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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d Born Blood Chapter 230

230
라그나타 아니마는 비범한 여자다. 생체 강화를 받았다지만, 피와 살만으로 초인의 영역에 올라선 적이 있다.

추측하건대 그녀가 받은 생체 강화 시술도 높은 수준이 아닐 것이다. 나보다도 급이 낮은 신경계 화학 처리와 근력 강화, 신진대사 촉진 정도가 전부일 것이다.

“활동 재개를 대비해 재활 중인가?”

나는 라그나타의 방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라그나타는 팔 하나로 몸을 거꾸로 지탱하고 있었다. 건조한 팔에 들러붙은 근육이 두드러졌다.

“신경계를 활성화하고 있지. 네 ‘부탁’을 들어주려면 어느 정도의 전투 능력이 필요할 것 같으니까.”

나는 한쪽 입술만 씰룩이며 가져온 상자를 내려놓았다.

끼릭.

열린 상자 안에는 손수공업이 제작한 기계식 의족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투박한 외골격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기계식 의족은 사이버네틱 의족과 달리 생체와 기계의 정교한 조율과 결합이 필요 없다. 말단 근육의 생체 신호를 읽고 움직이는 의족이다. 그만큼 섬세함과 반응성이 떨어진다.

“살면서 유리 구두는 신어보지 못했어도, 금속 부츠는 사내에게 선물 받아 신어보는군. 세상은 요지경인 법이지.”

라그나타가 의족을 무릎 절단부에 가져다 댔다.

철컥, 철컥.

의족의 고정부 잠금장치가 맞물리면서 무릎과 허벅지를 감쌌다.

기이잉.

장착을 끝낸 라그나타가 일어섰다. 그녀가 휘청거리는가 싶더니 균형을 금세 바로잡았다.

나는 그녀를 부축하려다가 말았다.

‘역시, 이 정도의 인물은 다르다는 건가.’

라그나타는 굉장한 위화감을 느끼고 있을 터다. 그녀의 의족은 맞춤도 아니며 기계식이라서 반응도 상당히 늦다. 운동신경이 좋은 사람이라도 하루 이틀은 지나야 겨우 보행할 터다.

그러나 라그나타는 불과 몇 초 만에 균형을 바로잡았고, 수 분이 지나자 제자리에서 자유로이 움직이며 발차기까지 할 수 있었다.

“외골격을 쓰는 감각과 비슷하군. 원리는 거의 동일하니까.”

라그나타가 한쪽 발을 높게 올린 자세를 유지하며 말했다.

내 예상보다 라그나타는 훨씬 빨리 적응했다. 바로 움직여도 될 수준이었다.

“……바로 이동할 테니까, 사옥에 나가기 전까지는 의족을 가방에 넣어둬. 쟈파의 눈에 띄기 싫으니까.”

“흐응, 쟈파와 척을 질 준비를 하는 건가?”

라그나타는 순순히 휠체어에 앉더니 의족의 잠금장치를 하나씩 열었다.

“척을 지는 건 아니야. 만약을 대비하는 거지.”

“불온한 움직임은 불신을 낳지.”

“퇴물 암살자가 내게 고용주와의 신뢰를 논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아. 넌 의뢰인과의 계약도 지키지 못했잖아.”

“그도 그렇군. 자격이 없긴 하지.”

라그나타는 납득하며 휠체어에 등을 기댔다. 난 그녀의 휠체어를 밀며 사옥을 벗어났다.

우린 가야의 병원을 향해 이동했다. 건물 유리 벽에 비친 내가 보였다. 노인네의 휠체어를 미는 꼬락서니가 웃기긴 했다.

“넌 참으로 재밌는 아이야.”

휠체어에 편히 앉은 라그나타가 말했다.

“난 누군가의 재미를 위해 살고 있지 않아.”

“그렇겠지. 넌 무대에 올라가기보다 내려오길 좋아하는 평범한 사람이니까. 괴물들 사이에서 괴물인 척하지만…… 넌 너무나 평범해.”

난 눈을 찡그렸다.

“평범하다는 소리를 듣는 건 살면서 처음이로군.”

“더 노골적으로 말해보지. 넌 그저 힘이 좀 강한 소시민이다. 네가 막강한 폭력을 가진들 결국은 그저 개인이야. 힘만으론 영웅이 될 수 없지.”

라그나타가 어깨를 들썩이며 낮게 웃었다. 그녀의 웃음이 내 귓가에 꽂혔다.

“난 영웅이 되고 싶지도 않아. 뭔가 오해를 하나 본데.”

“내가 말하는 영웅이란 정의의 사도나 그딴 게 아니야. 보통 사람이 해내지 못하는 위업을 이루는 자다. 영웅이란 필연적으로 괴물이지. 놈들은 자신의 야망과 욕망을 위해 주변을 깡그리 집어삼켜. 영웅으로서 빛나기 위해선 그만한 장작이 있어야 하거든. 자신의 주변부터 불태우는 법이지.”

떨떠름한 기분이 든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가야의 병원을 향해 나아갔다.

덜컹.

휠체어가 요철에 닿아 크게 흔들렸다. 사실 일부러 그런 거다.

그걸 기점으로 라그나타가 말을 이어갔다.

“……넌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을 비대하게 부풀리지 못해. 정의나 악의, 신념이든 뭐든 좋아. 넌 한 가지 목적과 욕망을 위해 타인을 서슴없이 먹어 치우지 못해. 괴물이 되기엔 비위가 약하기 때문이지. 말로는 괴물인 척 허세를 부리지만, 넌 마지막 순간엔 항상 주변 사람들을 구하려 했을 거다. 지금도 중대한 일을 앞두고 가브리엘이라는 친구를 바깥으로 빼돌리고 있지.”

나도 더는 참기 힘들었다.

으득.

휠체어의 손잡이가 내 손아귀를 따라 찌그러졌다.

“그 턱을 으스러뜨리기 전에 다무는 게 좋을 거야, 할망구. 타인이 날 넘겨짚는 건 질색이니까.”

라그나타의 기세는 죽지 않았다.

“마지막 조언이다, 루카. 아마도 너와 다시 만날 일이 없을 것 같으니까. 그리고 여기서 무슨 말을 지껄여도 넌 내게 손대지 못해. 가브리엘 때문이지.”

……짜증이 난다.

타인은 내 약점이 된다. 타인과 교류가 없던 시절에 나는 약점이 없었다. 앞만 보고 내달릴 수 있었다.

지금은 매번 뒤를 보고 바닥도 봐야 한다. 내 거친 행보에 짓눌리는 자가 친구나 지인이 아닌지 확인해야 했다.

‘나의 불순물…….’

그건 가브리엘 같은 놈들이다. 내 약점이자 불순물이었다. 내 인생에 별로 도움도 되지 않지만…… 난 가브리엘 같은 이들을 무시할 수 없었다.

“몰락한 암살자의 조언은 필요 없어.”

“그 몰락한 암살자의 조언이 필요해서 날 곁에 뒀지 않나? 잘 들어라, 꼬마야. 넌 타고난 재능과 폭력으로 고난을 헤쳐나갔을 거야. 그러나 언젠가 그 한계가 올 거다. 알량한 능력으로 목적을 전부 달성할 수 있을 거란 안일한 생각은 버려라. 세상이 그리 다정하지 않다는 건 잘 알고 있을 테니까. 취사선택의 순간이 오겠지. 무얼 버릴지 정해둬.”

선이 굵은 조언은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법이다.

“라그나타, 넌 무얼 버리고 무얼 얻은 거지?”

내 질문에 라그나타는 고개를 뒤로 치켜들더니 날 보았다.

“내 세상을 버리고도, 그 무엇도 얻지 못했지. 우유부단의 대가였어. 네 말이 맞아. 난 몰락한 실패자다. 나와 같은 길을 네가 걷지 않길 바랄 뿐이지.”

라그나타의 눈동자는 회한이 뒤섞인 감정으로 휘몰아쳤다. 그녀는 굳이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고스란히 드러냈다. 그 편이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 거겠지.

“조언은, 고맙게 받아들이지.”

난 뜸을 들이다가 대답했다.

* * *

“가야, 가브리엘의 퇴원을 쟈파에겐 알리지 마라. 네가 쟈파와 이어져 있다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의사의 양심을 우선한다고 믿겠다.”

내가 가야에게 말했다.

가야는 종교적 색채의 백의를 입은 채로 나와 라그나타를 마주했다.

“이분을 따라가는 게 가브리엘 씨에게 최선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래야 저도 납득할 수 있죠.”

가야는 의족을 착용하는 라그나타를 응시했다.

“보더시티보단 나을 거다. 원래 가브리엘은 노마드 출신이기도 해. 잘하면 어린 시절 헤어진 가족의 행방도 알 수 있겠지.”

내가 설명했다. 가야는 턱을 매만지다가 가느다란 미소를 지었다.

“무력으로 가브리엘 씨를 빼내려 하실 때가 생각나는군요.”

“그땐 내가 좀 성격이 급했었거든. 신경계를 건드린 사람의 부작용이라고 생각해 줘.”

“어차피 전 당신과 이 귀부인 여성분을 막을 힘이 없습니다. 가브리엘 씨를 데려가시겠다면 어쩔 수 없지요. 그리고 전 쟈파 상사에게 일일이 보고하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 요구를 제게 했다면 그쪽을 통해 환자를 받지도 않았을 거고요.”

나는 눈을 옅게 뜨며 가야를 꼼꼼하게 관찰하고 통찰하려다가 말았다. 그저 순순히 가야의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적어도, 내가 지금까지 본 가야는 양심적인 인물이었다.

“그럼…… 난 가보도록 하겠다. 라그나타, 적당한 때를 잡아서 가브리엘을 데리고 보더시티를 빠져나가. 이건 경비다.”

난 금화와 보석이 든 주머니를 라그나타에게 던졌다. 예전에 보얀의 부친, 레고르에게 받은 재화다. 어디서든 통용되니 떠돌아다닐 때는 크레딧칩보다 나았다.

‘무엇보다 내가 가진 크레딧칩은 쟈파 상사의 보증이야. 추적이 쉽지.’

나는 눈을 깜빡이며 망막에 떠오른 일정을 확인했다.

오후에는 손수공업을 방문해야 한다. 이건 중요한 일이었다.

“가브리엘 씨와 작별인사를 하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가야가 떠나려는 내 등을 보며 말했다.

“구차한 작별인사는 됐어. 설명은 라그나타가 다 해줄 거고.”

무엇보다 다음 일정까지 시간이 빠듯했다. 시간이 남아서 이쪽에 온 건 아니다. 라그나타의 의족 적응이 생각보다 빨라서 가브리엘쪽 일정을 급하게 처리한 것뿐이다. 이쪽은 신속하게 움직일수록 좋으니까 말이다.

‘손수공업의 시험기 일정도 앞당겨져서 오늘로 잡혔다.’

그리고 쟈파의 파올로 콴 유산 공개, 길다의 보더시티 방문까지 가까운 시일에 있었다. 다른 일정이 오기 전에 손수공업의 일부터 끝내놔야 한다.

나는 떠나기 전에 라그나타의 얼굴을 응시했다. 의족을 착용하고 일어선 라그나타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브리엘을 위한 내 판단이 틀리지 않았길.’

* * *

손수공업은 여느 때보다 소란스러웠다.

손석재는 내게 입은 부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부지런히 걸어 다녔다. 그의 보행보조 장치가 요란한 모터음을 냈다.

쿵, 쿵.

손수공업의 MAU 시험기가 창고에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 투박한 중장비와도 같은 로봇이었다. 머리 부분은 없었고, 몸통에 팔다리만 달린 모양새였다. 아직은 전쟁병기라기보다 작업용 로봇 같았다.

“생각보다 일정이 빠르게 잡혔군.”

내가 손석재 곁에 서며 말했다.

“아, 오셨군요. 마침 잘 됐습니다. 무쉬르 알 카슈라에게서 얻은 데이터를 토대로 자사의 시험기를 개조했습니다. 지금은 속도전이거든요. 우리 기술이 타사보다 앞서 있다는 걸 적극적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일반인 파일럿 대상으로도 반응성 수치가 가시적으로…….”

“수치 놀음과 설명은 됐어. 연방 측에선 언제 오는 거지?”

“곧 올 겁니다. 책임자는 전략무기연구부의 차관입니다.”

“높은 건가?”

내 말에 손석재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크게 웃었다.

“충분히 높죠. 여러 협상안을 꺼낼 수 있을 만큼요.”

“좋아, 그럼 오 대리의 행방은?”

“찾고 있다 말씀드리고 싶지만, 사실 시험기에 모든 역량을 쏟고 있었습니다. 비공식적으로 사람 몇 명을 고용하긴 했습니다만…….”

손석재는 오 대리의 행방에 신경 쓰지 않은 모양이었다. 당장 자신의 숙원사업이 코앞에 있으니 그쪽으로 정신이 가지 않은 것이다.

“……라피스 양은 괜찮습니까?”

이건 예의상 묻는 말이었다.

“살아는 있지.”

“다행이군요.”

우린 그 말을 끝으로 대화가 없었다.

‘이게 연방의 새로운 병기인가?’

나는 공터에서 MAU가 움직이는 걸 보았다. 병기치고는 움직임이 둔탁했다. 장갑이 두툼하다지만 저래서야 걸어 다니는 표적이었다. 차라리 장갑차나 탱크가 더 나을 것이다.

우우웅.

머지않아 손수공업 상공에 6인승 공중차량 3대가 나타났다. 세련된 은빛의 공중차량들은 공터에 착륙했다.

저벅, 저벅.

잘 차려입은 관료들이 차례대로 내렸다. 행동거지의 권력 구도가 확실해서 멀리서도 누가 ‘차관’인지 알 수가 있었다.

그러나 내 시선을 잡아끈 건 연구부 차관이 아니라 한 소녀였다.

‘보얀과 같이 있던 여자애. 불량아 무리의 대장.’

이름은 야나카. 움직임이 제법 좋아서 기억에 남은 여자애였다.

야나카는 딱딱한 파일럿 복장을 착용한 채로 차관 곁에 서 있었다.

내 시선이 야나카에게 향하자, 손석재가 곁에서 설명을 덧붙였다.

“아, 저 소녀는 연방이 지정한 전투용 MAU의 공식 파일럿입니다. 우리가 개발하는 MAU처럼 연방이 요구하는 규격에 맞게 훈련받은 아이죠.”

야나카의 시선도 내게 향했다. 그녀는 날 알아보자마자 눈을 찡그렸다. 그리곤 뭐라 할 말이 있는지 입술을 달싹이다가 주변의 눈치를 보고선 굳게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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