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
나와 무쉬르 알 카슈라가 싸운 도로는 전쟁터를 방불케 할 정도로 처참한 폐허가 됐다.
반파된 차량의 행렬이 연기와 불을 뿜고 있었고, 곳곳에는 시신이 너저분하게 널려 있었다. 대량 학살의 흔적이었다.
난 카슈라의 금속 상자가 사라진 방향을 응시했다.
‘금속 상자에 뇌를 집어넣고 다녀?’
다시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카슈라의 본체가 금속 상자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젠장…….”
난 카슈라의 빈껍데기를 내려다보았다. 그 고생을 하고도 카슈라를 놓쳤다.
끼이이잉!
귓가에서 이명이 커지고 있었다. 안압이 높아져서 동공이 튀어나올 것 같았고, 코점막도 터져서 피가 줄줄 흘렀다.
……키누안을 찾을 단서가 끊어졌다. 지금이라도 카슈라를 추적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하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 이상은 활동이 힘들다.’
나는 금속 상자의 이탈을 감지하지 못할 정도로 여력이 없었다. 매복이나 함정이 있다면 대응하지도 못하고 당할 터다.
터벅, 터벅.
난 망가진 도로를 걸어가며 던져둔 코트와 권총을 챙겼다.
‘뒤처리는 쟈파에게 맡긴다.’
무쉬르 알 카슈라의 의체에서 건질 만한 정보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회수해 두는 게 좋을 터다.
치직, 직.
난 통신망을 열다가 잡음에 눈을 찡그렸다.
‘방해전파?’
고밀도의 전파방해가 주변에 깔려 있었다. 회선을 바꿔봐도 외부 통신이 싹 다 먹통이었다.
“또 뭔 지랄을…….”
연거푸 문제를 던져주는 이 세상에 화가 날 정도였다.
나는 뻐근한 눈두덩이를 누르며 얼마 남지 않은 집중력을 긁어모았다. 물기가 없는 흙을 짜내 물 한 방울을 겨우 모으는 느낌이었다.
스스스스.
도로 끄트머리에서 무장한 병사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차량 사이로 전술 기동하며 내게 접근하고 있었다. 그 숫자는 얼핏 봐도 십수 명이었다. 훈련도 제법 잘 된 것 같았다.
‘이젠 정말로 현장 이탈이다. 당장이라도 기절할 것 같아.’
난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리며 도주 경로를 인지했다.
“지금 뭣 하는 짓인가! 총을 당장 내리게!”
병사들 뒤에서 호통이 들렸다. 상당히 걸걸한 목소리였다.
뻐금, 뻐끔.
중년 사내가 시가를 입에 물고선 걸어 나왔다. 구시대의 말끔한 정장과 코트, 그리고 반질반질한 가죽구두가 돋보였다. 20세기 복고주의자 패션이었다.
중년 사내는 반파된 차량의 연기 속에서도 지독하게 시가를 피워댔다. 그는 선이 굵은 얼굴로 나를 보더니 친우라도 만난 듯이 웃었다.
“직원들이 실례했습니다. 저는 손수공업의 대표 손석재입니다. 귀하의 성함은?”
손석재라 이름을 밝힌 중년 사내가 성큼성큼 내게 걸어왔다. 걸음걸이나 분위기로 볼 때 훈련받은 인간이 아니었다. 의체도 없었고, 생물학적 강화를 받은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그저 지나가다가 사고에 휘말린 부랑배니까 신경 쓰지 마.”
나는 손석재를 지나치려 했다.
“무쉬르 알 카슈라를 단독으로 해치운 사람이 그저 그런 부랑배일 리가 없죠.”
난 뻐근한 목을 주무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이들은 내가 약해진 줄 모른다. 피곤한 정도로 생각하겠지.’
여기서 내 상태를 파악할 만한 자는 보이지 않았다.
“전투를 보고 있었나?”
“워낙 움직임이 빨라서 제대로 찍진 못했지만 촬영도 했습니다. 이걸 공개하면 난리가 나겠죠. 혼자서 무쉬르 알 카슈라를 패퇴시켰으니까요.”
손석재는 새치로 희뿌연 회색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말했다.
“뒈지고 싶지 않으면 기록을 파기해. 공개라도 되는 날엔 직접 너희 회사를 쓸어버릴 테니까.”
“……적대적으로 구실 필요는 없습니다. 전 귀하와 협상을 하고 싶은 겁니다. 무쉬르 알 카슈라의 잔해를 제게 넘겨주셨으면 합니다. 합법적으로 확보하고 싶거든요.”
손석재가 목적을 또렷하게 밝혔다.
나는 재차 통신망을 확인했다. 전파방해는 여전히 짙었다.
‘무쉬르 알 카슈라의 전갑의체는 연구 가치가 크다. 역설계하면 얻어낼 기술이 많을 거야.’
저쪽이 탐내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난 손석재에 대해 아는 게 없어.’
섣불리 협상하기도 꺼림칙했다.
“전파방해를 해제해. 내 후원자에게 이야기해 볼 테니까.”
“되도록 빨랐으면 합니다. 귀하의 안녕을 위해서라도요. 다른 회사는 저처럼 합법적이고 신사적인 협상을 하지 않으려 할 테니까요.”
손석재가 뒤를 보더니 신호를 보냈다. 무장한 직원 중 하나가 등에 짊어진 전파방해 기계를 매만졌다.
난 손석재와 거리를 둔 채로 물러났다. 머지않아 내 통신기에서 쟈파의 목소리가 들렸다.
-호요요욧! 루카! 어떻게 된 일입니까? 무쉬르 알 카슈라가 나타났다는 정보가 있습니다. 연락이 되지 않아 얼마나 걱정을……!
쟈파가 평소보다 두 배는 빠르게 떠들어댔다.
“걱정은 무슨.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일단 손수공업의 손석재에 대해 말해봐.”
-갑자기 손 사장에 대해서 말입니까?
말투를 보아하니 익히 알고 있는 듯했다.
“그래, 그 손 사장.”
-당신이 손 사장과 접촉할 일이…….
“쟈파, 캐물을 생각은 집어치우고 대답이나 해. 난 지금 몹시 피곤하거든. 너와 의도를 넘겨짚으며 두뇌 싸움을 하고 싶지 않아. 정보를 제공하지 않으면 내 독단으로 사안을 결정할 거다. 너와의 협력 관계도 슬슬 다시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이젠 나도 네 약점을 알고 있으니까.”
쟈파가 내 존재를 제국에 밝힌다면, 난 앙귀스 레지나와 쟈파의 과거를 보더시티에 뿌릴 것이다.
상호 간의 약점을 잡고 있다면, 서로를 쉽게 건드리지 못한다.
-우리 사이에 오해가 깊어진 것 같군요. 호요오오오, 전부 오해입니다, 루카. 전 당신과 여전히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싶습니다. 지금처럼 기꺼이 당신을 지원할 겁니다. 정보도 제공할 거고요.
감정이 담긴 내 거친 태도에 쟈파가 바짝 엎드리듯 말했다. 나도 방금은 그냥 한 말이 아니었다.
쟈파가 조금이라도 나와 거래하려고 굴었다면 고스란히 분노를 꺼내 들이박았을 것이다.
‘머리가 터질 것만 같다.’
짜증이란 감정이 도를 넘어섰다. 머릿속에서 쥐가 날 것만 같았다.
-손석재 사장은 손수공업의 대표입니다. 본인부터 뛰어난 공학 기술자이지만, 공학자답지 않게 어두운 일에 밝고 상당히 영악하니까 조심하는 게 좋을 겁니다.
의외긴 했다. 차림새와 분위기만 보면 기술자나 공학자처럼 보이진 않았다. 불법적 사업체의 보스 같은 느낌이었다.
“손수공업은?”
-현재 벨라토 연방의 신무기 개발 수주 경쟁을 치열하게 일선에서 다투는 회사…… 호욧? 잠깐, 잠깐만요! 설마, 아니, 왜 우리에게 지원을 요청하지 않으셨죠?
쟈파는 역시 머리가 좋았다. 그는 내 상황을 대충 파악한 모양이다.
“에퀘시안 용병의 지원이 오기 전에 상황이 끝났겠지. 그리고 지금은 널 완전히 믿기 꺼림칙한 상황이기도 하고. 지친 나를 공격할 수도 있잖아. 신뢰가 깨졌다는 건 이런 거다, 쟈파.”
-당신이 무쉬르 알 카슈라를 제압한 겁니까? 혹시 생포하셨습니까? 위치가 어디죠? 엔을 바로 보내겠습니다.
쟈파도 동요했다. 나는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이미 늦었어. 네 말대로라면, 손 사장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카슈라의 전투복을 가져갈 테니까. 협상에 내걸 조건이나 우위를 잡을 정보나 말해.”
-차라리 제게 협상권을 넘겨주시죠. 제가 이야기를, 아니, 호요옷, 그러니까, 이쪽 언어로 욕설이, 아, 젠장! ! 염병! 엄마 죽일! 손 사장에게 저와 협력하고 있다는 소리는 하지 않는 게 좋으실 겁니다. 극심한 외계종족 혐오증을 가지고 있거든요. 제국인 저리 가라 할 수준입니다.
나는 눈썹을 살짝 치켜떴다.
‘외계종족 혐오?’
벨라토 연방은 인류 중심이라지만, 어디까지나 다종족 국가다.
하기야 이상할 건 없었다. 국가 정책이 다종족 공존이라고 해서 개인까지 사상에 동조한다는 법은 없으니까. 통제사회인 제국조차 그게 불가능했다.
“알았어. 나중에 다시 연락하지.”
-잠깐만요오오옷!
난 통신을 끊었다. 쟈파의 애처로운 목소리가 희미해지더니 사라졌다.
“후원자와 이야기는 잘 끝내셨습니까?”
손석재가 시가 연기를 코로 내뿜으며 말했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오른손을 바지에 비벼 닦았다. 내 행동을 본 손석재도 악수를 준비했다.
스륵.
내가 오른손을 뻗으며 입을 열었다.
“내 후원자는 쟈파 상사의 쟈파다. 그쪽 조건에 따라 쟈파를 거르고 너와 협상할 생각이 있어. 쟈파와 나는 대등한 관계니까 분란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쟈파의 이름이 나오자 손석재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가 뒷말을 듣고선 웃었다.
“누가 귀하 같은 우수한 인재를 두고 있나 했더니 쟈파였군요. 폐기물 같은 타지룬 중에선 그나마 괜찮은 친구죠. 버거도 맛있고요.”
쟈파, 축하한다. 외계종족 혐오자에게 괜찮은 친구라는 소리를 들었구나.
쟈파가 타지룬 중에선 평판이 유별나게 좋은 게 맞는 듯했다.
“쟈파가 버거는 잘 만들지.”
“하지만 그래 봐야 외계인입니다. 인간의 마음을 모르는 놈들이죠. 일단은 시간이 없으니 무쉬르 알 카슈라의 잔해 운반에 대한 서류에 서명부터 먼저 해주시면 됩니다.”
나는 빠르게 전자 서류를 읽어나갔다. 약식으로 진행되는 허울뿐인 계약이었다.
‘손석재는 합법적 절차에 집착하고 있다.’
주먹구구식으로 일을 진행하다가 된통 당한 적이 있는 듯했다. 연방 정부의 무기사업을 맡으려면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 불법적 요소가 없어야 할 터다.
‘피곤하군.’
사고가 부드럽게 이어지지 않았다.
“이동할 차량을 준비해 둬. 나머진 그쪽 회사에서 이야기하지. 아, 그리고 너도 나와 같은 차량에 탄다. 맞은편에 앉아있어.”
“매사에 치밀하신 게 마음에 드는군요. 제 직원들이 루카 씨를 보고 배웠으면 할 정도입니다.”
손석재는 서류의 서명을 보고선 내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이 부근에 이그니움으로 만든 무기, 화광 시리즈 두 자루가 있을 거다. 회수할 수 있으면 회수해 둬.”
손석재가 부하에게 지시사항을 내리더니 대기 중인 공중차량을 호출했다.
스스스.
손석재가 시가 연기를 내뱉으며 공중차량에 올라탔다. 나도 그 뒤를 따랐다.
기이잉.
공중차량의 문이 닫혔다. 난 손석재의 시가를 손끝으로 비벼서 불을 껐다.
“그리고 난 비흡연자야.”
“이런, 이런, 실례했군요. 술은 마시십니까?”
손석재는 기분 나쁜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넉살 좋게 입맛을 다시더니 술병을 꺼냈다.
“술은 됐어. 다른 것도 마찬가지고. 그쪽이 주는 음료를 마실 정도로 목이 타진 않으니까. 도착까진 얼마나 걸리지?”
이미 난 한계였다. 눈을 감지도 못할 것 같았다. 눈만 살짝 감아도 의식이 증발할 터다. 코피도 터지려는 걸 겨우 억누르고 있었다.
“이십여 분 정도 걸릴 겁니다.”
“잠시 눈 좀 붙이겠다.”
손석재는 양손을 펼쳐서 내보였다.
“저도 허튼짓은 하지 않겠습니다.”
난 코트 안쪽에 손을 넣어서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그대로 눈을 감았다.
‘이십 분.’
딱 이십 분만 잠을 잘 생각이었다. 짧은 휴식으로도 상태가 극적으로 나아질 것이다.
이십 분만에 일어날 수 있냐는 의문도 들지만, 난 겉멋으로 근위대에서 수면통제법을 배운 게 아니다.
내 의식이 바로 사라졌다. 이 정도면 잠이 든 게 아니라 의식이 끊어진 것이다.
“……씨?”
난 목소리를 듣고선 눈을 떴다. 그리고 누군가 내 어깨에 손을 대고 있는 걸 알았다.
휘릭!
살벌한 전투 반사가 내 몸을 이끌었다. 상대의 팔을 꺾고 관자놀이에 총구를 댔다. 이윽고 방아쇠를 당기기 직전까지 이르렀다.
“젠, 젠장! 접니다! 삼십 분이 지나도 일어나시지 않길래…….”
내게 제압당한 손석재가 소리를 질러댔다.
“삼십 분?”
난 눈을 깜빡였다. 이십 분을 잔 것치고는 머리가 맑긴 했다.
“제 공장에 도착했습니다. 곧 무쉬르 알 카슈라의 잔해도 도착할 겁니다. 그럼 나머지 계약도 진행하시죠.”
나도 즉각 상황인지를 마쳤다. 손석재의 말은 전부 사실이었다.
난 수면통제법을 겉멋으로 익힌 게 아니다.
‘수면통제에 실패했다.’
그만큼 피로했으니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뇌의 기능 저하.’
이게 일시적이라면 다행이겠지. 하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적어도 키누안, 아니 지젤을 찾을 때까진 버텼으면 좋겠다.
삑, 삑, 삑.
난 연동된 단말기를 확인했다. 쟈파가 집착하는 연인처럼 내게 연락을 계속 보내고 있었다.
기이잉.
공중차량이 열리자마자 정장을 입은 비서가 다가왔다. 차갑게 생긴 젊은 남자였다.
“사장님, 쟈파 상사에서 연락을 보내고 있습니다. 급한 일이라고…….”
“사장은 오늘 출근 안 한다고 해.”
비서가 잠시 귓가에 대고 뭐라 말하더니 재차 손석재에게 말을 걸었다.
“평일인데 출근하지 않은 게 말이 되냐고 하는데요?”
“그럼 우리 회사는 주3일제라고 해! 못돼먹은 외계인 기업과는 급이 다른 복지지, 읏차.”
손석재가 공중차량에서 내리자마자 시가를 입에 물고선 허겁지겁 불을 붙였다.
연기가 자욱하게 흘러갔다. 흡연 중인 손석재의 표정은 상당히 행복해 보였다. 나 때문에 한참 참은 모양이었다.
“손수공업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앞서나간 손석재가 나를 돌아보며 고개를 비스듬히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