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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d Born Blood Chapter 234

234
나와 쟈파 사이에는 다과가 있었다. 쟈파 상사의 식품사에서 생산한 과자나 음료 따위였다.

달그락.

난 과자 접시를 당겨서 뱀 모양의 쿠키를 집었다.

와그작.

꿉꿉하면서도 중독성이 있는 맛이 났다. 맛있다라는 느낌보단 ‘더 먹고 싶다’라는 생각이 드는 과자였다.

쟈파는 미각과 후각 활용에 재능이 있었다. 하기야 타지룬 종족 전체가 미각과 후각이 뛰어났다. 미묘한 호르몬 변화로 타인의 감정을 감지할 정도니까 말이다.

종족의 차이는 존재한다. 그리고 개체의 차이도 있다. 때론 개체의 차이가 종족의 차이를 넘기도 했다.

인간이면서도 더 타지룬 같을 수가 있고, 타지룬이면서도 더 인간 같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제가 준비한 과자를 드시는군요.”

쟈파가 내 행동을 보며 말했다. 그의 세로 동공이 가늘었다. 살짝 벌린 입에선 두 갈래의 혀가 규칙적으로 빠져나왔다.

“얕은수를 쓰진 않을 것 같아서 말이지. 이 정도까진 널 믿고 있다는 뜻이다.”

우린 상대를 의심하며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서로를 적대하는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잠재적인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것이다.

‘서로의 목적과 이익이 충돌하면 엇갈릴 관계.’

그래, 이 정도가 적절한 관계설정일 것이다. 상대가 내 이익에 반하면 언제든 적이 될 수 있다.

……그렇기에 경계는 해야 한다.

‘내 사정을 전부 털어놓고 협력을 구하고 싶은 충동이 종종 들긴 하지.’

내 머릿속이 조금만 더 말랑말랑했다면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건 쟈파에게 귀속되는 거나 마찬가지다. 중압감에 짓눌려 자유를 포기하고 스스로 노예가 되는 것이지.

난 쟈파에게 사정과 약점을 털어놓고 유능한 부하가 될 수도 있다. 쟈파도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범주 내에서 적극적으로 도와주겠지. 내 짐과 부담도 덜 수 있을 거고, 그 편이 더 편안할 것이다.

자유란 행복과 안락과 거리가 멀다.

내가 생각하는 자유란 최악과 차악이라는 기로에서 자신의 판단으로 선택하고, 그 결과도 오롯이 감당한다는 뜻이다.

기껏 거머쥔 자유의지로 행복과 안락함만 좇는 건 그저 본능의 노예일 뿐이다. 그깟 자유는 존중할 필요가 없다. 조금만 삶이 힘들어져도 자유를 포기할 자들이다. 그들이 원하는 건 자유가 아니라 편안함이니까.

자유의 가치는 행복과 안락을 좇는 게 아니라 얼마나 더 가시밭길을 선택할 수 있느냐에 있다.

‘나는 쟈파와 대등한 위치에 서길 선택했다.’

이 길이 몹시 어려운 일이라는 건 나도 안다. 저 교활하고 유능한 타지룬과 심계를 벌이며 키누안을 추적하고 지젤을 찾아내야 한다.

기이잉.

귓가에 이명이 들린다. 머리가 뜨겁다.

나는 에퀘시안들의 시선과 손가락을 계속 인지하고 있었다. 그들이 공격 준비를 한다면 나도 바로 반응할 것이다.

“루카 씨, 치부와 비밀을 감추는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일까요?”

“그 치부와 비밀을 물리적으로 제거하면 그만이지. 그게 기록물이든 사람이든 말이야. 번져나가서 걷잡을 수 없어지기 전에 처리하는 게 좋겠지.”

“호욧, 호욧. 역시 훌륭하십니다. 루카 씨는 우수해요. 누구나 곁에 두고 싶어 할 겁니다. 하지만 목줄을 채우려고 하는 손을 거침없이 물어버리는 게 문제죠.”

쟈파가 두 손의 손톱을 맞부딪히며 말했다.

“아무에게나 내 목숨줄을 건넬 정도로 바보가 아니거든.”

“하지만 사람들은 쉬이 그러지요. 달콤한 말을 속삭이는 권력자에게 자신의 자유를 기꺼이 넘긴답니다. 그자들이 순수해서 권력자를 믿는 게 아니죠. 그저 편안해지고 싶으니까, 근거도 보증도 없는 장밋빛 미래를 외치는 자에게 자아를 의탁합니다.”

쟈파가 엔에게 턱짓했다. 나는 예민하게 그들의 신호와 행동을 관찰했다.

엔은 집무실의 옆방으로 들어갔다가 나왔다. 그는 복잡한 전자장치가 달린 의자를 밀더니 집무실 중앙에 두었다.

‘가상 현실 기기.’

전자기기를 쭉 훑어보니 시뮬레이션 용도였다.

“파올로 콴의 유산이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군.”

“그렇습니다. 파올로가 죽고 나서 제가 가장 먼저 한 일이죠. 흠이 될 만한 걸 소각하고 삭제했습니다. 파올로의 유산은 제 머릿속에만 존재하죠. 이게 비밀을 지키는 비법이니까요.”

쟈파는 자신의 기억을 일정 부분 추출했을 것이다.

‘유산 준비까지 시간이 걸린 까닭이로군. 그리고 이런 식이라면 키누안도 유산을 훔치기 어려울 만해.’

쟈파가 소매에 손가락을 넣더니 기다란 손톱 사이로 칩 하나를 꺼냈다.

“이건 일회성 기록칩입니다. 열람하는 순간부터 순차적으로 데이터가 삭제되죠. 되감기는 안 되니 집중하셔야 할 겁니다. 뭐, 루카 씨에겐 의미 없는 조언이군요.”

쟈파는 시뮬레이션 기기에 칩을 집어넣었다. 기기가 활성화되면서 점등했다.

“나보고 여기 앉아서 네 기억이나 보라는 소리로군.”

나는 입술이 씰룩거리는 걸 참지 못했다.

“호요오옷, 저도 그만한 위험을 감수하는 셈입니다.”

가상 현실에선 외부 자극에 둔감해진다. 몰입도가 높을수록 현실 감각은 더 흐릿해질 것이다.

‘에퀘시안 용병들이 나를 노려보고 있는 가운데서 시뮬레이션 기록을 열람하라니…….’

간이 배 밖으로 나와야 할 만한 짓이다.

……그리고 나는 간이 배 밖에 나간 짓을 잘하며, 날 공격하지 않을 거란 확신도 상당히 있었다.

‘단순히 날 제거하려고 했다면 이런 짓은 불필요하다.’

쟈파는 정말로 자신의 기억을 보여줄 생각으로 자리를 만들었다. 더불어 내가 얼마나 위험을 감수하는지 지켜보는 것이다.

‘핵심은 쟈파의 기억이 어디까지 있느냐지.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 보여줄 수 있어. 기억 내에서 숨기는 게 있다면 추론해내야 한다.’

나는 걸어가서 시뮬레이션 의자에 앉았다. 등을 기대니 의자가 편안하게 기울었다.

“몇 번이나 말하는 거지만, 이건 키누안 추적과 무관한 기억일 겁니다. 적어도 제 생각에는 그렇습니다. 당신이 위험을 무릅쓰며 열람할 가치가 없죠. 순전히 제 치부와 약점이 관련된 기억입니다.”

“나도 몇 번이나 말하지만, 도움이 되고 안 되고는 내가 판단할 일이다.”

“그렇게 말씀하실 줄 알았습니다.”

나는 시뮬레이션 헬멧을 썼다. 헬멧 안쪽의 전극이 머리에 달라붙었다. 안면을 가리는 화면에서 빛이 불규칙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난 자극에 시선을 맡겼다. 몸이 눅눅해지면서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현실이 멀어진다.

현실이라는 층이 깨졌고, 나는 낯선 감각을 받아들였다.

쟈파의 기억이 날 맞이했다.

* * *

쟈파의 첫 기억은 황무지에서 시작했다.

쟈파는 타지룬 종족이다. 당연히 인간인 나와 뇌 구조가 다르다. 인간의 뇌에 맞게 기억 적합성과 호환성을 손봤더라도 시뮬레이션의 심도가 낮았다.

내가 쟈파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미세한 감각 정보는 부재해서 황무지의 냄새가 느껴지지 않았다.

후우웅.

모래바람은 공허하게 내 눈을 가리고 있었다. 정확히 말해서 쟈파의 시야지만 말이다.

“……‘쟈파’.”

녹슨 목소리가 들렸다.

“입 다물어.”

쟈파가 대답했다. 타지룬어로 시작된 말에 잡음이 섞여 일그러지더니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들렸다.

‘시야가 낮군.’

타지룬은 인간보다 키가 크지만, 지금의 쟈파는 성장기가 끝나지 않은 듯했다.

“아, 저기, 방금 내 내장이 저기에 떨어졌어.”

“뭐, 뭐?”

그제야 자파도 놀라면서 자신이 부축하던 소년을 응시했다.

소년의 얼굴은 익숙했다.

‘메노아의 친위대장.’

그 쌍둥이가 쟈파의 옛 연인이었다. 가문의 추격으로부터 쟈파를 지키다가 죽은 소년이었다.

소년의 꼴은 거적때기나 다름없었다. 전투복은 성한 곳이 없었고, 어설프게 치료한 배에선 피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농담이야. 네 얼굴을 보고 싶었거든. 아까부터 앞만 보길래.”

피투성이 소년이 웃었다.

“좀 닥치고, 기운이나 아껴. 보더시티에 가면…… 추격자들도 우릴 쉽게 찾지 못할 거야. 널 치료할 수도 있을 거고.”

내가 기억하는 쟈파는 신중하고 교활했다. 그러나 여기의 쟈파는 그저 불안에 짓눌린 아이에 불과했다.

“치료할 돈은 있고?”

“……어떻게든 되겠지.”

쟈파는 소년을 부축하며 황무지를 걸었다. 그러나 땅이 발을 잡아끌 듯 소년의 걸음은 점차 힘겨워졌다.

“조금 피곤하네. 먼저 가고 있어. 잠시만 쉬고 나서 따라갈 테니까.”

소년이 창백한 안색으로 말했다.

“꺼둔 통신 장치 있지? 지금이라도 위에 연락해서 나를…….”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그러면 너도 죽고, 나도 죽어. 애초에 난 죽음을 각오하고 여기에 온 거야.”

“왜 그런 거야? 굳이, 왜?”

쟈파가 소년을 탓하듯 말했다.

“몰라서 물어? 기껏 구해줬더니 이런 취급이야?”

“난 타지룬이야. 인간의 눈으로 보면 혐오스러운 생김새잖아.”

“나는 갓난아이 때부터 메노아 가문에서 자랐어. 살면서 타지룬의 생김새가 혐오스럽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지. 넌 아름다워, 특히 삼각꼴 머리의 각도가 예술적이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걸 보니 정말로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전부 내 탓이야. 네게 다가갔으면 안 됐어. 모든 건 내 탓이야.”

쟈파가 자책했다. 그는 눈물을 흘리고 있을 것이다.

“하하, 넌 머리는 좋지만 바보구나, 윽…….”

소년이 웃다가 배를 감쌌다. 그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말을 이었다.

“……네가 내게 다가온 게 아니야. 내가 널 꾀어낸 거지. 우리가 모선에서 자주 마주친 게 우연 같아? 생활 공간도 엄연히 다른데?”

“뭐라고?”

“넌 기억하지 못할 거야. 도도한 타지룬 여자애가 과자를 들며 내게 다가온 적이 있었지. ‘얘가 앞으로 저를 지켜줄 사람인가요?’라고 어르신에게 묻더군.”

“그건…….”

“알아. 넌 다른 훈련생에게도 똑같이 과자를 나눠줬지. 하지만 내겐 특별한 날이었지. 너는 ‘이걸 줄 테니 훈련을 잘 받아서 날 잘 지켜줘.’라고 말했어.”

“특별히 널 의식하고 했던 일이 아니야. 힘든 훈련을 받는 너희들이 불쌍해 보였거든.”

“타지룬에게 드물게 나타나는 동정심이지. 그게 네가 특별한 이유야. 나는…… 특별한 네게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었어.”

심도가 낮아서 감각이 둔한 시뮬레이션이다. 그런데도 소년의 생명이 꺼져가는 게 선명히 느껴졌다. 소년의 빛이 빠르게 사그라들고 있었다.

“그만, 그만둬. 나중에 이야기해도 되는 거잖아.”

“지금이 아니면 안 돼.”

소년은 어리지만 가혹한 훈련을 받은 전사다. 그는 자신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보고 있을 터다.

“넌 살아야 해.”

“살아가야 하는 건 너야. 쟈스피에케데라가 아니라 ‘쟈파’로 살아줘. 내가 지어준 애칭으로 네가 살아간다면, 내 삶에도 의미가 있을 테니까.”

그리고 쟈파는 평생 이 소년을 잊지 못하겠지.

“제발, 이러지 마.”

“난 네가 걱정돼. 나도 바깥세상을 몰라. 하지만 메노아 가문보다 더 험악하면 험했지, 쉽진 않을 거야. 특별한 타지룬인 네가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겪을지 난 상상도 할 수가 없어.”

“나는…….”

쟈파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소년이 머리를 떨어뜨렸다.

툭.

소년이 앞으로 기울어지며 쓰러졌다. 그를 부축하던 쟈파도 주저앉았다.

황무지의 기억은 여기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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