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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귀스 레지나는 예명이다. 그녀의 본명은 나도 모른다.
앙귀스 레지나 본인도 예명이 더 익숙할 것이다. 본명을 더 낯설게 여길 터.
나는 앙귀스 레지나를 따라 화려한 거리의 건물로 들어섰다. 여긴 부유층의 번화가였다.
난 시큰둥하게 앙귀스 레지나의 뒤를 따라갔다. 고층으로 올라가니 붉은 융단이 깔린 호화스러운 복도가 나왔고, 복도 좌우로는 분리된 방들이 있었다.
딸깍.
예약된 방으로 들어가니 사람 열 명 정도 앉을 만한 바가 있었다. 바 너머로는 통유리창이 있었는데 보더시티의 야경이 보였다.
“보더시티의 아이돌이 남자와 이렇게 술을 마셔도 되는 건가?”
난 바에 앉으며 비꼬듯 말했다. 앙귀스 레지나는 하관을 가리던 천을 내리고, 머리를 덮던 두건을 젖혔다.
“여긴 사생활 보호가 완벽하거든요.”
나는 방으로 걸어 들어오는 바텐더를 응시했다. 바텐더는 우릴 향해 인사하더니 바 중앙에 섰다.
“직원이 있는데 사생활 보호가 완벽해?”
“여기 바텐더는 보지도 듣지도 못해요. 이 방의 구조를 외우고 움직이는 것뿐이죠. 마시고 싶은 걸 입력하면 촉각 신호로 주문을 받아요.”
바텐더가 눈을 가늘게 떴다. 동공은 희뿌옇고 초점은 먼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우리의 말소리에도 반응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이 사람은 여기서 일하려고 청각과 시각을 포기한 건가?”
내가 미간을 살그머니 찌푸리며 말했다. 앙귀스 레지나가 소리 내어 웃더니 내 어깨를 툭툭 때렸다.
“누가 제국 사람이 아니랄까 봐, 그런 끔찍한 생각부터 하네요. 이 업소에서는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복지 차원에서 고용해요. 여기서 십 년 정도 일하면 사이버네틱이든 생체든 간에 새로운 눈과 귀를 이식해 주죠. 벌이가 좋아서 이식을 포기하고 장기근속하는 사람도 많아요. 쟈파 상사의 복지 사업 중 하나죠. 마시고 싶은 거 있어요?”
앙귀스 레지나가 바 아래를 두드렸다. 유리표면에서 메뉴판이 비쳤다. 그녀는 발음도 힘든 긴 이름의 칵테일을 주문했다.
“우유나 한 잔 줘. 여기라면 합성 우유가 아니라 진짜 우유도 팔 것 같네.”
내 발언에 앙귀스 레지나가 옅게 웃었다.
“진짜 우유만이 아니라 진짜 딸기까지 갈아서 넣은 우유가 있어요. 맛있으니까 먹어봐요.”
앙귀스 레지나가 주문을 마쳤다.
틱, 틱, 티틱, 틱.
바텐더 목걸이에 연결된 막대가 움직였다. 막대가 바텐더의 목덜미를 두드려 신호를 보냈다.
신호를 해석한 바텐더가 맹인이라고는 믿기 힘든 정갈한 움직임으로 음료를 만들었다.
‘사치스럽군.’
사생활 보호를 하려면 무인 바를 만들면 된다. 여긴 굳이 사람의 노동력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게 부자의 소비 방식이지.’
부유층은 불필요한 비용을 지불하며 사치를 즐긴다.
“언제부터 가브리엘을 찾아간 거지?”
난 음료가 나오기 전에 이야기를 꺼냈다. 앙귀스 레지나가 아웅다웅 담소를 나눌 생각은 없었다.
“한 달 정도 됐어요. 주에 한두 번 정도. 가브리엘이 어떤 사람이길래 당신이 그렇게 신경 쓰는지 궁금했거든요.”
“신경 쓴 적은 없어. 내게 필요한 정보를 가지고 있기에 병원에 처박아 둔 거다. 이젠 찾아갈 일도 없을 거야.”
내가 이죽거리며 말했다.
앙귀스 레지나는 음료가 나올 때까지 교태가 뚝뚝 흐르는 미소를 유지했다. 훌륭한 가면이었다.
탁.
음료가 나왔다. 앙귀스 레지나는 잔에 입을 대며 한 모금 마셨다.
“크으읏…….”
앙귀스 레지나가 얼굴을 찌푸리더니 혀를 내둘렀다. 힘겹게 술을 넘긴 그녀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언제 마셔도 쓰고 독하네요. 그거 알아요? 이건 진짜 뱀독을 넣은 술이에요. 몸 상태가 나쁘거나 배합에 실수가 있으면 사망할 수도 있죠. 이 술을 마시다가 죽은 사람이 지금까지 두 자리가 넘어요. 이 술을 열 잔 마시고도 살아남으면, 쟈파 상사의 프랜차이즈 식당들을 평생 무료로 이용할 수 있죠.”
한 잔만으로도 앙귀스 레지나의 뺨이 달아올랐다. 그녀의 말대로 독극물 같은 술인 듯하다.
“우스꽝스러운 유희로군. 어차피 여기서 그딴 술을 열 잔 마실 사람이면 무료 피자와 버거 따위에 연연하는 자도 아니잖아.”
“삶이 지루하면 괴악한 곳에서 자극을 찾는 법이니까요.”
“그래서 네가 괴팍한 짓거리를 하는 모양이지? 용케도 아직 죽지 않았네.”
“그러게요. 저도 제가 아직 살아있는 게 신기할 따름이에요.”
앙귀스 레지나는 잔의 테두리를 매만지며 공허하게 반짝이는 눈을 들었다.
“죽고 싶으면 저 앞에 유리창을 깨고 자리를 비켜줄 테니 뛰어내려. 이번엔 말리지 않을 테니까.”
“하하, 요즘은 그렇게 죽고 싶진 않아요. 당신 덕분이죠.”
앙귀스 레지나가 의자를 더 밀며 나와 가까워졌다. 그녀의 체취와 화장품 냄새가 내 코의 점막을 자극했다.
앙귀스 레지나는 날것의 본능을 자극하는 여자였다. 때론 과할 정도로 노골적이었다.
나는 생물학적으로 그녀에게 끌리는 걸 느꼈다. 인간 남성인 이상에야 어쩔 수 없는 욕구와 생리현상이었다. 뭐, 무시하면 그만이다. 얕은 욕구를 내가 휘둘릴 까닭은 없다.
내가 본능에 충실했다면 이미 유례없는 살인마로 보더시티에서 이름을 떨치고 있을 터다.
모든 욕망은 동등하지 않다. 그리고 내가 앙귀스 레지나에서 품은 성욕은 낮은 수준의 욕구다. 어떤 방식으로든 해소한다면 쉽게 사라질 단발적인 욕정이다. 배고픔이나 수면과 다를 바가 없지.
“당신을 보면 웃겨요. 짐승 같은 폭력성과 공격성을 갖췄으면서도 다른 욕구에는 초연할 정도로 담담하네요.”
난 대꾸하지 않고 앙귀스 레지나의 얼굴을 정면으로 쳐다봤다.
앙귀스 레지나가 과감히 손을 뻗어 내 허벅지를 더듬었다. 손가락의 놀림이 은밀했다.
나는 입술을 비틀었다. 난 일반인보다 육체와 의체를 더 넓고 깊게 통제할 수 있다.
‘머리에서부터 내려온 차가운 의식이 척수와 혈관을 따라 퍼지는 심상.’
욕구로 몰렸던 피가 빠져나가면서 이성이 또렷해졌다.
“……재주가 좋네요.”
앙귀스 레지나는 자존심이 상했다는 듯이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스륵.
바텐더가 딸기 우유를 내밀었다. 딸기 건더기가 우유에 둥둥 떠다녔다. 한 모금 마시니 신선하고도 비싼 맛이 났다.
“장난은 됐어. 그보다 다신 가브리엘을 찾아가지 마. 이건 경고다.”
“제가 당신의 말을 들어야 하는 이유가 있나요?”
“수틀리면 내 손에 뒈질 테니까. 난 네 몸에 느끼는 인위적 성욕 따윈 얼마든지 통제할 수 있어. 하지만 폭력에 대한 욕구는…… 나도 참을 수 있다고 장담하지 못해.”
앙귀스 레지나는 활짝 웃었다.
“참을 필요가 있나요? 참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요?”
앙귀스 레지나가 내 손목을 잡더니 자신의 목덜미로 끌었다. 마치 목을 조르라는 듯이 고개를 살짝 들었다.
하얀 목덜미가 내 손가락에 닿는다. 힘을 주면 그녀의 목이 덧없이 부러질 것이다.
거친 충동이 일었다. 앙귀스 레지나의 목이 부러지는 게 보고 싶었다. 그녀가 죽어가면서도 태연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하, 하하…….”
난 어깨를 들썩이며 웃고 말았다. 앙귀스 레지나의 손을 내치며 남은 딸기 우유를 단번에 들이켰다. 비싸니까 남길 생각은 없다. 잔 테두리에 묻은 딸기 조각까지 입안에 밀어 넣었다.
“뭐가 웃기죠?”
“넌 날 통해 키누안을 보고 있군. 이걸 전이라고 말하던가? 하지만 네가 지금의 키누안을 증오하는 건 사실일 거야. 그러면…… 아, 그래. 증오하기 전의 키누안을 내게 대입하는 거지?”
앙귀스 레지나가 양손으로 코와 입을 가리며 나를 보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홍조가 띠었고 눈이 반짝였다.
“흐응, 계속해 봐요.”
“그래서 넌 지금까지 아키에스 빅티마 탐정과 모조리 잠자리를 가진 거다. 또 다른 키누안을 찾아서 말이야. 증오할 이유가 없는 키누안을 가지고 싶은 거로군. 넌 증오하는 키누안을 죽여줄 새로운 키누안을 원하는 건가?”
난 정곡을 찔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앙귀스 레지나는 화내긴커녕 흥분하고 있었다.
“정말로…… 당신, 키누안 같네요.”
앙귀스 레지나가 내 뺨에 손을 얹더니 달큰한 입술을 가까이 대려 했다.
앙귀스 레지나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애처로운 욕구가 그녀의 체취에 섞여 퍼졌다.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바텐더조차 앙귀스 레지나의 냄새만으로 성적으로 흥분했다.
“키누안은 널 애타게만 만들면서 절대 안아주지 않았을 거야. 그러니 내가 너를 거부할 때마다 더 키누안처럼 보이겠지.”
“그걸 안다면 안아줘요. 그럼 당신이 키누안처럼 보이지 않을 테니까요.”
모순이다. 안아주지 않기에 안고 싶어진다.
키누안은 끔찍한 저주와 혼란을 앙귀스 레지나에게 남기고 떠났다.
영원히 충족되지 않는 갈망이다. 안는 순간, 상대가 키누안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공허한 잠자리가 끝나면 새로운 키누안을 향한 목마름만 남겠지.
“키누안 때문에 아버지가 죽었다고 했지?”
앙귀스 레지나가 처음으로 흠칫했다. 마냥 흥분하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아, 다음 약속이 있는 걸 깜빡…….”
난 물러날 생각이 없다. 어차피 정신 나간 여자다. 그녀의 마음이 갈기갈기 찢기건 말건 내 알 바가 아니다.
“내가 맞춰보지. 넌 자신의 손으로 아버지를 죽였어. 키누안의 부탁이었겠지. 달콤한 말로 널 꾀어내 존속 살해를 부추겼겠지. 아마 이 일이 끝나면 널 안아주겠니 같이 떠나자니, 뭐 그딴 헛소리를 네 귓가에 속삭인 거지?”
앙귀스 레지나가 어색하게 웃었다.
“재미난 추리네요. 우리의 게임은 끝났어요. 그만하세요.”
방벽이 무너진 그녀의 정신은 무방비했다. 찌르는 족족 반응이 온다. 내 추론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심리 조작에 능하더라도 존속 살해까지 유도하는 건 쉽지 않지. 아마도 넌 평소에 아버지에게 큰 불만이 있었을 거야. 적어도 수년은 쌓인 불만이겠지. 아버지를 죽일 만한 이유로까지 발전할 만한 불만. 그게 뭘까 생각해 보니…….”
앙귀스 레지나의 손이 움직였다. 내 뺨을 때리려는 시도였다.
난 앙귀스 레지나의 손을 막았다. 그녀는 반대편 손으로 술잔을 들어서 내게 쏟았다.
촤악!
이 정돈 맞아줄 생각이다.
난 뱀독이 섞인 술을 얼굴에 맞았다. 피부가 화끈한 걸 보니 안 좋은 성분이 잔뜩 있는 건 사실인 듯했다. 차라리 뺨을 맞을 걸 그랬다.
“쓰군.”
난 혓바닥으로 입술에 묻은 술을 핥았다.
“당신은 우리에게 고용된 사냥개답게 일이나 계속하세요.”
앙귀스 레지나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러나 그녀의 동공, 뺨, 다리에서 성적 흥분이 드러났다.
모든 걸 꿰뚫어 보는 듯한 내 태도는 키누안과 닮아있을 것이다.
콰직!
난 앙귀스 레지나가 앉아있는 의자를 걷어찼다. 의자가 나뒹굴며 나가떨어졌다.
쿵!
앙귀스 레지나는 엉덩방아를 찧으며 내 시선 아래로 주저앉았다.
난 다리를 꼬며 무릎에 깍지를 얹었다.
내 고압적인 태도에 그녀는 어쩔 줄 몰라 했다. 이성과 본능이 충돌하며 그녀의 표정을 뒤틀었다.
“쟈파는 널 무척이나 아껴. 그건 쟈파 상사의 귀한 자산이라서 그런 게 아니야. 더 개인적인 이유였지. 반면, 넌 쟈파에 대한 이야기를 별로 하지 않아. 쟈파에 대한 감정도 크게 드러내지 않지. 넌 쟈파를 부담스럽게 여기며 껄끄러워해. 내가 보더시티에 있는 동안, 너와 쟈파가 담소를 나누거나 단둘이 대면하는 걸 본 적이 없었지.”
난 맹렬하게 과거를 되짚으며 이질적인 조각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잘만 하면 지금 여기서 키누안과 쟈파 상사의 관계를 밝힐 수 있다.
“당신은 지금 절 꿰뚫어 보고 있나요? 키누안처럼요.”
앙귀스 레지나가 주저앉은 채로 나를 올려다봤다.
“쟈파와 키누안에 대해 말해라, 앙귀스 레지나. 그럼 여기서 네가 원하는 대로 널 안아주지. 그게 정말로 네가 원하는 천국일지 또 다른 지옥일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나도 쟈파와 앙귀스 레지나에 대해 짚이는 바는 있다. 그러나 확신은 없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내게 어려운 과제였다. 예나 지금이나 말이다.
드륵.
앙귀스 레지나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바텐더의 허리춤에 크레딧칩을 꽂으며 허리를 찔렀다. 그게 신호인지 바텐더가 조용히 자리를 비웠다.
스륵.
앙귀스 레지나가 웃옷을 벗었다. 붉게 상기된 피부는 앳된 아가씨와 요부의 모습을 둘 다 가지고 있었다.
“추측해 보세요, 탐정 씨. 저와 쟈파의 관계를요. 어서, 키누안처럼요.”
앙귀스 레지나가 나를 독촉했다. 그녀의 벌어진 입술에선 끈적한 타액이 실낱처럼 이어졌다.
“쟈파가 너의 계모로군. 사랑하는 아버지가 타지룬과 사귀는 게 네 마음에 들지 않았겠지.”
앙귀스 레지나의 얼굴이 녹아내리듯 무너졌다. 그녀가 비틀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당신은 정말이지…… 최고네요.”
이윽고 앙귀스 레지나가 고개를 들었고, 그녀의 얼굴에는 무대에서도 내보인 적이 없었던 극상의 미소가 걸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