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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르파인 제가 손수공업과 협업한다는 게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알긴 아세요?”
손수공업으로 출장을 나온 라피스 라줄리가 내 의체를 정비하며 말했다.
“미안하다고 했잖아. 벌써 세 번이나 했어. 나한테 세 번이나 미안하다는 말을 들은 사람은 세상에 너밖에 없을걸.”
나는 진료용 의자에 앉으며 너절한 코트와 셔츠를 벗었다. 진통 패치를 덕지덕지 붙인 내 상체가 드러났다.
나와 라피스는 손수공업의 정비실을 빌려 쓰고 있었다. 여기 정비실은 정기적인 청소도 하지 않는지 기름때와 철 가루, 그리고 어디에 썼는지 모를 자잘한 부품으로 엉망진창이었다.
“이번 일은 세 번으로 부족해요. 다섯 번이고 열 번이고 해야 할 걸요.”
라피스가 등에 짊어진 기계식 공구 상자를 내려놓았다. 괜스레 무쉬르 알 카슈라의 금속 상자가 생각났다.
위잉, 철컥. 철컥.
라피스의 공구 상자는 바닥에 떨어지자마자 사방으로 열렸다.
라피스의 상자 내부에는 전용공구가 주르륵 걸려 있었고, 그 중앙에는 렌즈가 달린 인공지능 기계 팔이 치솟았다.
라피스는 능숙하게 인공지능 팔의 도움을 받으며 내 의체를 정비했다.
우우웅.
망가진 부품을 교체하고, 손상된 외피는 금속을 삽입하고 덧대서 보강했다. 단차를 맞추느라 쇠를 긁어내고 갈아버리는 소리가 요란했다.
새롭게 덧댄 부위는 피부색이 다른 것처럼 얼룩덜룩했다.
“진짜 라줄리 21호를 이렇게 망가뜨릴 정도로 혹사할 줄은 몰랐어요. 이 정도 사양의 의체는 노바스 전역에서도 드물 텐데 말이죠. 하기야 상대가 상대였으니까요.”
라피스는 내 상대가 무쉬르 알 카슈라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녀는 입이 무거우니 동네방네 떠들진 않을 터다.
‘하지만 내 주변인의 입이 아니더라도 서서히 소문이 날 것이다.’
이번엔 목격자가 많았다. 무쉬르 알 카슈라를 해치운 사내에 대한 소문이 보더시티에 퍼져나갈 터다. 머지않아 내 이름도 오가겠지.
‘시간이 많이 없다.’
제국, 정확히 말하면 황제 이반 크라치아에게 내 행방이 알려지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그 전에 제국으로부터 날 지킬 수단을 강구해야 해.’
쟈파 상사는 날 보호하지 못한다. 그럴 의지가 없는 게 아니라 능력이 없었다.
‘쟈파가 우수하더라도 결국은 일개 기업가다.’
황실은 제국을 다스리는 통치 가문이다. 국가급 위력을 견제할 수 있는 건 동급의 국가밖에 없다.
“무쉬르 알 카슈라는 어땠어요? 소문만 무성한 전설의 실체를 직접 마주했잖아요.”
난 어디까지 말해야 할지 생각했다.
‘뇌가 여럿일 거라는 건 추측이니까 배제한다. 그리고 사실이더라도 이 정보는 나만 가지고 있는 게 좋아.’
내 팔에서 피어오르는 금속 증기를 바라보며 사고를 정리했다.
“너도 잔해를 조사하면 알게 되겠지. 외골격이 아니라 전신의체였다는 게 의외였어.”
“그 정도의 중장 사양 전투의체를 제국에선 전갑의체라고 부르죠? 그리고, 그 최상위 모델의 이름이…….”
라피스가 명칭이 가물가물한 듯이 더듬거렸다.
“레기온.”
내가 대신 대답했다. 그 단어를 입으로 내뱉으니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아, 맞아요. 레기온, 레기온. 저도 직접 본 적은 없어요. 하긴 전쟁이라도 나지 않으면 볼일이 없겠죠. 국가가 관리하는 전술병기니까요.”
“보지 않는 게 좋은 거야. 타국 사람이 레기온과 마주한다는 건 끔찍한 상황이라는 소리니까.”
“그래도 기술자로서 궁금하긴 해요. 제국이 홀로 쌓아 올린 사이버네틱 공학의 정수잖아요.”
나는 입술을 닫았다. 레기온의 어둠을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고,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라피스는 내 눈치를 살피더니 화제를 바꿨다.
“……손수공업과는 무슨 이야기를 한 거죠?”
난 이질감을 느꼈다. 라피스가 할 만한 질문은 아니었다. 쟈파 상사는 나와 손수공업 간의 협상 내용을 모른다.
“거래 내용을 알아보라고 쟈파가 시킨 건가? 얕은 수작이로군.”
“그건 아니에요. 제가 개인적으로 궁금한 거죠. 루카, 당신은 손수공업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요.”
난 눈을 가늘게 떴다. 라피스는 진심으로 손수공업을 싫어하고 경계했다.
“쟈파 상사를 견제할 수 있는 세력이라는 것 정돈 알지. 그리고 손수공업에 대해 더 아는 게 있으면 가르쳐주면 되잖아, 라피스 ‘누님’.”
내 말에 라피스가 웃어댔다. 그녀는 숨이 찰 정도로 웃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금방 알게 될 일이니 설명할 것까진 없다고 생각해요. 어쨌든 엔은 당신이 쟈파를 배신한 거라고 길길이 화냈지만, 저는 배신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쟈파 님도 그렇게 여기는 것 같고요.”
“대등한 위치에서 재협상을 한 거야. 쟈파는 자신의 파멸을 감수하면서 날 지켜주진 않겠지. 난 애초에 고용주를 지키는 용병이 아니야. 그저 사람을 찾으려고 고용된 처지잖아. 에퀘시안 용병들과 달리 목숨을 걸어가며 쟈파에게 충성할 이유가 없어. 쟈파도 잘 이해하고 있을 거다.”
“맞아요. 살길을 여럿 파두는 게 현명한 판단이죠. 그러나 저는 루카가 마지막엔 손수공업이 아니라 쟈파 상사를 위해 움직일 거라고 생각해요.”
난 한쪽 입술을 비틀었다.
“그거야말로 허튼소리로군. 난 눈 좀 붙일 테니까, 남은 정비를 부탁한다.”
난 라피스의 미소를 보며 눈을 감았다. 적어도 한두 시간 정도는 잘 수 있을 것이다.
드디어 제대로 된 휴식이다. 감격이로군. 과장 좀 하자면 눈물이 날 것 같다.
……이번 일정을 돌이켜 보자. 길고도 길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와 진가우.’
‘가야의 병원과 가브리엘.’
‘앙귀스 레지나와의 술자리.’
‘쟈파 일가가 살던 집.’
‘그리고 무쉬르 알 카슈라의 습격.’
‘손수공업과 손석재.’
이 정도면 자랑스러워해도 좋을 것이다. 초인적인 일정을 소화해 냈다.
여기엔 날 칭찬해 줄 상사도 없었다. 내가 어떤 일을 연달아 겪었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누구에게 인정받을 것도 없다. 내게 필요한 일들이었어.’
침묵의 시간이 지났다.
나는 고요히 눈을 떴다. 눈꺼풀이 가벼운 걸 보니 숙면한 모양이다. 두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라피스는 한참 전에 정비를 끝낸 듯했다. 그녀는 의자에 앉아서 단말기를 가지고 놀고 있었고, 공구 상자도 가지런히 접혀 있었다.
“곤히 자길래 깨우진 않았어요.”
라피스가 내 기척을 알아채고선 말했다.
난 자리에서 일어나 옷가지를 걸쳤다.
“어쨌든 출장까지 오게 하고, 불편한 일을 맡겨서 미안하게 됐어, 라피스.”
“뭐, 그렇게 사과할 건 없어요. 저도 관심이 없는 일은 아니었고요.”
나는 정비실 문을 열었다. 입구에선 에퀘시안 용병 두 명이 라피스의 호위를 위해 서 있었다. 전투 헬멧 너머로 그들의 적의가 느껴졌다.
“그럼 이만 가보도록 하지. 정비는 고마웠다.”
난 라피스를 돌아보며 고개를 까닥였다.
“……루카도 여러모로 고생했어요.”
고생했다는 말을 누군가에게 듣긴 하는군. 썩 나쁘지 않은 기분이다.
* * *
공장 내부에선 무쉬르 알 카슈라의 의체를 운반하느라 사람들이 바쁘게 오갔다.
손수공업의 기술자들은 카슈라의 의체에서 떨어진 사소한 부품 하나하나까지 끌어모으고 있었다.
저벅, 저벅.
난 공장에 있는 손석재의 곁으로 걸어갔다. 그는 내 존재를 이제야 알아채고선 눈을 크게 떴다.
“아, 오셨군요. 정비는 잘 끝나셨습니까?”
“훌륭해. 전담 정비사의 실력이 좋거든.”
난 손을 들어서 손가락을 부드럽게 접었다가 펼치며 말했다.
“우리 쪽에 의체 전문가가 있으면 외계인에게 당신의 정비를 맡기지 않았을 겁니다.”
“있었어도 라피스에게 정비를 받았을 거야.”
“외계종족을 신용하는군요.”
“외계종족이 아니라 라피스를 신용하는 거다. 난 종족을 따지지 않아 사람을 보지.”
손석재는 가벼이 웃었다. 마치 내가 어리다는 듯이 말이다.
“각 종족에겐 태생적 성향과 특성이 있습니다. 동족조차 조금만 달라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증오하기 일쑤죠. 노바스 행성의 세 국가처럼요. 하물며 종족이 다르면 그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갈등은 커져만 갈 겁니다. 다름을 이해하며 가까워질 수 있다는 건 착각입니다.”
“옛날에 외계인에게 배신이라도 당한 모양이지? 댁의 트라우마를 내게 주입할 필요는 없어.”
“제 생각을 말한 것뿐입니다.”
손석재는 갈등을 일으킬 생각이 없다는 듯이 먼저 걸어갔다.
나는 손석재를 따라서 공장을 둘러봤다.
여긴 대량 생산을 위한 설비는 없었다. 작은 규모의 주문제작 시설이 전부였다. 공장이라기보다 공업소나 공방에 가까웠다.
“나와 한 거래는 잘 기억하고 있어라.”
내가 경고하듯 말했다. 나와 손석재는 협상을 마쳤다.
“물론입니다. 당신의 폭력은 우리 회사 전투원 전부를 합한 것보다 우위에 있죠. 여차하면 여길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는 상대를 기만할 생각은 없습니다.”
손석재가 걸음을 멈췄다. 수많은 시제품이 있는 창고가 보였다.
다양한 형태의 이족보행 병기가 뼈대와 가벼운 외갑만 갖춘 채로 널려 있었다.
이족보행 로봇과 장갑차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레기온 같기도 하군.’
물론 레기온은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컸고…… 무엇보다 ‘탑승식’이었다.
“당사는 연방에서 요구하는 병기의 기준을 맞추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족보행 대형기갑병기(Mechanic Armor Unit) 사업이죠. 아직 가칭이지만 MAU라고 줄여서 부르기도 합니다.”
“제국의 전갑의체에 대응하는 병기인가?”
내 말에 손석재가 흥분한 기색을 띠었다. 이때는 공학자의 면모가 보였다.
“연방정부는 레기온의 전술적 가치를 따라잡는 걸 넘어서 압도하는 병기를 원합니다. 그게 핵심적인 요구사항 중 하나죠.”
난 듣자마자 가소로웠다. 비웃고 싶었다.
“흠, 그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나?”
“성공만 한다면, 연방령의 핵심 군수산업이 되겠죠. 그리고 무기개발은 귀하의 생각보다 훨씬 더 빠르고 치열할 겁니다. 노바스 행성에선 전운이 드리우고 있으니까요.”
전쟁이 멀지 않았다는 말은 나도 자주 들었다.
통찰력이 뛰어난 이들은 전쟁이란 미래를 예측하며 대비하고 있었다. 하물며 통치자와 위정자들은 말할 것도 없지.
“귀하께선 레기온을 능가하는 물건이 나온다는 게 불가능할 거라 생각하시는군요.”
“솔직히 그래. 직접 본 적이 있으니까.”
“국가의 역량이 군수산업에 집중된다면…… 그 발전 속도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역사가 이를 증명하죠. 연방이 레기온을 능가하는 무기를 만들어내면, 제국도 수년 이내로 대응하는 병기를 금방 만들어낼 겁니다. 국가의 존속이라는 강력한 명분이 있다면 사소한 문제는 전부 무시할 수 있으니까요.”
……나도 어느 정도는 설득을 당했다.
무기개발 전문가는 내가 아니라 손석재다. 난 전문가를 존중하는 편이고, 손석재의 말에는 일리가 있었다.
노바스 행성은 대등한 세 국가가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벨라토 연방도 제국 못지않은 기술과 무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뜻이다.
“연방도 전장의 카리스마를 원하고 있습니다. 제국의 레기온이나 신성국의 성기사처럼 상징적이면서도 강력한 존재를요. 이들은 등장만으로도 전장의 분위기를 바꾸죠. 적을 절망과 악몽에 빠뜨리고, 아군의 사기를 드높이며 희망을 심어주는 병기는 단순히 성능과 화력 그 이상의 가치가 있습니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레기온도 그런 존재였다. 근위대라는 배경과 명성까지 덧붙는다.
레기온이 적으로 나타나면 싸우기도 전에 주눅이 들고 패배한다. 반면, 아군이라면 싸우기도 전에 이겼다는 생각이 든다.
전장에서 레기온은 제원상의 성능, 그 이상의 가치가 있었다.
“지금은 작은 공장의 사장에 불과하지만, 전 세상을 바꾸고 싶습니다.”
손석재가 아련한 눈으로 시제품 로봇 병기를 하나씩 응시하며 때론 외피를 매만지기도 했다.
“무기개발로 세상을 바꾼다는 게 그다지 밝은 미래처럼 보이진 않는군.”
손석재는 호탕하게 웃었다.
“사람이 태어나 이 우주에 내던져졌으면 시대의 물결에 휩쓸리는 게 아니라 그 흐름을 만드는 존재가 돼봐야지 않겠습니까? 이깟 세상이 불타든 말든 말이죠. 전 타의적 존재로 세상을 살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훌륭하리만큼 위험한 사상이었다.
“에고이스트로군.”
난 무심히 말했다, 온갖 생각을 내면에 가라앉히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