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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d Born Blood Chapter 222

222
손수공업은 보더시티 외곽에 위치하고 있었다.

손수공업의 부지에는 쇠 비린내가 풍기는 공장 하나와 4층짜리 사무실, 그리고 허름한 숙소 건물이 전부였다.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회사다.’

손수공업의 직원들은 전투직과 생산직을 겸하고 있었다. 내게 총구를 겨누었던 전투원 중 일부가 어느새 환복하고선 공장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전문 전투원이 아니었나?’

그런 것치곤 훈련 상태가 몹시 훌륭했다. 난 저들이 전문용병이나 군인 출신들이라 생각했었다.

“……같은 임금을 주고, 두 가지 일을 시키면 회사의 효율은 두 배가 되죠. 이게 사업가의 정신입니다. 왜 다들 전투원은 별도로 고용하는지 나 원. 흠, 돈이 썩어 남아도는 것인가?”

내 시선을 알아챈 손석재가 설명을 덧붙였다. 말의 내용은 어처구니없었다. 머지않아 사업체를 말아먹을 발상이었다.

‘그러나 손석재는 바보가 아니다. 다른 사유가 있겠지.’

난 눈을 가늘게 떴다. 30분을 잤다지만, 여전히 피곤했다. 두통은 심했고 특히나 뇌압이 높았다. 조만간 큰일이 날 것 같은 느낌이다.

“몸을 좀 씻고 싶군.”

중요한 협상을 앞두고 난 세신 용무를 꺼냈다. 손석재는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그는 시가 연기 때문에 나와 거리를 두고 있었다. 그래 봐야 냄새가 여기까지 오긴 한다.

“숙소 건물 2층에 직원들이 쓰는 공용 목욕탕이 있습니다. 지금은 아무도 없을 테니 갔다 오시죠. 아, 지금 시기엔 보일러를 꺼둬서 뜨거운 물은 나오지 않을 겁니다. 날이 춥진 않으니까요.”

어지간히도…… 짠돌이인 듯했다. 복지에 돈을 물 쓰듯 쓰는 쟈파와 비교가 됐다.

“의료용 드릴은 있나? 혹시 싶어서 묻는 거다.”

“숙소 1층에 응급실이 있습니다. 거기에 없으면 없을 겁니다.”

손석재는 상세한 이유를 내게 묻지 않았다. 그도 소위 말하는 비범한 인물에 속하는 자였다. 짧은 만남으로도 기묘한 기백을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손수공업은 쟈파 상사에 비해 작은 규모다. 그런데도 쟈파가 손석재를 경계하고 있지.’

쟈파는 손석재를 아래로 보고 있진 않았다. 손석재가 쟈파에게 비수를 들이밀 수 있는 부류의 사람이라는 뜻이다.

‘쟈파를 견제할 수 있는 세력과 나를 어느 정도 엮어둬야 한다. 지금까지 나는 쟈파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컸어.’

나는 숙소 건물로 걸어가며 생각했다. 손수공업이란 제3의 세력을 끌어들여서 나와 쟈파 사이의 균형을 잡을 생각이었다.

‘쟈파도 손석재도 나를 쉽사리 건드리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일부러 갈등을 창출해 이해관계를 복잡하게 엮어간다. 나는 그 혼란 속을 비집고 들어가 나만의 안전영역을 확보할 것이다.

……아아, 그래, 이게 키누안이 제국에서 했던 짓이지.

소년기의 기억이 나를 데우고 있었다. 귓가까지 열이 후끈하게 올랐고, 두통은 더 심해졌다.

시야가 둘로 갈라지듯 흐릿했다. 누가 스피커 출력을 줄인 듯이 세상의 소리가 작게 들렸다. 냄새도 뭉쳐서 분간되지 않았다. 내 감각 기관은 둔해지고 있다.

저벅.

숙소 건물엔 자동문은커녕 최소한의 보안 장치도 없었다.

‘치안이 나쁜 보더시티 외곽에 제대로 된 담이나 보안 시설도 없이 공장을 굴리고 있어.’

결론이 금방 나왔다. 손수공업은 이 부근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집단일 것이다. 무시무시한 소문이 나서 부랑배들도 접근하지 않는 거겠지.

지끈.

관자놀이의 통증이 일었다.

난 눈을 찌푸렸다. 생각은 그만하자, 일단은 응급조치부터 할 때다.

지저분한 유리문을 밀며 안으로 들어갔다. 십수 년은 청소하지 않은 듯한 복도가 나왔다. 타일 사이로는 묵은 때가 퀴퀴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쟈파 상사의 사옥이 벌써 그리워지는군.’

쟈파 상사의 사옥은 안락한 호텔이나 마찬가지였다.

끼익, 끼익.

발 아래가 미끄럽다.

난 기름때가 층층이 쌓인 복도를 지나 1층의 응급실로 들어갔다.

‘……손수공업은 기이하군.’

허름한 외관과 다르게 전문적인 의약품이 잔뜩 있었다.

나는 벽에 걸린 ‘의료도구’를 보았다.

[소독하고 쓰시오.]

의료도구는 별도의 멸균공간에 보관된 게 아니었다.

의료도구가 아무렇게나 벽에 주르륵 걸려 있었고, 그 아래엔 소독액이 담긴 분무기가 있었다.

그리고 의료도구랍시고 걸려 있는 것은 본디 공구로 나온 제품이 대다수였다. 뭐, 외과시술 도구와 공구의 차이가 그리 크지 않다는 걸 생각하면 호환이 되지 않을 건 없지만…….

“……뭔 회사가 이따위야?”

진정하자, 루카.

그간 나도 축복받은 환경에 있다 보니, 이런 너저분한 환경에 거부감이 이는 것이다.

제국 근위대와 쟈파 상사의 시설은 노바스 행성 전역 기준으로도 훌륭한 수준이지.

그 높은 기준으로 세상을 보면 안 된다.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손수공업은 좀 심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이게 의료용 드릴……?’

제국의 귀족 도련님이 하층 구역을 처음 방문하면 이런 기분이리라.

드릴의 손잡이에는 공업용이라고 당당하게 적혀 있었다. 글자가 없어도 이게 의료용이 아니라는 건 누구나 알 수가 있었다. 드릴의 도색 부분은 채도가 높은 노란색이었다.

그리고 드릴 비트는 더 가관이었다.

“하, 젠장…….”

난 ‘누가’ ‘언제’ 썼을지 모를 드릴 비트를 응시했다. 피와 살점이 말라서 엉겨 붙어있었다. 제대로 세척도 하지 않고 그냥 놔둔 물건이었다.

[소독하고 쓰시오.]

난 옆에 붙은 안내판을 다시 한번 읽었다. 굳이 명시하지 않아도, 누구나 이 꼬락서니를 보면 빡빡 소독할 것이다.

그나마 가장 ‘깨끗하고’ ‘얇은’ 비트를 골랐다. 세척과 소독을 마친 나는 비트를 드릴에 결착했다.

“후우…….”

나도 이게 또라이 같은 짓이라는 건 안다.

하지만 난 앞으로 수 시간을 더 활동해야 한다. 미묘한 흐름을 읽어낼 통찰력도 끌어내야 했다.

난 거울을 보며 관자놀이 윗부분에 드릴을 댔다. 위치로 따지면 오른 이마 상단 구석이었다.

드릴이 아니라 총이었다면 자살이라도 하는 것처럼 보이겠군.

“긴장할 것 없어, 루카. 병신 같은 짓을 하루 이틀 해본 것도 아니고…….”

이게 유언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끼릭.

난 드릴의 방아쇠를 당겼다.

위이이잉!

맙소사.

투다다닷!

앞니까지 떨린다.

키이이익!

끔찍한 소리로군.

피슈우웃!

이제 끝나간다.

나는 드릴로 두개골을 천공했다. 두개골에서 구멍이 뚫리자마자 끈적한 핏물이 물총처럼 삐져나왔다. 높아진 뇌압 때문이었다.

피가 빠지면서 뇌압이 낮아졌다.

츠스스스스.

바람이 솔솔 불 듯 편안한 소리가 났다. 내 머리가 풍선이라면 바람이 빠지고 있는 거겠지.

복잡했던 머릿속을 씻어낸 기분이었다. 뻐근했던 눈의 피로도 가셨고, 감각 기관도 선명해지고 있었다.

“훨씬 낫군.”

난 거울을 보며 중얼거렸다. 머리에 총알구멍이라도 난 듯이 피를 줄줄 흘리는 사내가 보였다.

세상이 명료해지니 나머진 일사천리였다. 난 천천히 피를 닦고 소독했고, 마지막으론 천공 부위에 거즈를 대고 테이프로 고정했다.

머리가 맑으니 복잡해 보이던 문제도 정리가 되고 있었다. 사고가 매끄럽게 돌아갔다.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도 보인다.

쏴아아아.

난 세면대에서 얼굴과 피를 대충 씻어냈다.

‘이번 일정은 빠듯하군.’

난 냄새가 나는 수건으로 목과 턱을 닦았다.

정신이 말끔해지니 몸 여기저기서 통증 신호가 울렸다. 나는 셔츠를 들어서 진통 패치를 덕지덕지 붙였다. 약물이 흡수되니 한결 살 것 같았다.

‘현재로선 이게 최선이다.’

살다 보면 갑작스러운 일이 생기기 마련이고, 그런 일은 대개 안 좋은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준비되지 않은 채로 장애와 절망과 맞닥뜨리기 마련이다. 이건 아주아주 지랄맞은 일이다.

뭐, 지랄 맞아도 어쩔 수 없다. 이 세상에 먹히지 않으려면 힘들어 죽을 것 같아도 이 악물고 움직여야 한다. 제자리에 서 있다간 잡아먹힐 뿐이다. 세상은 내가 힘들다고 기다려주지 않는다.

지금이 바로 그런 순간이다.

저벅, 저벅.

응급조치를 끝낸 나는 숙소를 나왔다.

공터에선 분쟁이 일고 있었다. 쟈파 상사가 보낸 공중차량이 보였다. 뱀 그림이 있어서 멀리서도 알 수 있었다.

“여긴 사유지이네, 에퀘시안 친구들. 아무리 보더시티가 험악하다고 하나, 명색에 기업 소속의 용병이 무단침입을 하면 안 되지.”

손석재는 무장한 직원의 호위를 받으며 에퀘시안 용병들과 대치하고 있었다.

-호욧, 호욧. 전 잠시 이야기하고 싶은 겁니다, 손 사장.

홀로그램 등신대 쟈파가 손석재 앞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사냥개까지 바로 투입한 걸 보니, 제법 급했나 보군.”

손석재가 시가를 피워대며 키득키득 웃었다. 그는 쟈파 앞에서도 주눅이 들지 않았다.

‘에퀘시안, 엔.’

나는 엔을 응시하며 걸어갔다. 엔도 날 보고 있었다. 전투 헬멧으로도 가려지지 않는 분노가 놈에게서 스멀스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내가 배신자라고 생각하는 거겠지.’

물론, 배신은 아니다. 쟈파도 그렇게 생각하진 않을 거다. 쟈파는 영리한 사업가니까.

‘쟈파도 내가 이번 사태를 통해 균형을 잡으려는 걸 눈치챘을 터.’

엔을 비롯해 에퀘시안 용병은 다섯 명이었다. 그들은 무기를 뽑지 않고도 상당한 압박감을 풍기고 있었다.

-루카 씨는 현재 제 고용인입니다. 엄연히 쟈파 상사의 소속이죠. 루카 씨의 전리품과 노획물은 쟈파 상사에게 우선권이 있습니다.

“루카 씨가 쟈파 상사 소속인지는 몰랐네. 거긴 외계인만 득실거리는 줄 알았거든. 어쨌든 우린 무쉬르 알 카슈라의 잔해에 대한 계약서를…….”

-운반권에 대한 계약서겠죠. 소유권과는 별도인 걸로 압니다.

“운반한 건 우리 손수공업이니, 묵시적으로 소유권에 대한 우선순위를 주장할 수 있지.”

묵시적 소유권이라, 그런 노림수가 있었을 줄은 나도 몰랐다.

두 명의 사업가는 법적 이야기를 해대고 있었다.

-마침 당사자가 왔군요. 루카 씨, 저와 이야기 좀 하죠.

홀로그램 쟈파가 날 발견하고선 말했다. 난 난장판 속에 섰다.

“아, 잘 왔습니다. 저 뱀 대가리가 자꾸 억지를 부려서요.”

손석재가 시가를 비서에게 맡기더니 내게 다가왔다. 그는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친하다는 듯이 굴었다.

나는 차근해진 입을 열었다.

“어차피 두 사람이 원하는 건 무쉬르 알 카슈라의 물리적 잔해가 아니라 그 안에 들어있는 기술과 설계겠지. 내 말이 틀렸다면 지금 말해.”

나는 손석재의 손을 내치며 한결 침착해진 태도를 유지했다.

두 사람은 부정하지 않고 내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난 숨을 돌리곤 말을 이어갔다.

“난 손수공업에게 우선권을 주고 협상할 생각이다. 그러나 쟈파, 네 말에도 일리가 있어. 너와 척질 생각도 없고, 내 임무도 계속 수행할 거야.”

내 말에 손석재가 크게 웃었다.

-계속 말씀하시죠. 하기야 재협상을 할 시기가 되긴 했습니다.

“라피스 라줄리를 이쪽으로 파견을 보내. 무쉬르 알 카슈라 잔해 분석과 역설계에 라피스도 참여한다. 그러면 쟈파 상사도 역설계한 기술과 도면을 얻을 수 있겠지. 그걸 써먹든 어디다 팔아서 이득을 보건 말건 그건 네 자유다.”

손석재의 미소가 잠시 일그러졌다가 돌아왔다.

“잠깐만요, 그럼 우선권을 우리가 얻어도…….”

“손수공업은 연방령의 무기개발 사업 입찰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고 들었다. 쟈파 상사는 입찰이 끝나기 전에 해당 기술을 판매하진 않을 거야. 그런 조항을 넣으면 되겠지. 설사 쟈파 상사가 신의를 어기고 뒷거래를 통해 경쟁사에게 기술을 넘기더라도, 손수공업보단 행동이 느리겠지. 어차피 손수공업의 특허 등록이 더 빠를 거고, 입찰 경쟁에서도 그쪽이 우위를 차지할 수 있지 않겠어? 아니면 손수공업은 선점하고도 우위를 유지하지 못할 정도로 무능한 집단인가?”

내가 말을 쏟아냈다.

손석재는 턱이 푸르게 보일 정도로 자잘한 수염을 매만졌다.

“알겠습니다. 이건 양보하죠. 그럼 무쉬르 알 카슈라의 잔해를 우리에게 넘기는 대가로 원하시는 게 뭡니까? 그 조건이 과하지 않다면 지금 사안으로도 거래할 수 있겠군요.”

나는 엔에게 눈짓했다. 그는 혀를 차더니 홀로그램 장치를 끄고선 잠시 물러났다.

치익.

신호가 끊어진 쟈파의 홀로그램이 흐릿해지더니 사라졌다.

……여기서부터는 나와 손석재, 둘만의 거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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