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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d Born Blood Chapter 210

210
가끔 체면과 자존심이 생존본능을 이길 때가 있다. 죽을 걸 알면서도 불나방처럼 불꽃에 들이박는 것이다.

생존본능을 거스르는 건 어리석은 행동이다. 제아무리 용맹한 군인과 전사라도 생존본능을 무시하진 않는다.

자신의 본능과 감각에 귀를 기울이고 나서도 생존본능을 무시해야 한다고 판단할 때, 우리는 죽음과 진지하게 마주한다.

물론, 내가 할 말은 아니긴 하다. 나도 헛된 자존심과 감정 때문에 목숨을 내다 버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난 운이 좋았지.’

내겐 폭력에 재능이 있었다. 그리고 날 둘러싼 상황이 맞아떨어져 구걸하지 않고도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한 끗만 운명의 톱니바퀴가 어긋났어도 난 이 자리에 서지 못했을 것이다.

저벅, 저벅.

광장의 불량아들이 내게 다가왔다. 나이프나 쇠막대를 드는 녀석도 있었다.

으득!

나는 달려드는 인간 소년의 팔을 잡아서 꺾었다. 이어서 가볍게 발을 걸어 팔이 부러진 소년을 넘어뜨렸다.

‘깔끔하게 부러뜨린다.’

어릴수록 회복력도 좋다. 난 이 아이들을 불구로 만들 생각이 없다.

생존본능이 둔해진 아이들에게 교훈을 주고 싶을 뿐이었다. 상대를 분간하지 못하면 죽는다는 걸 말이다.

‘이 녀석들은…… 밑바닥 사회의 아이들이 아니다.’

얼핏 길거리 불량배처럼 보였지만, 다들 옷이 깨끗하고 피부도 좋았다. 영양 상태도 훌륭해서 얼굴에는 앳된 기운이 붉게 올라와 있었다.

생존투쟁을 해본 적도 없을 것이고, 야성이 부족하니 생존본능도 둔감한 것이다.

‘부유층의 일탈.’

사실 불쾌하다. 부족함 없이 자란 놈들의 일탈이란 꼴 보기 싫었다. 과거의 나라면 사지를 분질러버렸을 것이다.

으득!

하지만 지금은 팔다리를 부러뜨리는 정도로 끝냈다.

‘……내가 조금이나마 어른이 된 탓이겠지.’

누구에게나 걱정과 불안은 있다. 태어날 때부터 배를 곯지 않은 삶을 사는 녀석들도 나름의 고뇌가 있을 것이다.

“야나카! 혼쭐을 내줘!”

“야나카! 야나카!”

불량아 중에 대장 격인 아이가 튀어나왔다. 환호성이 쏟아졌고, 내게 쓰러진 아이들도 골절의 통증을 참으며 야나카라는 이름을 불러댔다.

통, 통.

야나카라는 이름의 인간 소녀가 제자리에서 뛰면서 몸을 풀었다. 펄럭거리는 옷자락 사이로 잘 정돈된 근육이 드러났다. 흩날리는 셔츠 사이의 복근도 단단했다. 전투 반사 임플란트를 몇 개 삽입했는지 피하에서 회로의 빛이 옅게 반짝거렸다.

소녀라지만 나와 키가 비슷했고, 여성 호르몬 특유의 곡선보단 단단하고 각진 선이 몸에 두드러졌다. 팔다리도 길고 늘씬해서 독특하고도 중성적인 느낌이었다. 또래가 보기엔 신비로운 분위기일 것이다.

‘호르몬 조율을 통해 육체를 전투에 맞게 가다듬었군.’

저런 섬세한 시술을 받으려면 부잣집이어야 한다. 신경계와 호르몬 시술은 주사 한두 번 놓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안정화까진 적어도 연 단위의 시간이 걸린다.

끼릭.

야나카가 허벅지에 찬 나이프를 꼬나쥐며 자세를 잡았다. 안정된 자세와 날카로운 눈빛을 보니 전투 경험이 제법 있는 듯했다.

“비켜, 넌 내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걸 알잖아?”

내가 느슨하게 말했다. 야나카는 내 기량을 이미 파악했을 것이다. 그리고 내 팔다리가 고성능 의체라는 것도 알아챘을 것이고.

야나카의 하반신에 미묘한 떨림이 있었다. 무표정을 가장해도 하체에선 감정이 드러났다.

‘공포.’

야나카는 나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기지 못할 걸 알면서도 내 앞에 섰다.

“아저씨, 이쪽도 체면이라는 게 있어. 계속 대장 노릇을 하려면 팔다리가 부러지더라도 싸워야 해.”

“난 저쪽 크롤러 꼬맹이를 데려가고 싶은 거다. 이래 봬도 보호자거든. 밤거리에 불량배랑 쏘다니는 걸 그냥 볼 순 없어.”

내 시선이 보얀에게 향했다. 보얀은 내 시선을 피하며 움찔했다.

“보호자라면 더욱 물러날 수 없어. 우린 어른에게 친구를 넘기지 않아.”

“낮에는 어른의 돈으로 학교 다니고 식사를 하면서? 보아하니 네 몸에 들어가는 비용이 한두 푼이 아닐 것 같은데 말이야. 그러면서 어른을 적으로 둔다니 어이가 없군.”

“모순이라는 건 알아. 그러니 우린 엇나갈 생각까진 없어. 어디까지나 일시적 일탈인 거지. 그러니 그냥 놔둬. 때가 되면 돌아가서 어른의 취향대로 살아갈 테니까.”

야나카는 차분히 말했다. 조리 있게 모순을 설파하는 걸 보니 교육도 잘 받은 듯했다.

“이봐, 아가씨. 나는, 하아…….”

난 한숨을 쉬었다. 보얀이 냅다 도망가고 있었다. 야나카가 날 막지 못한다는 건 저 녀석도 잘 알고 있다.

기잉!

나도 다리를 구부리며 뛰었다. 야나카가 나를 막으려고 움직였다.

휘릭!

난 발로 야나카의 다리를 걸었고,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잡아당겼다. 중심이 무너지는 와중에도 야나카는 칼날을 내 목덜미에 들이밀었다.

톡, 콰득!

내가 손가락으로 칼날을 잡아서 부러뜨렸다. 깨진 칼날이 바닥에 툭툭 떨어지고 있었다.

“미안하지만, 여유가 많은 어른이 아니야. 어른이 되다만 놈이지. 어리다고 양보해 줄 생각은 없어.”

내가 주먹을 가볍게 쥐고 야나카의 복부를 때렸다. 힘 조절을 했으나 바로 일어서기 힘들 정도의 충격일 것이다.

“커억, 컥.”

야나카가 주저앉으며 속을 게워냈다. 그사이에 나는 보얀을 쫓으며 내달렸다.

‘빌어먹을 크롤러!’

꼴에 크롤러라고 보얀의 움직임은 잽쌌다. 제대로 된 훈련도 받지 않았으면서 맨손으로 건물을 올랐고 옥상을 뛰어다녔다.

크롤러는 적응형 입체기동을 유전자 수준에서 탑재하고 태어난 거나 마찬가지다. 본능만으로도 주저 없이 복잡한 구조물을 빠져나가며 질주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거리가 쉽게 좁혀지지 않아.’

아무리 크롤러라도 기이했다. 의문이 생기자마자 내 뇌가 멋대로 상황을 추론하며 몇 가지 결론을 만들어냈다.

‘다른 아이들이 당하는데도 도망가기 바쁜 보얀.’

보얀은 성정은 비겁한 부류가 아니다. 같은 무리의 동료가 당했는데, 나서지 않고 냅다 도망갈 녀석은 아니다.

‘……내게 들켜선 안 될 짓을 한 거다.’

그리고 나조차도 바로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이 망할 꼬맹이가…….”

나는 이를 바득 깨물었다. 내 머리가 뜨거워졌다. 단번에 시야가 넓어지면서 길이 보였다.

콰직!

나는 옥상의 바닥이 파일 정도로 다리의 출력을 높이며 뛰어올랐다. 난 날다시피 하며 보얀을 쫓았다.

보얀의 머리와 등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난 녀석을 덮쳐서 제압하려 했다.

휙!

보얀은 훈련받은 사람처럼 내 기척을 알아채곤 옆으로 굴렀다.

쿵!

난 바닥에 헛되이 착지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날 피한 보얀이 헐레벌떡 옆으로 뛰려 했다.

까득!

내가 팔을 뻗어서 보얀의 뒷덜미에 손가락으로 걸며 잡아챘다. 옷자락이 찢어질 듯이 늘어졌다.

툭!

난 보얀의 다리오금을 걷어찼다. 녀석은 그제야 앞으로 엎어지면서 넘어졌다.

“보얀, 너…… 후벼 파기 전에 당장 그 눈깔 떠라.”

난 보얀의 멱살을 잡으며 험상궂게 노려봤다. 보얀은 내 시선을 피하다가 벌벌 떨며 눈을 떴다.

“루, 루카 씨, 저, 저는…….”

“각성제냐?”

나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보얀의 동공은 밤이라지만 크게 확장되어 있다. 입은 말라서 건조한 악취가 났다.

녀석은 날 보자마자 급하게 도망갔고, 크롤러라지만 지나칠 정도로 도주 감각이 좋았다.

‘각성제.’

보얀은 각성제를 복용하고 있었다. 나는 주먹을 쥐었다가 펼치길 반복했다.

‘어떡하지?’

성질머리 같아선 죽을 때까지 쥐어패고 싶었다. 그러나 그건 해결책이 아니다. 보얀이 폭력에 굴할 녀석이었다면 진즉 자신의 아버지에게 복종했을 것이다.

“왜 도망간 거냐? 평생 안 볼 것도 아니잖아.”

내가 보얀의 멱살을 놓으며 말했다.

보얀이 안 그래도 커진 동공을 더 크게 떴다. 상태를 보니 분명히 약효가 사라지면 끔찍한 두통에 시달릴 터다.

“……각성제를 복용했다는 걸 알면, 저를 반쯤 죽여놓을 것 같아서요. 루카 씨는 성격이 은근히 불같잖아요. 나중에 설명하려고 했어요.”

“으음.”

난 반박하기 어려웠다. 보얀에게 비친 나는 그런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뭐, 딱히 틀리지도 않았다.

“그리고…… 근래 절 피하셨잖아요.”

“피한 건 아니야. 바빠서 그랬던 거지. 젠장, 뭐, 일단 앉아봐라. 이야기나 들어볼 테니까.”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옥상 난간에 앉았다. 아래층에 있던 건물 주인이 소란을 듣고 올라왔지만 크레딧칩을 던지니 입을 다물었다.

보얀의 호흡은 가빴다. 나는 녀석이 진정될 때까지 기다렸다.

“학교를 계속 다니면서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수업을 듣고 있다 보면 몸이 근질근질해서 참을 수가 없었거든요. 머리가 빙빙 도는 느낌이었고, 당장 자리를 박차고 뛰어나가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주변을 둘러보니 저만 그랬죠. 몇 번이나 마음을 다잡아도 집중이 힘들었어요.”

나는 보얀의 말을 들었다. 쟈파와 내 예상대로였다. 보얀은 기존의 학습체계에 적응하지 못했다. 똑같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도 뒤처지고 있었다.

“그래도 그동안 혼자서 책을 읽고 공부를 했잖아.”

“그건 흥미가 있는 분야만 골라서 하는 거였으니까요. 학교에선 관심 분야 바깥의 공부도 해야 해요. 크롤러가 가장 못 하는 게 뭔지 아세요? 하기 싫은 일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다른 종족은 크롤러를 게으르다고 생각하죠. 관심 분야만 다를 뿐이지, 저도 결국 크롤러의 특성에서 벗어나지 못했어요.”

솔직히 나는 보얀을 이해하기 힘들다. 마음 한구석으론 핑계라는 생각을 지우기 힘들었다.

나는 필요하다면 뭐든 흡수하듯 배워나갔다. 사격술 같은 분야도 근위대 수준으로 일류가 아니라는 거지, 당연히 전문가 수준의 실력을 갖추고 있다.

‘필요하다면 싫어도 참고 배운다.’

그 당연한 게 보얀에겐 어려운 모양이었다.

같은 종족조차 서로를 이해하기 어렵다. 하물며 생물학적 차이가 현저한 타종족은 말할 것도 없다. 크롤러 종족 대부분이 그러하다면 그건 의지와 노력만으로 넘기 힘든 장애가 맞다.

“그래서 타고난 악조건을 극복하려고 약물에 손을 댄 거냐?”

“멍청한 짓이라는 건 알아요. 하지만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만…… 간간이 쓰면 될 거라고 생각해요.”

군인과 전사는 약물의 힘을 자주 빌린다. 그러나 그건 극단적 환경이기 때문이다. 기량의 부족이 죽음으로 이어지기에 부작용 따윈 무시하고 약물을 복용한다.

“넌 아직 어리잖아. 시간이…….”

“시간요? 제겐 시간이 없어요. 크롤러의 수명은 인간보다 짧아요. 절반 정도라고요. 남들보다 뒤떨어지는 데다가 주어진 시간조차 짧죠. 이런 제가 뭘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보얀이 세차게 대꾸했다.

“징징거리지 마. 어려운 길이라는 걸 알면서 선택한 거잖아.”

힘든 길을 택했다는 이유로 보얀을 오냐오냐 대할 생각이 없다. 힘든 길을 택한 것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길을 담담히 걸어 나가는 게 위대한 거니까.

“저도 징징거릴 생각은 없어요. 그러니 제 나름의 방법을 찾은 거예요. 저쪽 패거리는 다들 부잣집이라서 취급하는 약물도 등급이 높고 깨끗해요. 저도 필요할 때만 복용하다가 끊을 거고요. 약물을 복용하면 난잡한 사고가 정리되고 집중이 잘 돼요. 다른 종족들처럼요.”

난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들었다. 공부를 위해서 약물을 사용한다고? 필요할 때만 쓰고 나중에 끊는다? 너무나 순진한 생각이었다. 중독자가 된 보얀의 미래가 보였다.

‘그러나 보얀에게 다른 방법이 있을까?’

다른 해결책도 없으면서 무작정 반대할 순 없었다.

보얀의 선택과 판단을 존중하느냐, 아니면 그 끝이 불행으로 끝날 거라고 단정 짓고 말릴 것인가.

내게도 어려운 문제였다.

“하지만 넌 방금 광장에서 놀면서도 각성제를 복용한 상태였어. 공부하는 건 아니었잖아. 스트레스를 해소하려고 복용한 거지?”

내 지적에 보얀이 시선을 피했다.

“……다신 그러지 않을게요. 필요할 때만 사용한다고 약속해요.”

나는 눈을 감았다. 분명히 보얀은 약물 중독으로 삶이 피폐해질 것이다.

‘이대로 현실에 굴복하고 크롤러의 삶을 살아가느냐, 점점 좁아지는 절벽 길을 아슬아슬하게 걸을 것인가.’

노력만으로 타종족을 따라가지 못하는 영역이 존재한다. 자연체 인간이 제아무리 평생 단련하고 노력해 봐야 크롤러나 에퀘시안을 완력으로 꺾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기계공학과 생명공학의 힘을 빌려 부작용을 감수하고 자신을 강화한다. 그 결과물인 내가 보얀에게 하지 말라고 하기도 어려운 노릇이다.

지금 시대에선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종족이 인위적 수단을 통해 태생적, 생물학적 한계를 넘어야 한다. 그래야만 위업을 이룰 수 있다.

“보얀, 잘 들어라. 네가 자신을 통제 못 하는 게 보인다면 널 바로…….”

난 말하다가 뒤를 쳐다보며 일어섰다.

“하아, 하아…….”

우릴 쫓아온 여자가 있었다. 패거리의 대장, 야나카였다. 그녀는 호흡을 재빠르게 가다듬으며 권총을 뽑아 들었다.

“……보얀을 놔줘!”

야나카가 총구를 내 몸통에 겨누며 방아쇠를 당겼다. 아무리 복부라지만 망설임이 없는 사격이었다.

타앙!

나는 손바닥으로 복부를 가리며 총알을 막았다. 내 손아귀에서 총알이 핑그르르 돌다가 바닥에 떨어졌다.

“막, 막아?”

야나카의 눈동자가 커졌다.

“우리 동네에선 기본기다, 애송아.”

내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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