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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누안은 늘 갑작스레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종잡을 수가 없다. 놈은 내 예측과 손아귀 바깥에서 산책하듯 유유자적하게 움직인다.
우린 노점상에서 벗어났고, 키누안은 유령처럼 군중에 섞이는가 싶더니 아예 모습을 감췄다.
“꺄아아아아악!”
“머, 머리가?”
“도대체, 무슨 일이…….”
뒤늦게 노점상 주인과 손님의 머리가 툭툭 떨어졌다. 기이한 죽음에 지나가던 이들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키누안의 정보망은 어디까지 뻗어있는 거지?’
나는 군중 사이에 서서 위를 올려다봤다. 혼잡한 보더시티의 건물들이 규격 없이 솟구쳐 있었다.
‘키누안이 나타난 시점이 절묘해.’
난 오늘 일레이와 만났다. 다음 접선까진 시간이 걸리니 정보 공유를 녀석과 바로 못 한다.
그리고 키누안은 파올로 콴의 유산을 노리고 있다. 그걸 거래 대상으로 삼았다.
파올로 콴은 앙귀스 레지나의 아버지이자, 쟈파의 전 연인이다. 그는 쟈파 버거 소스를 만든 요리사지만, 아케인 문명을 추적하는 고고학자이기도 했다.
‘쟈파가 파올로 콴의 유산을 이야기한 건 그저께의 일이야.’
키누안은 모든 정황을 아는 것처럼 절묘하게 찔러 들어왔다.
‘하지만 놈이 정말로 모든 정황을 알 리가 없다. 키누안을 전지전능한 존재처럼 여기지 마. 나와 같은 인간이다.’
아키에스 빅티마를 떠올렸다. 작은 단서와 정황으로 예지에 가깝게 현실을 추론하는 능력이다.
키누안은 아키에스 빅티마의 달인이다. 그는 의도적으로 갈등을 일으키고 관계를 꼬아서 새어 나오는 정보를 낚아챈다.
‘그러니 남들이 보기엔 전지전능한 것처럼 보이지. 모든 건 연출이다. 속지 마.’
나는 눈을 깜빡였다.
‘본인이 직접 나타난 건 날 떠보기 위해서다. 자신의 추측을 확신하기 위해 나타난 거야.’
그 정돈돼야 나도 동요를 할 테니까. 놈은 고도의 통찰과 관찰로 내 내면을 들여다봤을 것이다.
으득.
나는 이를 바득 갈았다. 내 실수가 덕지덕지 보였다.
‘난 키누안에게 짓눌려 놈의 추측을 전부 긍정했어. 시치미 떼고 거짓 정보를 내밀었어야 했다.’
키누안도 모르는 정보가 분명히 있다. 그는 신이 아니다. 지상을 기어다니는 한낱 인간이다.
‘잘도 질질 끌려다니는구나, 머저리 같은 루카.’
키누안과 나의 관계는 불공평하다.
‘난 키누안의 목적을 모른다.’
승천이니 뭐니 그런 모호한 것은 놈의 목적이 아닐 터다. 그저 말장난이지.
‘키누안은 내 목적이 지젤이라는 걸 알고 있다.’
지젤에 대한 정보를 키누안이 쥐고 있다면, 혹은 그런 척이라도 한다면…… 난 주도권을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
키누안을 생포하는 것보다 지젤을 찾는 게 내겐 우선이다. 이게 내겐 약점인 셈이었다.
‘그러나 파올로 콴의 유산이 그토록 대단한 건가? 키누안이 직접 나서서 확인할 정도로?’
다면적으로 일이 꼬이고 있었다. 평범한 사고로는 헤쳐나갈 수 없는 질척한 혼돈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입꼬리가 씰룩거리는 걸 느꼈다. 이 감각은 이전에도 느낀 적이 있다.
‘제국의 폭풍기.’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에서 상충하는 목적들, 윤곽과 일부만 드러난 그림. 그리고 파멸과 죽음이 등 뒤까지 쫓아와 선택을 종용하고 있다.
벌써 아찔하군.
‘과거의 실수를 답습하지 마라. 타인을 믿는다는 건 당연히 배신당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존재해.’
그러나 배신이 두려워 믿지 못한다면 감당하기 힘든 파멸이 찾아올 뿐이다.
이 세상은, 사람이 홀로 감당하기엔 지나치게 폭력적이다.
난 무적의 초인이 아니다.
“……한낱 인간이지.”
키누안도 그럴 것이다.
* * *
나는 손수공업을 들러서 손석재에게 외골격형 의족을 주문했다.
“아, 기계식 의족 말입니까? 사이버네틱 의체 말고요?”
손석재는 기름때가 묻은 정비복을 입은 채로 손을 닦고 있었다.
“사이버네틱이면 이쪽으로 오지도 않았지. 전투용 사양으로 준비해줘.”
“치수를 재야 할 텐데요?”
난 눈대중으로 기억해둔 대로 설명했다.
라그나타 수준이라면 정교하게 만들지 않아도 어떻게든 적응할 터다. 어차피 임시 의족이기도 했다.
“여기 창고에 범용 의족 부품이 널려 있을 거 아니야. 아무거나 고출력으로 개조해서 주면 돼. 내일 찾으러 오지.”
“뭐, 하나 준비하는 거야 일도 아니지만…… 누가 쓸지 궁금하군요.”
손석재는 맥주를 시원스레 마시더니 수염에 묻은 거품을 닦았다.
“그건 그쪽이 알 바 아니지.”
“전 동업자가 생기면 언제나 좋은 곳에서 술을 대접하죠. 루카 씨도 조만간…….”
“난 술 안 마셔.”
내가 냉큼 대답했다.
“술도 안 해, 담배도 안 피워, 계집놀이도 안 해. 무슨 재미로 사시는지 궁금할 정도입니다.”
난 이를 드러내며 대답했다.
“……대신 사람은 죽이지. 그게 내 인생의 재미야. 대답이 됐나?”
손석재는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가늘게 떴다. 그는 습관적으로 담배를 꺼내려다가 내 앞이라는 걸 알고선 집어넣었다.
“살벌한 대답이지만 이해는 했습니다. 아, 무쉬르 알 카슈라에 대한 1차 보고서 작성이 끝났습니다. 확인하시겠습니까? 제가 설명해 드리죠.”
“아니, 그건 라피스에게 듣겠다.”
손석재는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대로 하시죠. 그리고 이번 시험기 참관으로 연방 쪽에서 사람이 올 겁니다.”
생각보다 빠르군. 하지만 이게 나았다. 난 사건의 파도가 밀려오는 걸 느꼈다.
“일정을 내 쪽으로 전송해둬.”
손석재와 대화를 마친 나는 라피스를 찾아갔다.
라피스는 에퀘시안 두 명이 지키고 있는 방에서 머물고 있었다. 에퀘시안들은 여전히 날카롭게 나를 경계하고 있었다.
“긴장 풀어, 친구들. 쟈파와도 화해했다고.”
나는 이죽거리며 에퀘시안이 지키는 방으로 들어갔다.
끼익.
들어가 보니 라피스는 옷가지를 여행 가방에 넣으려고 끙끙거리고 있었다. 손수공업을 떠날 모양인 듯했다.
“조사는 끝나고 가는 건가? 1차 보고서라고 하던데?”
나는 라피스 곁에 다가가 가방을 대신 눌러 닫았다. 잠금장치가 걸리면서 여행 가방이 단단하게 압축됐다.
“어차피 데이터와 도면은 전부 확보했어요. 다른 연구가 필요하면 시뮬레이션을 돌리면 되죠. 루카도 보고서가 필요해요?”
“어차피 난 기술자도 아니고, 그 데이터는 나에게 중요하지도 않아. 핵심만 짧게 요약해줘.”
라피스는 단말기의 홀로그램으로 무쉬르 알 카슈라의 의체 설계도를 투사했다. 그녀의 손짓에 따라 의체가 분해되면서 내부의 부품도 오밀조밀하게 흐트러졌다.
“기본적으로 제국의 전갑의체와 같아요…….”
라피스가 보고서를 축약해서 말했다.
‘레기온의 특징을 공유하고 있다.’
그렇다고 카슈라가 레기온과 관련이 있는 건 아닐 것이다. 그저 수렴진화와 같은 필연이다.
고성능 고출력 의체는 무조건 뇌의 과부하가 따라온다.
레기온은 각종 보조연산 컴퓨터를 덕지덕지 달고 신호 감쇄 장치를 달아서 그 과부하를 최소화했다.
‘……카슈라의 전갑의체가 레기온과 다른 점이 있다.’
카슈라의 전갑의체는 신호 감쇄 장치나 보조 연산장치가 없었다.
“……아마 고출력 제어 신호를 생체 뇌에 맞게 조절하는 감쇄 장치는 놓친 금속 상자에 있겠죠. 뇌도 거기에 있으니까요. 보조연산 장치도요.”
라피스가 합리적 추론을 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카슈라는 뇌를 여럿 사용하고 있다. 그러니 보조연산도 감쇄 장치도 필요가 없는 거지.’
내 추론이 사실이라면 카슈라는 내가 경험한 사람 중 가장 끔찍한 괴물일 것이다.
“카슈라의 전갑의체를 분석해 얻은 데이터가 손수공업의 무기개발에 도움이 될까?”
“분명히 돼요. 이건 레기온을 노획한 거나 마찬가지일 테니까요. 레기온과 전갑의체의 원리와 골자를 연방도 모르는 게 아니에요. 문제는 오랜 시간과 실전으로 축적된 정교한 데이터들이죠. 카슈라의 의체에서 얻은 데이터가 시행착오를 줄여 개발 기간을 훨씬 당겨 줄 거예요.”
“하지만 로봇과 전신의체는 달라. 그렇게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아?”
호기심으로 내뱉은 질문이다. 그리고 제국 전투의체의 정수가 쉽사리 따라잡힐 거라는 사실에 대한 반발심도 살짝 있었다.
“전투병기라는 측면에서는 그 차이가 점차 좁아지고 있어요. MAU를 다르게 생각하면 엄청나게 큰 외골격이나 마찬가지죠. 의체만의 고유한 장점이었던 반응성과 유연성을 외골격 전투복도 꽤 많이 따라왔어요. 신경계 직결 기능이 있는 제품까지 가면 내구성과 부피 정도만 의체가 앞서고 있죠.”
난 입이 근질근질했다. 강해지기 위해 팔다리를 자른 내 입장에서 그 차이가 좁아지고 있다는 게 유쾌한 일이 아니다. 저 말을 부정하고 싶다.
그러나 전문가의 의견에 반박하는 건 바보나 하는 짓이지.
“일단 먼저 가볼게요. 여기에 더 있다간 에퀘시안들이 분명히 인간 한둘은 죽일 것 같으니까요. 나중에 사옥에서 봐요.”
“가방은 내가 들어주지. 짐이 꽤 있는 것 같으니까.”
나는 라피스의 여행 가방을 대신 들고 따라나섰다. 라피스는 공구 상자만 짊어진 채로 방을 나섰다.
손수공업의 부지 공터에는 쟈파 상사의 공중차량이 있었다. 라피스와 에퀘시안들이 타고 온 차량이었다.
멀끔한 옷으로 갈아입은 손석재가 배웅을 나왔다. 그는 멀찍이서 시가를 피우다가 나와 가까워질 즘에 껐다.
“라피스 양, 솜씨가 좋으시더군요. 쟈파 상사가 싫어지시면 제게 오시죠. 사실 이건 비밀인데, 전 극단주의자들에게 투자받으려고 외계종족 혐오자인 척하는 거랍니다. 저는 포르노도 외계인이 나오는 것만 보죠. 외계인을 너무 좋아하거든요.”
손석재가 모욕과 함께 악수를 청하며 가식적인 미소를 내보였다.
라피스는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며 손석재의 악수를 거절했다.
“……다신 볼 일이 없었으면 하네요. 당신은 무례하고도 멍청해요. 제가 싫어하는 부류의 인간이죠.”
손석재는 웃으며 머쓱한 손을 집어넣었다.
위이잉.
라피스와 에퀘시안들이 탑승한 공중차량에서 엔진음이 퍼졌다.
‘여러모로 라피스에겐 미안하게 됐어.’
라피스에겐 마음의 빚이 많았다. 지금까지 줄곧 그녀는 군말 없이 내 요청을 들어줬다. 특히 보더시티에서 막 깨어난 나는 엄청난 망나니였었다. 지금은 그나마 나아진 거다.
어쨌든 결론은 하나다. 라피스는 훌륭한 성품을 가지고 있었다.
‘라피스는 믿을 수 있다.’
나는 라피스에게 중대한 비밀을 말할 각오도 되어있었다.
‘라피스는 쟈파 밑에서 일하고 있지만…… 쟈파에게 충성하는 게 아니야. 라피스 행동의 원리는 언제나 자신의 신념과 양심이다.’
라피스는 따스하다. 냉소적이다 못해 타인에게 적대적인 나와 다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대개 끔찍하지만, 그래도 종종 그리 나쁘지 않다고 느끼는 건…… 라피스 같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 난 라피스 라줄리를 좋아한다. 절대 오해는 말자. 어디까지나 남녀가 아니라 사람 대 사람으로서다.
난 멀어지는 공중차량을 보았다. 이젠 점으로 보이고 있었다.
……그런데 점이 폭발했다.
터- 엉!
폭발음이 손수공업의 공터까지 닿았다. 나는 눈을 크게 뜬 채로 공중차량의 폭발을 응시했다. 불타는 공중차량이 추락하고 있었다.
‘라피스 라줄리가 탄 공중차량이 폭발했다.’
객관적인 사실이 차갑게 내 뇌리에 주입됐다. 식어버린 사고가 굴러간다.
쟈파 상사, 라피스 라줄리, 손수공업, 손석재, 외계종족 혐오, 무쉬르 알 카슈라, 전갑의체, 무기개발, 중요 데이터…….
늦어선 안 된다. 거짓말에 능한 이에게 감정이 닫힐 틈을 주면 진실을 꺼내기가 힘들다.
휙!
내가 눈을 희번덕거리며 뒤를 돌아봤다. 손석재도 폭발 광경을 보며 입을 벌리고 있었다.
“아…….”
나는 손석재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움직였다. 이미 몸이 충분히 달아올랐다, 점이 폭발하는 그 순간부터.
콰직!
내가 손석재의 옷깃을 잡아끌며 앞발을 뻗었다. 손석재의 무릎이 내 발에 닿자마자 부서졌다. 그는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쿵!
나는 손석재의 안면을 잡은 채로 땅바닥에 내리꽂았다. 근처에 있던 부하나 비서가 말릴 틈도 없었다.
휘릭!
내가 재빨리 그라켄 부트를 꺼냈다. 새하얀 칼날의 단검이 사납게 피를 갈구하고 있었다. 무기는 때론 주인의 심상을 대신 표출하곤 한다.
푹!
난 손석재의 옆구리를 그라켄 부트로 찔렀다. 칼날을 손석재의 심장 아래까지 밀어 넣었다.
툭, 툭.
손석재의 심장이 거세게 뛸 때마다 파고든 칼끝에 미미하게 닿았다.
“움직이지 마. 조금만 어긋나도 심장이 찔릴 거야. 난 분명히 라피스를 건드리면 거래고 뭐고 다 끝장이라고 네게 경고했다.”
난 손석재가 했을 거라고 단정하며 협박했다. 그게 진짜든 아니든 상관없다.
‘외계종족을 향한 혐오가 내 예상보다 강했던 건가? 아니면 데이터가 쟈파 상사에게 넘어가기 전에 손을 쓴 건가?’
손석재가 범인이라면 사유는 두 가지다.
덜, 덜덜.
손석재는 떨고 있었다. 그의 입가에서는 피가 주륵 나왔다. 그가 아무리 대단하더라도 전투 훈련을 받지 못한 민간인이다. 급작스러운 폭력과 위협에 맞닥뜨리면 공포로 인해 정직한 반응이 나온다. 이 상태에선 그 누구도 거짓말을 쉽게 하지 못한다.
“제, 제가, 아, 아닙니다.”
그토록 여유 넘치던 중년 사내의 아랫도리에서 지린내가 났다.
내 아키에스 빅티마가 녹슬었거나, 손석재가 생물의 본능을 극복한 초인이 아닌 이상에야…….
‘……손석재는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 공중차량을 터트린 범인이 아니야.’
나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뒤늦게 억눌렀던 감정이 몰려오고 있다.
‘제발…….’
……선량한 라피스가 죽지 않길.
정말로 기도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초월적인 존재가 이 우주 어딘가에 있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