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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d Born Blood Chapter 204

204
나는 키누안에 대해 알면서도 모른다.

은퇴한 근위대원이자 근위대의 교관, 황제의 종사, 아키에스 도미니, 그러나 황제 암살 실행범으로 의심되는 자. 그는 제국의 첩자이면서도 네메시스의 첩자이다. 그리고 보더시티에선 쟈파의 조언자이면서도 배신자였다.

그 어떤 사회적 역할로도 키누안을 정의할 수 없었다.

‘사회적 신분과 지위로도 키누안을 파악할 수 없다.’

그는 그 무엇도 될 수 있으면서, 그 무엇도 아니었다.

키누안을 설명하자면, 딱 하나의 개념만이 불변했다.

‘혼돈.’

키누안은 혼돈을 두르고 다닌다. 그는 혼돈의 태풍이었고, 그가 지나간 자리마다 엉망진창으로 무너졌다.

난 발렉의 기억에 남아 있는 키누안의 잔영을 보았다.

“피곤하군. 여러모로 옛날 같지 않은 탓이겠지.”

키누안이 의자에 앉으며 숨을 골랐다. 저 언행도 사람들을 혼란케 하려는 의도가 듬뿍 담겨 있었다. 그 의도에 속았던 소년 루카는 가끔 키누안을 동정하기도 했었다.

‘키누안은 발렉의 죽음을 통해 전언을 전달했다.’

……그리고 발렉은 기꺼이 자신의 역할을 받아들였다.

‘어째서?’

그 의문과 추론은 수없이 떠오른다. 그러나 잠깐 접어두자. 지금은 키누안에게 집중할 때다.

“많은 의문이 있을 거야. 방금 내 발언을 듣고선 ‘정말로 키누안이 시한부이자 재기불능일까?’라는 생각도 들었겠지.”

키누안이 관자놀이를 검지로 톡톡 치며 말했다.

“잠시 원초적인 이야기를 해보지. 공포란 무엇일까?”

키누안은 상체를 앞으로 기울 채로 양손을 깍지 꼈다. 그는 고개를 들어 정면을 응시했다.

“뭐, 어렵게 떠들어댈 생각은 없네. 공포란 불안과 미지에서 오는 거지. 공포를 느낀다는 건 생물에 몹시 중요해. 공포는 근원적인 생존본능이지. 공포를 느끼지 못한다면 발전조차 없어.”

나는 키누안의 언행 하나하나에 집중했다.

‘모든 언행이 산책하듯 자연스럽다.’

키누안에겐 위화감이 없기에 위화감이 느껴졌다. 그는 지나칠 정도로 평온했다. 그가 어디 평온할 상황인가? 제국마저 자신을 추적하고 있었다.

“인류만이 아니라 많은 종족이 과학이란 도구로 우주를 해석했지. 과학이란 도구를 얻은 원숭이들은 두려울 게 없었어. 과학으로 모든 걸 설명할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지. 실제로도 그랬거든. 미지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해석하고 정복해야 할 존재가 된 거야.”

키누안은 주머니에서 손바닥 크기의 큐브를 꺼냈다. 그의 손가락에 닿은 큐브의 단면에서 푸른빛이 호흡하듯 반응했다. 반응 형태, 양식과 모양은 고대의 것이었다.

‘아케인 문명의 유물.’

무슨 용도인지도 모를 아케인 유물이었다.

“오만한 착각이 깨지는 건 한순간이었어. 우주를 해석하려면 과학, 그 이상의 도구가 필요했지. 아케인 문명과 포스…… 그리고 적. 우주로 나온 우리 앞엔 과학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현상과 존재들이 그득했지. 우주를 움직이는 건 물리 법칙 말고도 존재했어. 그 법칙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에서 움직이고 있었고. 그토록 신봉하던 물리 법칙조차 하위 법칙처럼 느껴질 정도였거든. 포스가 어떤 원리로 물리법칙을 어긋나게 하는 걸까? 그 누구도 몰라. 사용자들조차 설명하지 못했지.”

키누안은 유물을 집어넣었다.

“우리의 선조들이 천둥 번개를 보고 신의 분노라 믿었듯이, 기이한 힘과 불가해의 문명을 보고 사람들은 ‘믿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종교가 생긴 것도 이상하지 않았지. 우린 불가해의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했을 때, 그 현상과 대상을 신으로 섬기거든.”

키누안이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이쪽으로 걸어왔다.

“그러니까, 신이 되려면 그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해야 해. 그게 승천의 첫 단계다.”

키누안이 손바닥을 뻗어 발렉의 눈을 가렸다. 시야가 사라졌다.

“내 행방을 알고 싶다면 무쉬르 알 카슈라를 찾아가라. 거기서부터 시작하지.”

그 말을 끝으로 ‘툭’하는 소리가 들렸다. 발렉을 기절시킨 모양이다.

키누안의 동작과 발렉의 기절에서 난 의심을 확신으로 바꿨다.

‘이건 발렉의 뇌가 아니다.’

발렉은 전신의체다. 여차하면 몸을 바꿀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의 뇌를 여기에 넣어서 발렉인 척 놔둔 것이다.

‘발렉은 오랫동안 쓴 전투의체를 버렸군.’

전신의체를 통째로 바꾸는 건 함부로 할 일이 아니다. 뇌의 부담도 크고 적응도 오래 걸린다. 무엇보다 나와 겨룰 정도의 고성능 전신의체는 아무 데서나 파는 물건이 아니다. 돈만 있다고 구할 수도 없다.

‘발렉이 새로운 전투의체를 구했다면 분명히 그 흔적이 어딘가에 남아 있을 거야.’

나는 시뮬레이션을 가속해 남은 기억도 확인했다. 역시나 이 뇌의 주인은 키누안과 전혀 관련이 없는 자였다. 납치를 당한 부랑자가 발렉의 의체로 들어간 것이다.

끼이이익.

난 의식을 현실로 끌어올렸다. 장막을 찢는 느낌이 들었다. 꿈에서 깨어나듯 현실 감각이 조금씩 돌아왔다.

움찔.

나는 손가락부터 움직이며 눈을 떴다. 헬멧 내부가 보였다. 가상 현실로 인도하는 빛이 깜빡거리다가 이내 사라졌다. 불쾌한 소음도 멎었다.

“생각보다 빨리 복귀하셨군요.”

“뭐…….”

난 말꼬리를 끌며 생각했다.

‘거짓말은 의미가 없다. 쟈파가 기억을 직접 보지 못하더라도 다른 사람을 통해 시뮬레이션 내용을 확인할 수 있어.’

쟈파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았다. 본성이 좀 더 드러나고 있었다. 그도 키누안과 가까워지니 감정적 고조를 느끼는 모양이었다.

“……이건 발렉의 기억이 아니야. 발렉의 의체를 쓰고 있던 부랑자지. 키누안은 이 뇌를 통해서 전언을 보낸 거다. 무쉬르 알 카슈라를 찾으라고 하더군.”

난 기억을 더듬었다. 예전에 라피스가 지나가는 말로 무쉬르 알 카슈라를 언급했었다.

‘전설의 용병, 일인군단 무쉬르 알 카슈라처럼요. 단순히 전설인 줄 알았는데 실존했잖아요.’

여기서 말하는 ‘전설’은 단순히 대단하다는 뜻이 아니다. 도시 전설이나 우화에나 나올 법한 비현실적인 존재라는 말이다.

“무쉬르 알 카슈라 말입니까?”

“연락이 닿는 사람이야?”

내가 넌지시 말했다. 쟈파가 긴 목을 옆으로 기울이며 머리를 갸웃거렸다.

“연락요? 농담도 참. 아, 루카 씨는 카슈라에 대해 잘 모르는군요. 제가 설명할 것도 없이…… 조금만 찾아봐도 정보가 나올 겁니다. 어쨌든 그것 말곤 다른 정보가 없습니까?”

“중요한 건 이게 다야. 키누안은 우리가 추적할 수 있게 흔적을 남기고 있어. 좋은 징조는 아니지. 놈의 의도대로 우리가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니까.”

난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지만 우린 그거라도 쫓을 수밖에 없습니다.”

“쟈파, 내 경험상…… 이대로 가면 놈의 뜻대로 일이 풀릴 뿐이다. 지금은 쫓아가되, 마지막엔 놈의 예상 바깥에서 움직여야 해.”

쟈파가 나를 쳐다보더니 웃었다. 두 갈래의 혓바닥이 사납게 좌우로 출렁였다.

“그래서 당신을 고용한 겁니다. 제가 준비한 비수가 바로 당신이고, 당신에게 무제한적인 자유를 주며 감시하지 않는 까닭이기도 합니다. 제 감시와 이해 범주 내에서 당신이 움직인다면, 키누안의 허를 찌르진 못할 테니까요.”

나는 살짝 놀랐다. 하기야 쟈파가 사람이 착해서 내 행동을 용납한 건 아니었지. 내 돌발행동을 어지간해선 전부 참는가 싶더니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날 억제하면 그만큼 내 행동반경이 좁아지고 예측도 쉬워진다. 키누안을 추적하려면 훈련받은 사냥개가 아니라 자유로운 들개가 있어야 한다.

쟈파는 아키에스 빅티마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니 내 배신도 단단히 대비하고 있겠지.’

신중해야 한다, 루카.

* * *

나는 꿈을 꿨다. 꿈이라는 걸 자각하는 건, 곧 깬다는 뜻이다. 의식이 현실로 올라간다면 꿈의 내용을 대부분 잊고 만다. 꿈이란 뇌를 스치는 잔상에 불과하니까.

‘지젤?’

밤하늘과도 같은 머리카락이 보인다. 검푸른 머리카락은 좋은 향기가 날 것 같았다. 그 아래로는 그녀의 나신이 부드럽게 빛났다. 팔다리 경계의 인공 피부 구분선조차 고혹적이었다.

지젤은 내게 등을 내보이며 앞으로 걷고 있었다.

스륵.

내가 손을 뻗어서 지젤을 잡으려 했다. 그녀는 신기루처럼 훌쩍 나아갔고, 내 손은 허공을 저었다.

지젤은 돌아보지 않는다. 앞으로만 나아가고 있었다.

‘어?’

어쩐지 지젤의 커 보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 눈높이가 낮아진 것이다.

기잉.

어두운 바닥에서 거울이 치솟았다. 내 모습이 보였다. 과거의 나다. 생도 시절의 소년 루카가 여기에 있었다.

‘나는…… 성인이 된 지젤을 본 적이 없어.’

지젤은 12년을 먼저 걸어갔다. 내가 아무리 용을 써도 따라잡지 못할 시간이다.

뚝.

난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거울과 함께 꿈은 깨졌다.

내 의식이 현실로 부상했다.

‘꿈에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어.’

나는 천장을 보며 눈을 깜빡였다. 곧 꿈에 대한 기억이 사라질 것이다. 어렴풋한 편린만 남겠지.

하지만 난 꿈 일기를 적는 취미는 없다. 잊으면 잊는 거다. 그리운 사람의 꿈을 꿨다고 궁상맞게 기록할 생각은 없다.

난 얼마 전에 일레이를 만났다. 가상 현실이라지만 키누안과 마주하기도 했다. 자극받은 덕분에 과거의 기억이 불쑥불쑥 고개를 들었다.

‘지젤 쿠스토리아.’

나는 그녀를 향한 감정을 느끼려고 애썼다. 다른 사람을 생각할 때와는 다른 색깔의 감정이 꾸물꾸물 움직였다.

‘일레이가 지젤의 행방불명을 조사해서 올 거다.’

일레이와 마주하는 날이 오늘이었다.

나는 오늘을 위해 그간 보더시티의 술집을 여러 군데 꾸준히 들렀었다. 그래야 오늘 같은 날에 술집을 찾아가도 이상하지 않을 테니까.

‘상태는 나쁘지 않아.’

난 물구나무 상태로 손으로 걷다가 사뿐히 내려왔다. 고난도의 동작은 의체와 신경계 상태를 확인하기 좋다.

나는 어제 머리에 담아두었던 정보를 출력하듯이 떠올렸다.

‘무쉬르 알 카슈라.’

키누안이 남긴 단서다. 카슈라를 찾으면 키누안에 대한 정보가 나올까? 의심을 해봤자 의미가 없다. 어쨌든 무쉬르 알 카슈라와 접촉해야 한다.

‘전설의 용병, 일인군단. 수식어와 별명이 참 거창하네.’

나도 무쉬르 알 카슈라의 정보를 확인했었다. 최초로 언급된 시기는 인류의 노바스 행성 정착 초기였다.

당연하게도 정착 초기는 무법의 혼란 그 자체였다. 치안 조직과 행정 체계조차 제대로 없던 시기였다. 당시에 가장 활약한 용병 중 하나가 무쉬르 알 카슈라라고 했다.

‘……이래서 전설이라고 불리는군. 활동 기간이 말도 안 돼.’

무쉬르 알 카슈라의 추정 나이는 이백 살이 훌쩍 넘었다. 제국의 전신의체 귀족조차 관리를 아무리 잘해도 이백 살을 넘기 어렵다. 그때까지 살아있더라도 현역으로 전투는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그 대단한 아가타 쿠스토리아도 나이를 이기지 못했다. 라그나타도 마찬가지고. 뇌는 결국 생체이고 관리를 잘하더라도 늙고 약해져.’

무쉬르 알 카슈라는 정착 초창기부터 안정기에 이른 지금까지 짧게는 몇 년, 길게는 십수 년 단위로 모습을 종종 드러냈다. 이윽고, 삼십 년 넘게 소식이 없었기에 다들 그가 죽은 줄 알았다.

‘그러다가 십 년 전에 나타나 활동을 개시했다.’

나는 무쉬르 알 카슈라의 최근 사진을 확인했다. 시뻘건 화마가 드리운 전장에서 찍힌 사진인지라 해상도가 높진 않았다.

‘인간이 맞긴 한 건가?’

시커먼 로봇과도 같은 외형의 전신의체였다. 덩치는 보통 사람보다 조금 더 큰 수준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몸만 한 상자도 짊어지고 있어서 자세가 구부정했고, 늘어진 팔은 무릎까지 닿았다. 기이한 자세 때문에 아둔해 보이기까지 했다.

무쉬르 알 카슈라의 정체에 대한 음모론은 다양했다. 초고성능 전투 안드로이드라는 소리도 있고, 여러 사람이 대를 이어 이름을 쓰는 거라는 말도 있었다. 벨라토나 아크레시아의 비밀 병기라는 소리도 종종 나왔다.

‘비공식적 기록과 가짜 정보가 뒤섞여 있지만…….’

난 무쉬르 알 카슈라가 참가했다는 전투의 기록을 살폈다.

‘……전공의 일부만 사실이라도 최소 레기온급 전투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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