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쟈파 상사의 사옥은 군사 시설이나 다름없었다. 이 공고한 성은 메노아 친위대 습격 사태 때에 자신의 방호 능력을 증명했다.
공습과 폭격을 받아도 끄떡없을 사옥이다. 그러나 지금은 허무하리만큼 옥상과 상층부터 무너졌다.
쟈파의 집무실까지 파고드는 공격은 보통 일이 아니다.
‘무엇인가?’
공격 방법은? 어떤 무기를 사용한 거지?
‘누구인가?’
키누안? 아니면 쟈파의 적? 무쉬르 알 카슈라? 손석재 사장? 아니면 연방?
‘목적은?’
이건 쉽게 좁혀진다. 나, 혹은 쟈파겠지.
나는 온갖 생각을 하며 눈을 떴다. 통증부터 선명해졌다.
욱신, 욱신,
후폭풍의 여파로 이리저리 부딪힌 탓에 온몸이 삐걱거렸다.
‘움직이지 못할 건 없다. 생각보다 상태는 좋아. 기껏해야 갈비뼈가 부러지고, 근육이 파열된 정도다. 척추는 멀쩡해.’
나는 내 왼손을 응시했다.
‘쟈파의 팔.’
그러니까…… 정말, 쟈파의 팔만 덩그러니 내 왼손을 잡고 있었다. 팔꿈치 이후로는 찢겨 나가 없었다.
스륵.
내 시선은 잔해와 뒤섞인 쟈파에게서 멈췄다. 아직도 폭발의 여운 때문에 대기가 웅웅거렸다.
“츠으, 츳…….”
쟈파가 여린 숨소리만 내뱉고 있었다. 그는 피투성이였다. 팔다리도 꺾이고 찢겨서 누가 당긴다면 고스란히 빠질 것 같았다.
실제로도 내가 잡고 있던 쟈파의 팔은 뜯겨 나갔다. 그렇다고 내가 잡아당기지 않았다면 폭발에 빨려 들어가 즉사했을 것이다.
쟈파는 나보다 폭발에 더 크게 휘말렸다. 나처럼 무의식적으로 몸을 보호할 정도로 훈련받은 사람도 아니니 극심한 중상에 이르렀다.
스륵, 스륵.
폭발로 날아갔던 에퀘시안들도 하나둘씩 일어서며 전투를 준비했다. 그들도 일부는 즉사하거나 중상이었다.
‘엔.’
엔도 어긋난 어깨를 자력으로 끼워 맞추더니 사태를 파악했다. 그는 다른 에퀘시안에게 손짓하더니 쟈파의 이송을 지시했다.
‘처음엔 날 의심하듯 쳐다봤다.’
그러나 엔은 바보가 아니었다. 내가 쟈파를 죽이거나 해하려 했다면, 이미 쟈파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쿠르릉!
천장에서 굉음이 계속 들렸다. 얼핏 봐도 집무실의 천장에는 십수 미터의 보강재들이 수십 겹으로 걸쳐 있었다.
‘일반적인 폭탄이나 공격으론 뚫을 수 있는 구조가 아니야. 군사용으로 개발된 관통 폭탄이다.’
특수한 목적을 위한 무기다. 민간이나 개인에게서 구하기 힘들다.
내 머리가 빠르게 돈다.
‘군수산업체, 혹은 군사용 무기도 손에 넣을 수 있는 권세와 재력을 가진 특권층. 그것도 아니라면…….’
최악의 가정이 머릿속에 치밀었다.
‘국가의 폭력. 즉, 군대.’
아무리 보더시티라도 여긴 벨라토 연방이다. 타국이 공식적으로 군사 활동을 벌이면 엄연히 외교적 마찰이 생긴다.
‘그렇다면 연방이 군대를?’
연방에게 그럴 동기가 있단 말인가?
곧 나는…… 절망적인 폭력의 실체를 확인했다.
쿠- 웅!
옥상에서 집무실까지 직선으로 길이 열려 있었다. 그 아래로 시커먼 물체가 떨어졌다.
끼리릭, 끼릭.
기계음이 들렸다. 요란하거나 억세지 않았다. 부드러운 마찰음이 듣기 좋게 퍼졌다.
기이잉!
뿌연 먼지 속에서 커다란 광학 렌즈 하나가 빛났다.
“……레기온.”
나는 고요히 그 이름을 읊조리며 철의 기사를 보았다.
레기온의 외장과 도색은 낯선 묵색이었다. 빛조차 삼키는 듯했다. 그러나 레기온 특유의 골격이 드러나서 나로선 모를 수가 없었다.
키리리리릭!
외눈의 레기온은 묵직한 창을 펼쳤다. 접혔던 창대와 창날이 세차게 튀어나왔다.
끼릭.
그리고 창을 꼬나 쥔 레기온이 손가락을 뻗어 날 가리켰다.
……목적은 나였다.
이반 크라치아의 행동은 빨랐다. 그는 수하를 보내 날 손에 넣으려 했다.
‘근위대 소속의 레기온이 아니다. 아마도…… 자아를 잃은 그림자의 레기온이겠지.’
그림자의 전투의체와는 겨룬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림자의 레기온과는…… 처음 싸우는 것이다
‘해볼 만할까?’
나쁜 버릇이 도진다. 호승심이 치솟는다. 지금 내겐 화광예도도 없다.
‘화력과 공격력이 부족하다.’
자동추적 권총 따위가 레기온에게 통할 리가 없다.
사실상 라피스의 의체만 믿고 무장한 레기온과 맞서야 한다.
까득, 까득.
내 악력의 출력이 높아지면서 손가락이 꿈틀거렸다. 힘들다는 걸 알면서도 고난에 도전하고 싶었다.
쿠- 웅! 쿵!
레기온 뒤로 낙하가 두 번 더 일었다.
……정정하자, 도전할 만한 고난이 아니었다.
그림자 레기온은 총 셋이었다. 전투의체 그림자 셋도 감당하기 힘든 판국이다. 제국의 정수는 호락호락하지 않다.
에퀘시안들은 쟈파를 이송하고선 상황을 관망했다.
‘지금은 쟈파의 명령이 없다. 에퀘시안 용병은 자의로 판단하고 움직이겠지.’
습격자들은 명백히 날 노리고 있었다. 에퀘시안과 쟈파는 관심 외라는 듯이 움직였다.
에퀘시안들은 나를 싫어한다. 그리고 눈앞의 습격자가 강대한 무력을 지녔다는 건 금방 이해했을 것이다.
‘에퀘시안들이 날 도와줄 이유는 없다.’
외눈의 레기온이 날 쳐다보다가 옆을 응시했다. 엔이 서 있던 방향이었다.
투- 웅!
굉음이 터졌다. 레기온의 머리에서 충격탄 특유의 에너지 폭발이 구형으로 일었다.
난 엔을 쳐다봤다. 그는 충격소총의 방아쇠를 연달아 당겼다.
텅! 퉁!
충격탄이 레기온의 몸과 머리를 두드렸다. 그러나 레기온의 장갑에서 푸르스름한 에너지 반응이 일면서 충격을 중화했다.
철컥, 쉬이이!
냉각 탄피가 엔의 발밑에 떨어졌다.
-우, 린, 너희와 싸울, 생각이 없다. 우리의 목적은 제국의 배신자 루카우스 쿠스토리아다.
휘청거리던 레기온이 충격을 바로잡으며 엔에게 말했다. 저들이 온화하거나 불필요한 사상자를 내기 싫어서 하는 말은 결코 아니다.
‘여기서 에퀘시안 용병이 참전하면 일 처리가 어렵다는 걸 알기 때문이지.’
엔이 손짓으로 에퀘시안들에게 전술 신호를 보냈다.
-너흰 멋대로 쟈파 상사의 사옥에 침입했고, 우리 고용주에게 상해를 입혔다. 우리의 임무를 너흴 격퇴하는 거지. 너희가 어떤 존재이고 어디 소속이건 간에 달라질 건 없다, 머저리 같은 깡통 새끼야.
이 역시 내 착각이었다. 에퀘시안 용병대가 싸우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에퀘시안 용병들은 감정적으로 내키지 않더라도, 설사 승산이 낮더라도 원리원칙대로 행동하며 싸운다. 쟈파가 장기고용할 정도면 에퀘시안 용병대 중에서도 신의성실한 이들일 것이다.
아무래도 내가 멍청해진 것 같다. 뭐든 내게 불리하게 돌아갈 거라 예상하다 보니 기본적인 걸 놓치고 있었다.
……조금만 더 세상이 내게 친절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자.
현재 이 층에 머무는 에퀘시안 용병은 엔을 포함해 18명이었다. 시간을 번다면 용병대의 추가 전력도 합류할 것이다.
퉁!
난 죽은 에퀘시안의 곁으로 가서 발을 굴렀다.
내 발에 짓눌린 칼이 반발력으로 튀어 올랐다. 떠오른 칼날이 내 눈앞까지 치솟았다.
휙
난 에퀘시안의 칼을 낚아채듯 쥐었다. 그들에겐 호신용 나이프 크기지만 내겐 그럴싸한 중검이었다.
부웅!
정글도를 휘두르는 느낌이었다. 칼날엔 푸르스름한 빛이 분산되듯 빛났다.
‘단분자 코팅 칼날.’
몇 번 정도는 레기온에게 유효할 것이다.
그림자 레기온 셋과 ‘우리’의 싸움이 시작됐다.
퉁! 쾅!
사방에서 폭발이 일었다. 굉음으로 귀가 먹먹했다. 에퀘시안 용병들은 효율적으로 흩어지며 엄폐했다.
레기온이 고화력 투사체를 쏟아내며 엄폐물까지 날려도 에퀘시안들은 용케 버텨냈다.
에퀘시안 용병들은 끈질기다. 바로 곁의 동료가 죽어도 흔들리지 않았다. 저들이 감정과 슬픔을 모르기 때문에 저러는 게 아니다.
‘감정적 후폭풍은 전투가 끝난 뒤에 정산하면 된다. 지금은 이자가 쌓여도 꾹꾹 억눌러야 하지.’
정예부대에서나 볼 법한 감정 통제와 전투 수행 능력이었다.
두 기의 레기온은 에퀘시안들에게 발이 묶였다. 그러나 외눈의 레기온은 붉은 안광을 흉흉하게 뽐내며 나를 향해 몸을 날렸다.
좁은 공간에도 불구하고 레기온은 거구를 이끈 채로 내 앞에 착지했다. 바닥이 쩍쩍 갈라지면서 잔해가 튀었다.
나는 꿈쩍하지 않고 놈을 보았다.
“이반 크라치아가 산 채로 잡아오라고 시켰지? 까다로운 명령이로군.”
놈이 노릴 곳은 내 팔다리다.
외눈의 레기온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창을 휘둘러서 내 두 다리를 노렸다.
레기온에겐 터무니없이 비좁은 공간이다. 그러나 ‘전투 특화 뇌’를 가진 레기온은 상상을 초월한 연산으로 최적의 움직임을 그려냈다.
휘릭! 휙!
외눈의 레기온은 드넓은 공간에 있듯이 자유로이 움직이며 창을 멋들어지게 휘둘렀다. 그러곤 때때로 팔을 뻗어 내 다리를 낚아채려 했다.
투웅!
나는 레기온의 창대를 손으로 짚으며 훌쩍 뛰었다. 그대로 놈의 머리를 칼로 노렸다.
스륵!
레기온은 부드럽게 고개를 숙이며 내 칼날을 피했다.
‘놀랍군.’
놀라운 건 레기온의 무력이 아니었다.
‘아무리 놈이 내 목숨을 노리지 못한다고 해도, 움직임을 따라갈 수 있다.’
나는 생각보다 훨씬 더…… 레기온에게 잘 대응했다. 전투 호르몬으로 인한 고양감이 아니더라도 해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무쉬르 알 카슈라가 훨씬 더 까다로운 상대였어.’
내가 무쉬르 알 카슈라를 꺾은 건 여러 요행이 따랐기 때문이다.
‘카슈라는 날 죽일 의도가 없었고, 오히려 날 시험하려고 불리한 근접전을 하기도 했지.’
나는 입술을 씰룩이며 레기온의 뒤로 넘어가고 있었다. 레기온이 아무리 출력이 높아도 회전 반경이 크니 나보다 더 재빠를 순 없다.
‘카슈라도, 너도 마찬가지다. 오만하기 짝이 없어.’
난 ‘생포’할 수 있을 정도로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이대로 계속 생포하려 들었다간 네 목이 날아갈 거다.’
나는 레기온이 등을 돌리기 전에 놈의 등덜미 장갑을 붙잡아 당겼다.
툭!
날아가던 내가 레기온의 등덜미를 잡아당기며 바짝 들러붙었다. 단분자 코팅의 절삭력이 가장 좋을 때 급소를 노려야 한다. 팔다리를 베었다가 코팅의 절삭력이 약해지면 놈의 숨통을 끊을 방법이 없다.
‘뒈져라.’
난 레기온의 후두부를 찌르려 했다.
투- 웅!
그러나 레기온의 등덜미 장갑이 폭발하며 터졌다. 난 쇠망치에 얻어맞은 것처럼 터진 장갑에 밀려서 멀찌감치 날아갔다.
‘젠장, 별별 장치가 다 있군.’
하기야 생각해보면 뻔한 장치다. 덩치와 동작이 크면 뒤가 잡히는 상황이 많아진다.
나는 얼얼한 정신을 붙잡았다. 원래라면 방금 상황에서 난 죽었을 것이다.
레기온의 추적 성능과 출력, 반응성이라면 날아가는 나를 창으로 베고도 남는다.
‘역시 날 죽이면 안 되는 거지.’
아무리 그럴싸한 갑옷을 몸에 둘러도…… 저놈은 노예에 불과하다.
자유의지가 없는 기계병사, 이반 크라치아의 노예.
그러나 노예일지라도 그 폭력만은 진짜다. 나와 달리 에퀘시안은 무자비하게 죽어나가고 있었다. 일순간에 열 명도 남지 않았다.
콰직!
하지만 성과도 있었다. 엔이 창날이 레기온의 턱부터 정수리까지 꿰뚫었다. 레기온의 머리가 파직거리더니 다리부터 무너졌다.
‘강하다는 말이 허세는 아니었나 보군.’
좋아, 여기서 살아나가면 엔과 친해져야겠다.
퍽!
그러나 엔은 ‘죽은 레기온’의 주먹에 얻어맞고선 벽까지 처박혔다. 난 그의 배가 움푹 들어가는 걸 보았다. 배 속의 내장이 전부 터졌을 것이다.
사이버네틱 의체는 종종 과잉신호가 잔류해 뇌가 없어도 잠시 움직이곤 한다. 우린 저걸 팬텀 현상이라고 부른다. 나는 저 현상을 잘 알고 있지만…… 엔에겐 낯설었던 모양이다.
“하, 젠장,”
욕지거리가 입에서 나왔다. 외눈의 레기온은 장갑판이 사라진 뒷덜미를 매만지며 나를 향해 오고 있었다.
‘방금 엔이 당하지 않았으면 할 만했다. 승산으로 따지면 오히려 이쪽이 더 높았어.’
그러나 엔이 허무하게 당하면서 승산이 꺾이다 못해 바닥까지 내려갔다.
‘망할, 머저리 같은 에퀘시안-!!’
여기서 살아남으면 한껏 비웃어 주마. 병신, 머저리, 입만 산 외계인 새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