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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d Born Blood Chapter 209

209
나는 의체 기술자 명단에 나온 주소를 따라 보더시티를 돌아다녔다.

골목을 꺾어 들어가니 의체 시술소가 보였다. 닫힌 문에는 휴무일이라고 적혀 있었다. 휴일도 챙기는 걸 보니 괜찮게 버는 모양이었다.

우득.

난 문에 달린 잠금장치를 손가락으로 눌러서 부쉈다. 나는 문이 열리자마자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갔다.

“시, 시발, 뭐, 뭐야? 너, 누구냐고!”

시술소 주인이 화들짝 놀라더니 총을 내게 겨누었다. 그는 오른팔만 사이버네틱 의수였다.

“흠, 전신의체 시술이 가능한 설비가 있긴 한 거야? 수십 년은 지난 장비들이잖아. 정비만 겨우 하겠네.”

나는 대수롭지 않게 걸어 들어가며 내부의 시설을 살폈다. 총구에도 긴장한 기색을 내보이지 않았다. 사실, 정말로 긴장할 게 없으니까.

시술소 주인은 총구를 겨눈 채로 눈을 가늘게 떴다. 밑바닥에서 살아남은 만큼 눈치는 제법 빨랐다. 날 건드리면 죽는 건 자신이라는 걸 알아챈 듯했다.

“크레딧칩이나 큰 걸로 하나 던져주면 아는 걸 말하겠소.”

나는 눈치가 빠른 사람이 좋다. 구구절절 입 아프게 말하지 않아도 되니까.

드륵.

난 크레딧칩을 꺼내서 탁자에 올려두었다. 시술소 주인이 총구를 내리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난 비흡연자야. 담배 연기는 싫어해.”

나는 시술소 주인의 담배를 빼앗으며 말했다. 시술소 주인이 뭐라 구시렁거렸다.

“사실 나는 전신의체 시술은 해본 적이 없소. 보다시피 그럴 만한 설비도 아니지.”

“여기서 전신의체 시술을 했다는 말이 있던데?”

쟈파의 정보에 따르면 여긴 전신의체 시술이 가능한 곳이었다. 내 의문에 시술소 주인이 웃었다.

“당연히 전신의체 시술을 할 수 있다고 떠벌리고 다녀야지 실력이 좋다고 여길 테니까. 어차피 진짜 전신의체 시술이 필요한 사람은 이런 곳에 오지 않을 테니까 말이오.”

“장삿속이 제법이네. 하지만 덕분에 내 시간을 낭비했어. 크레딧칩이 갑자기 아까워…….”

난 단말기 화면으로 다음 방문지를 확인하려 했다.

“잠, 잠깐! 전신의체 기술자는 찾는 거면 엉터리들을 내가 확인해 줄 수 있소. 나 같은 놈들을 미리 빼두면 댁의 시간을 아낄 수 있겠지. 그러니…….”

시술소 주인이 크레딧칩을 힐끗힐끗 보더니 손가락을 비볐다.

……어차피 내 돈이 나가는 것도 아니지.

나는 같은 금액이 담긴 크레딧칩을 하나 더 꺼내서 내밀었다.

삑.

내가 단말기를 조작해 내장된 홀로그램 렌즈를 작동했다.

위이잉.

쟈파가 추려낸 명단이 홀로그램으로 허공에 떠올랐다. 가상 인터페이스도 형성됐다.

휙, 휙.

시술소 주인이 홀로그램을 이리저리 돌리며 손가락으로 줄을 그었다.

“이 새끼가 전신의체를 시술한다고? 거짓말도 정도껏 해야지. 쯧, 이놈은 전신의체가 아니라 의수도 제대로 못 다는 병신이오. 본인부터 약물에 찌들어서 수전증이 생겼던데…….”

시술소 주인은 능숙하게 명단을 정리했다.

난 팔짱을 끼며 명단 정리를 기다렸다. 시술소 내부는 허름했지만, 작업 공간이라는 느낌이 들긴 했다. 제대로 일은 하는 모양이었다.

“보더시티에서 의체 장사는 할 만해?”

“그럭저럭 먹고살긴 괜찮소. 수요가 적은 만큼 공급도 많지 않으니까. 새로운 고객은 드문 편이지. 상등품 의체를 구하기가 힘드니 신뢰성에 의문을 표하는 이가 많소. 아크레시아가 시장을 전면 개방하면 좀 나을 텐데 말이오. 의체 기술은 그쪽이 아무래도 최고지.”

듣고 있으니 괜히 뿌듯했다. 출신과 배경은 그리 쉽게 버리지 못하는 법이다.

“의체를 믿지 못하는 것도 이해는 돼. 한번 의체를 사용하기 시작하면 주기적으로 정비를 받고 교체해야 하지. 담당 정비사가 바뀐 것만으로도 사용감이 바뀌기도 하고. 특히 하급품이나 중고는 무조건 문제가 생기잖아.”

“요즘 제국의 신제품은 물리적 파손만 없으면 몇 년은 정비나 조율 없이도 끄떡없다고 하더군.”

요즘이 아니라 과거에도 그랬다. 귀족들이 쓰는 고급 의체는 외부 정비가 없이도 문제가 거의 생기지 않았다. 격렬하면서도 섬세한 전투용 의체들이나 주기적 정비가 필요했다.

“그럼 제국에 가서 살아보지 그래? 의체 기술자라면 가보고 싶지 않아?”

“거, 농담도 참. 거긴 사람이 살 곳이 안 되오. 기계가 사는 곳이지.”

맞는 말이지. 나도 같이 웃었다.

시술소 주인은 명단 확인은 끝냈다. 그는 손을 크게 휘저으며 홀로그램을 닫았다. 내 단말기의 홀로그램 렌즈에서 흘러나오던 빛도 멎었다.

나는 시술소를 나왔다. 바깥 하늘을 보니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어둠이 내리깔릴수록 보더시티의 불빛은 강해졌다.

난 반짝거리는 간판과 가로등 아래를 걸어갔다. 번화가인지라 홀로그램 광고가 어지럽게 비쳤다.

콰직! 쿵!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난 골목길 안쪽을 응시했다.

“크릇!”

크롤러가 보였다. 두 명의 크롤러가 주먹다짐하고 있었다. 바로 옆에 술집이 있는 걸 보니 거기서 시비가 붙은 모양이었다.

도시에 적응한 크롤러들조차 부랑배나 갱으로 살아간다. 성실한 노동과는 거리가 먼 부류들이다.

‘보얀…….’

크롤러들을 보니 보얀이 떠올랐다.

‘……근래는 녀석의 상태가 좀 나아 보이긴 했지.’

따로 찾아가지 않아도 사옥에서 보얀과 종종 마주친다. 최근에는 얼굴이 좀 밝아진 것 같았다. 어떤 식으로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거나 돌파구를 찾았다면 다행일 터다.

‘냉정하게 말해서, 보얀의 문제는 내가 해결해 줄 수도 없어.’

나는 거리를 걷다가 배가 고파져서 좋은 냄새가 나는 노점상으로 들어가 앉았다.

“손님, 초면이신 것 같은데 우리 가게 메뉴는 자파 버거만 있습니다.”

담배를 문 채로 고기패티를 뒤집던 사내가 말했다.

“쟈파가 아니라 자파?”

“그 뱀 대가리 놈의 버거보다 두 배는 맛있으니 한 번 먹어보쇼.”

난 어깨를 으쓱하며 하나 주문했다. 장사가 꽤 되는지 사람들이 제법 오갔다.

주인장은 포장지에 싼 버거를 내밀었다. 나는 버거를 받고선 포장지를 천천히 뜯었다. 생김새는 쟈파 버거와 다르지 않았다. 냄새도 엄청 비슷했다.

‘가격은 절반도 하지 않네.’

이게 더 맛있다면, 쟈파 버거도 긴장해야 할 것이다.

우물, 우물.

난 버거를 깨물고 씹으며 미각에 집중했다.

가게 주인의 시선이 느껴졌다. 내 반응을 기대하는 듯했다.

‘……놀랍군.’

맛이 비슷하다. 소스는 놀랍도록 쟈파 버거와 닮아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고기패티의 식감이 미묘했다. 고무라도 넣은 것처럼 좀 더 질겼고, 열심히 씹지 않으면 소화불량에 걸릴 것 같았다.

“맛은 두 배가 아니지만, 가격이 절반이니 먹을 만하네.”

“흠, 지금은 그 정도 평가로 만족하겠습니다, 손님. 발전을 위해선 냉정한 평가도 필요한 법이죠.”

가게 주인이 씨익 웃었다. 자신도 쟈파 버거에 비하면 부족하다는 걸 알 것이다.

나는 자리에 앉아서 남은 버거를 마저 먹었다. 목이 말랐지만, 음료통에는 벌레 사체와 이물질이 둥둥 떠다녀서 굳이 마시고 싶진 않았다.

‘음?’

난 가게 주인의 등 뒤를 응시했다. 노점상의 천막 너머로 그림자가 성큼 다가왔다. 체형을 봐선 에퀘시안이었다.

“이봐, 고개 숙여.”

내가 엄지에 묻은 소스를 빨며 말했다.

“네?”

가게 주인은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그리고 거친 팔이 천막을 뚫고 나오더니 가게 주인의 머리를 잡아챘다.

으득, 으득.

노점상의 천막을 찢으며 에퀘시안이 나타났다. 그는 가게 주인의 머리를 한 손으로 감싸며 들어 올렸다.

에퀘시안은 낯익은 전투 헬멧을 쓰고 있었다.

-루카, 왜 네가 여기에 있는 거냐?

그도 나를 알아봤다.

“다 나은 모양이로군, 엔.”

난 자리에 앉은 채로 말했다. 엔이라는 말에 가게 주인이 벌벌 떨기 시작했다.

“쟈, 쟈파의 사냥개…….”

-내가 왜 왔는지는 알겠지?

엔이 가게 주인을 바닥에 내던지며 손을 툭툭 털었다. 에퀘시안의 체격은 인간보다 압도적으로 크고, 근질은 무쇠처럼 단단하면서도 탄력이 있었다. 크롤러처럼 타고난 전사 종족이다.

“고, 고작 길거리에서 좀 파는 정도로…….”

-규모가 중요한 게 아니야. 넌 산업 스파이라고. 소스 레시피는 누구한테 알아낸 거지? 뭐, 당장 말하지 않아도 돼. 어차피 불지 않곤 못 버틸 테니까.

가게 주인의 얼굴은 사색이었다. 그는 품에서 권총을 꺼내려 했다.

‘바보 같은 짓을 하는군.’

엔은 가게 주인의 손을 잡더니 악력만으로 찌그러뜨렸다.

으드득, 드득!

엔이 손을 떼자, 가게 주인의 손은 쇳덩이에 눌린 듯이 으스러져 있었다.

“끄으읍, 끄어억, 컥.”

가게 주인은 쪼그린 채로 부러진 손을 부여잡고 있었다. 그는 눈물과 콧물을 열심히 짜내고 있었다.

“부상에서 낫자마자 바쁘게 돌아다니는군.”

내가 엔에게 말을 걸었다. 엔은 쟈파 사옥 습격 때에 중상을 입고 입원했었다.

-내 공백을 네가 잘 메꿨다고 들었다. 제법이군, 인간.

“제법이 아니라 너보단 내가 낫지. 넌 이런 시답잖은 일이나 맡고 있잖아.”

-하, 하, 하. 자신감은 칭찬해 주지. 하지만 시답잖은 일은 아니야. 소스 레시피 유출은 내가 나설 정도로 심각한 문제지. 이 멍청이는 인지하지 못한 모양이지만.

엔의 말이 맞을 것이다. 엔은 쟈파에게 신용받는 용병이다. 중요치 않은 일에 엔을 쓰진 않겠지.

‘엔은 얼마나 강할까?’

항상 궁금했다. 내게 보여주는 자신감만큼 강하지 않으면 난 상당히 실망할 것이다.

난 에퀘시안 종족에 대한 기댓값이 높다. 그중에서도 강하다고 일컬어지는 엔의 실력이 보고 싶었다.

‘정확히는 싸워보고 싶은 거지.’

내 전의를 느꼈는지 엔이 나를 빤히 응시했다. 얼굴까지 전부 감싼 전투 헬멧은 위협적이었다.

-욕구불만이면 날 쳐다보지 말고, 크레딧칩이나 목에 걸고 저 안쪽으로 가 봐. 여자든 갱이든 널 노리고 달려들 테니까.

“유익한 충고로군. 고마워. 그럼 업무나 마저 보라고, 쟈파의 사냥개.”

난 자리에서 일어섰다. 엔도 가게 주인을 들쳐 메고선 사라졌다.

나는 길거리를 계속 걸었다. 보더시티에는 여러 종족이 있다.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종족도 길에서 마주치곤 했다. 제국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에퀘시안.’

내 관심을 가장 끄는 종족이었다. 대개 전투력이 뛰어난 종족은 지나친 호전성 때문에 신뢰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크롤러도 그러했다.

에퀘시안은 냉철한 집단주의 성향이 있었다. 전투 종족치고는 범죄자 비율도 낮은 편이었다. 그러니 여러 종족이 용병으로 쓰는 것이겠지.

둥칫, 둠칫, 짝, 쿵.

음악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광장에서 여러 종족이 얽힌 청소년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일종의 길거리 문화였다.

담배인지 약물인지 모를 매캐한 연기도 그들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원래라면 난 저들을 무시하고 지나갈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눈에 걸리는 게 있었다.

‘보얀?’

후드를 짙게 눌러쓴 크롤러 소년이 보였다. 타종족은 분간이 어렵기에 착각일 수도 있었다.

처음에는 내가 잘못 본 줄 알았다. 그러나 몇 번을 봐도 보얀이 맞았다. 보얀은 박자에 맞게 고개를 까닥이며 불량아와 어울리고 있었다.

“으음…….”

난 드물게 오랫동안 고민했다. 보얀도 스트레스 배출구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 저러는 게 올바른 행동인지는 의문이었다.

저건 스트레스 해소가 아니라 도피일지도 모른다.

‘결국은 보얀의 삶이다. 내가 간섭할 바는 아니지.’

……라고 생각하면서 난 몇 번이나 보얀을 내버려뒀다. 그래, 여러 핑계를 대며 도망간 거나 마찬가지다. 느낌상, 오늘도 도망가면 안 될 것 같았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광장으로 걸어갔다.

“어이, 아저씨. 여긴 늙다리가 노는 곳이 아니야. 사창가는 저쪽이라고.”

외곽에서 쉬고 있던 소년이 강한 척하며 내 앞을 가로막았다.

“하하.”

난 웃음을 흘렸다.

하룻강아지는 이래서 좋다. 뒷골목에서 오래 구른 놈들은 강자의 냄새를 잘 맡는다. 그러나 어린놈들은 생존본능보다 앞서는 게 자존심이었다.

콰직!

난 놈의 정강이를 찼다. 뼈가 경쾌하게 부러졌다.

이건 가르침이다. 강자에게 덤비면 죽을 수 있다는 걸 알아야 나중에 목숨을 건지겠지.

“아악! 시발! 이, 개 같은 꼰대 새끼야! 너, 너 뒈졌어!”

정강이가 부러진 소년이 삿대질하며 친구들을 불러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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