힘들어.’

손수공업은 거대한 흐름에 올라탔다. 예전과 같은 기조를 유지하기 힘들다.

‘집단이 변화하면 따라가지 못하고 도태되는 이들이 있다.’

오 대리가 그러한 존재였다.

“오 대리, 자넨 이미 타르파를 꽤 많이 죽였지. 그 정도면 복수로 충분하지 않나? 자네 집안을 파탄 낸…… 타르파도 직접 족치게 해줬잖는가.”

손수공업의 기묘한 충성심이 이해가 됐다. 손석재는 부하 하나하나를 저런 식으로 관리한 모양이었다. 필요하면 복수조차 도와준 것이다.

“흐, 흐흐흐…….”

오 대리는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그 미소가 섬뜩했다. 복수심 너머의…… 사악하고도 구역질 나는…… 욕망이 담겨 있었다. 나도 자주 보았던 그 욕망이다.

오 대리의 눈빛에 담긴 감정은 복수심만 있는 게 아니었다.

“……하, 젠장, 내 실수로군. 미안하네, 오 대리.”

손석재도 눈치를 챈 모양이다. 그도 이런 경우를 꽤 봤겠지.

‘오 대리는 살인의 쾌감을 깨달은 거다.’

이미 복수심이 문제가 아니었다.

‘작디작은 타르파 종족을 괴롭히고 죽이는 걸 즐기고 있어. 쾌락을 위한 희생양에 불과한 타르파 종족의 라피스가 자신을 모독했으니 참을 수 없었겠지.’

복수를 위한 살인이 어느덧 개인적인 쾌감으로 변한 셈이었다.

‘오 대리의 기질 자체가 살인마 가능성이 있었겠지만, 그 기회를 제공한 건 손석재다. 기회가 없었다면 자신의 가학성과 살인의 쾌감을 깨닫지도 못했겠지.’

한숨이 나올 만도 했다.

내가 끼어들며 입을 열었다.

“저자를 쟈파 상사에게 넘겨. 그러면 일이 원만하게 끝날 거다. 범인을 찾았으니 다행이로군.”

“……그렇죠. 쟈파 상사도 우리 못지않게 뒤가 구린 회사니까요. 오 대리도 쟈파 상사에서 고문을 당하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몇 번이고 사죄할 겁니다. 올바른 대응이자 약삭빠른 처신이죠, 아무렴요.”

시가의 재가 손석재의 손등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는 재로 손등이 타들어 가는데도 멍하니 오 대리를 보고 있었다.

손석재가 이윽고 미간을 찌푸렸다.

까딱.

손석재는 턱짓으로 권총을 든 부하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오 대리가 눈을 감았다. 그는 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감, 사합니다, 사장님.”

“지옥에 먼저 가거든, 내 자리나 맡아주게나.”

나는 손수공업 직원의 행동을 방해하지 않았다.

탕! 탕!

직원이 방아쇠를 연거푸 당겼다. 후두부에 총알이 박힌 오 대리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주르륵, 뚝.

핏물이 오 대리의 목덜미를 타고 땅바닥에 떨어졌다.

오 대리는 죽었다.

“방해하지 않고 지켜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루카 씨.”

손석재가 손을 툭툭 털며 일어섰다.

“불필요한 갈등을 더 만들고 싶진 않았거든. 안 그래도 피곤한 일이 많아.”

나는 방을 나서며 말했다. 직원들이 뒷정리를 알아서 끝낼 것이다.

“저는 루카 씨가 라피스 양의 복수를 위해 오 대리를 고문하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랬지. 하지만 돌아가는 꼴을 보고 있으니 그럴 마음도 사라졌어.”

그저 한없이 찝찝할 뿐이었다.

‘이종족 간의 공존이 가능은 한 것인가?’

수많은 모순이 있었다.

“변명하자면, 오 대리도 원래는 피해자였습니다. 저번에 말한 것처럼, 오 대리의 부모님이 운영하던 공업소가 타르파 때문에 망했죠. 그 때문에 불우한 일을 겪었습니다. 상당히 처참한 과거사가 있죠.”

“저번에도 말했지만, 그건 경쟁에서 밀린 거야.”

손석재가 내 말을 비웃듯이 웃었다.

“그 타르파들은 자기들 때문에 주변 인간의 공업소가 망할 걸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 타르파들이 공존을 생각했다면 그러지 않았을 겁니다. 주변은 신경도 쓰지 않는 거죠. 타르파 종족은 묘한 면에서 고집이 강하고, 때때로 이상할 정도로 시야가 좁아지곤 하니까요.”

나도 코웃음을 흘렸다. 공감 가는 바가 있어도 동의해주긴 싫었다.

“그렇다고 해서 쾌락 살인마를 변호하고 싶지 않군.”

“……루카 씨도 전투와 살인으로 쾌감을 얻죠.”

나도 순간적으로 발끈했다. 자기통제가 느슨했다면 손석재의 멱살을 잡았을 것이다.

“난 무고한 약자를 이유 없이 죽이진 않아.”

“어차피 둘 다 살인입니다. 이유는 그저 핑계죠. 선악과 도덕적 사유는 시대마다 변하기 마련입니다. 과거에도 수많은 살육이 ‘정의’라는 이름으로 시행됐죠. 하물며 루카 씨는 자신의 얄팍한 판단과 잣대로 살인을 저지르고 다닙니다. 명예로운 전사, 혹은 군인이라는 방어기제로 자아를 보호하면서요. 이편이 더 비겁하지 않을까요?”

여기서 손석재에게 윽박지르거나 폭력을 행사한다면, 정말로 얄팍한 인간이 되는 셈이다.

“뭐, 반박하기 힘들군. 맞아, 난 죽여도 될 만한 사람을 찾아다녀. 찢어 죽여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나쁜 놈을 발견하면 신이 나지. 예컨대…….”

“저 같은 악인 말입니까?”

손석재가 내 말을 자르며 입술을 비틀었다. 나도 웃고 말았다.

“그래, 그쪽 같은 악인은 사지를 비틀어 죽여도 난 두 발 뻗고 푹 잘 수 있어.”

“하하, 맞습니다. 나쁜 건 어디까지나 저죠. 방금 제가 내뱉은 말은 전부 궤변입니다. 루카 씨는 명예를 아는 사람이고요.”

손석재가 미소의 가면을 쓰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내뱉었다. 그는 대놓고 날 비꼬고 있었다. 몇 시간 전이라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손석재의 날 선 태도는 오 대리의 죽음 때문이다.

‘부하를 아끼는 마음만큼은 진심이로군.’

그걸 알기에, 나도 손석재의 야유를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난 손석재와 헤어지고선 쟈파 상사의 사옥으로 돌아갔다. 이날은 잠자리가 조금 불편했다.

* * *

나는 망명 절차가 끝나는 날까지, 쟈파 상사의 사옥에 머물렀다.

그리고 때가 되었다.

드르륵.

난 창문을 열고 저 멀리서 날아오는 배달 드론을 보았다.

위이이잉.

배달 드론이 일정한 고도를 유지하더니 수납함을 내게 내밀었다.

배달한 물건은 내 신분증이었다.

‘이젠 빼도 박도 못하는군.’

난 정식으로 벨라토 연방 소속이 되었다. 얼굴과 이름이 나온 신분증이 내 손아귀에 있었다. 위조방지를 몇 겹으로 해둔 신분증은 빛을 튕겨내듯 반짝였다.

-신분증은 받으셨습니까?

난 이스마엘의 통신을 들었다.

“방금 수령했습니다.”

-이젠 루카 씨가 제게 값을 치를 차례입니다.

“작은 것부터 시작하죠.”

창문을 닫은 나는 내 방의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작은 것이라니, 내키진 않지만 서두르진 않겠습니다. 첫술에 배부를 순 없는 법이니까요.

이스마엘이 낮게 웃었다.

“차관님, 지앤지 사이버네틱스라고 아십니까?”

-아, 이름은 들어봤습니다.

“사업 확장차 지앤지의 CEO가 보더시티를 조만간 방문할 겁니다. 제 말이 맞습니까?”

-잠시 확인하겠습니다.

확인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렇군요. 어떻게 아신 겁니까? 이건 아직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정보입니다.

“이리저리 듣는 게 있으니까요.”

이 말을 들은 이스마엘의 눈이 가늘어졌을 것이다. 내 정보의 출처가 어디인지 궁금하겠지.

-지앤지 사이버네틱스 건을 언급하신 이유가 궁금하군요.

“따로 비밀리 자리를 마련해주면 좋겠습니다. 그쪽 CEO와 협상을 연방에게 유리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제가 도울 수 있습니다. 일이 잘 풀리면 다른 정보도 제공하죠.”

이스마엘이 잠시 침묵했다. 나도 간담이 서늘하다.

‘이기적인 제안이라는 건 나도 안다. 이스마엘이라면 협상에 도움을 주겠다는 말을 순순히 믿진 않겠지.’

미안한 기색을 드러내지 마라. 여기선 강하게 나가야 한다.

-이건 정보 제공이 아니라…… 루카 씨의 목적을 위해 밀회를 요구하는 거군요. 아, 그리고 지앤지 사이버네틱스와 루카 씨는 모종의 관계가 있군요. 행방불명된 공동대표 지젤 쿠스토리아…….

역시 이스마엘은 눈치가 빠르다.

“그건 언급하고 싶지 않군요. 지젤과 전 사이가 제법 좋았거든요. 어쨌든 관계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제가 협상에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이번만 양보하겠습니다. 제 인내심은 의외로 깊지 않습니다, 루카 씨.

“저도 차관님의 인내심을 시험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랬으면 좋겠군요. 자세한 일정은 따로 보내겠습니다.

통신이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아직 보더시티 내부에서도 해결되지 않은 일이 많다. 나와 엮인 이들은 중상을 입거나 곤란한 상황에 있기도 했다.

‘그러나, 일단은 길다를 만나야 한다.’

내가 없는 동안, 지젤이 무얼 했는지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길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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