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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d Born Blood Chapter 203

203
오늘도 매캐한 화약 연기가 훈련실을 채우고 있었다.

탄도 예측 훈련을 마친 나는 라그나타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며 기질에 관한 대화를 끌어냈다.

“기질이란 쉽게 말해 뇌가 작동하며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이지. 뇌의 구조와 형태, 같은 구조라도 어느 영역이 우세한지, 뇌의 반응 순서, 신경전달 물질과 수용체는 발달 정도…… 무수히 많은 얽힘으로 인해 기질이 만들어진다.”

라그나타가 말했다. 그녀는 어디서 배웠는지 모를 지식을 토해냈다.

“멍청한 질문인 건 알아. 그래도 물어보지. 기질을 바꿀 수 없는 건가?”

내가 땀을 닦으며 말했다.

“정신에도 구조가 존재해. 아무리 노력해도 신체 구조상 불가능한 일을 해낼 수 없듯이,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정신의 구조적 한계에 부딪히면 거기까지인 거지. 정신의 설계도는 물리적으로 펼칠 수도 없을뿐더러, 그나마 드러난 것조차 터무니없이 얕다. 그러니 무지한 자들은 정신에는 구조가 없고 가능성은 무한하다고 믿어. 하지만 뇌의 성장이 끝나면, 구조가 정해지고 그걸 바꿀 방법은 ‘거의’ 없다. 우리가 한계를 넘기 위해 신체의 형태를 바꾸며 개조하듯 뇌도 물리적 변화가 있어야 정신의 구조, 기질이 바뀌지.”

하지만 설계도가 완전히 드러나 복제마저 가능한 신체와 달리 뇌는 설계도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뇌의 개조는 아직도 불분명한 미지의 영역이다. 똑같은 뇌 수술을 같은 종족에게 하더라도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기 일쑤였다.

“하지만 종종 큰 사건으로 사람의 성격이 바뀌는 경우가 있잖아.”

“실제로 성격 변화에 영향을 주는 사건을 겪으면 뇌도 그만한 압박과 충격을 받아 구조적 변화가 일어. 후천적 변화지. 하지만 그마저도 원래 구조에서 크게 벗어날 정도로 바뀌진 않아. 정신을 건물이라고 생각해라. 뇌가 덜 자란 성장기에는 각종 경험으로 유연하게 변화하고 방향성에 맞게 지을 수 있어. 그땐 필요하다면 새로운 형태와 구조를 도입할 수 있지. 하지만 성인이 되고 뇌의 성장도 끝나 형태가 정해지면 기존 구조에서 큰 변화를 주기 어려워. 구조가 바뀔 정도의 사건과 정신적 충격을 받는다면 그땐 변화가 아니라 아예 정신이 붕괴하지.”

라그나타는 길게 설명하다가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그녀가 말을 덧붙였다.

“……네가 기질을 바꾸고 싶은 건 아닐 테고, 마음에 걸리는 게 있나 보군.”

라그나타의 눈동자가 예리하게 날 꿰뚫어 봤다. 나는 입술만 씰룩거리며 옷을 챙겨 입었다.

“이참에 기질을 바꿔서 만능형이나 되어볼까 했지. 내 기질에서 냉철한 합리성을 강화하면 되잖아.”

라그나타가 크게 웃었다.

“거짓말하더라도 말이 되는 걸 하지. 너 같은 명예 추구형들은 자신의 성향과 기질을 자랑스럽게 여겨.”

“독자연구로 잘난 척하는 것도 꼴불견이야, 라그나타.”

내가 퉁명스레 말했다. 난 라그나타를 뒤로 하고 훈련실을 나왔다.

복도에서 한참 걷던 나는 단말기를 확인했다. 쟈파가 보낸 메시지가 있었다.

‘보얀의 시험성적이로군. 보얀은 내게 보여주고 싶진 않을 텐데…….’

그래도 보호자니까 확인은 해야 할 터다. 그런 의미로 쟈파가 내게 보낸 것일 거고.

난 담담히 보얀의 성적을 훑어봤다.

‘모든 성적이 하위권.’

학교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됐으니 성적이 나쁜 건 당연하다. 문제는 자신의 학습 능력이 다른 학생보다 떨어진다는 걸 보얀이 깨달았다는 것이다.

나도 보얀이 열심히 공부했다는 걸 안다. 녀석은 밑바닥에서 힘겹게 올라와 기회를 잡았고, 정말 필사적으로 노력했을 것이다.

쟈파가 남긴 메시지가 내 귓가에서 들렸다.

-수동적인 수업 자체가 보얀에겐 참기 힘든 고문이었을 겁니다. 거기다가 크롤러의 뇌는 지엽적인 암기에 몹시 약하죠. 활자 인식 능력도 떨어지고요. 우리로 따지면 종족 전체가 난독증이 있는 셈입니다.

나도 그간 가만히 있었던 건 아니고, 크롤러에 대한 책도 여럿 읽어 보았다. 뭐, 호의적인 시선으로 쓴 책은 없다시피 했다.

크롤러는 게으른 데다가 포악한 종족이다. 쓸데없이 튼튼하고 힘도 세서 여러모로 노바스 행성의 골칫덩어리였다.

과학 문명과는 거리가 먼 크롤러가 우주 진출이 성공할 수 있었던 건 ‘기술 약탈’ 덕분이었다. 가까운 문명 종족을 공격하고 기술과 장비를 빼앗아서 우주 진출에 성공했다고 한다.

‘크롤러 종족은 겉보기엔 멍청한 것 같지만…… 지능 자체는 떨어지지 않는다. 크롤러 전사 집단은 특수부대처럼 지능적으로 움직이고 체계적인 전술을 구사해. 싸움과 사냥에만 머리를 쓰는 거지.’

지능의 주 사용처가 다르기에 아둔하게 보이는 것이다.

‘애초에 우주 진출에 성공했으면 안 될 종족이었어.’

자력으로 우주에 진출한 종족들은 대부분 기술과 지식에 대한 선호와 선망이 있다. 그러나 약탈한 기술과 장비로 우주에 나온 크롤러에겐 그런 성향이 없었다. 보얀이 이상한 것이다.

크롤러의 뇌는 전투와 사냥을 배울 땐 몹시 유리했다. 전체적인 흐름을 보면서 외부 자극에 빠르게 반응한다. 전투와 사냥은 유연성이 중요하기에 사고의 초점도 쉴 새 없이 변화하고, 호전적인 성향 덕분에 예기치 못한 위험에도 동요하지 않고 용맹하게 대응한다.

‘그러나 끈덕지게 붙어있어야 하는 학문에선 불리한 특성이지.’

대신, 크롤러는 뛰어난 전투 신체를 지녔다. 아무런 강화를 받지 않아도 어지간한 총알 세례를 버텨내고 의체와 주먹다짐을 할 수 있었다. 타고난 손톱만 세워도 인간을 가볍게 찢어 죽일 수 있는 맹수였다.

“음, 어렵네.”

나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복도를 걸었다. 내일은 발렉의 기억 추출이 끝나는 날이다. 일찍 쉬어야겠군.

* * *

나와 쟈파는 사옥에 마련된 시뮬레이션실을 방문했다.

기억 추출을 담당한 바이오 해커가 우릴 맞이했다. 빛이 흐르는 전자회로 문신이 그의 몸을 화려하게 뒤덮고 있었고, 고글형 의안이 눈에 띄었다. 전신의체는 아니더라도 몸의 상당 부분이 기계인 듯했고, 관자놀이에는 뇌와 직결하는 단자가 여럿 있었다.

‘지하 세계의 해커라는 분위기를 풀풀 풍기고 있군.’

나는 게슴츠레 뜬 눈으로 바이오 해커를 응시하며 침묵했다. 대화는 쟈파의 몫이다.

“히힛, 추출한 기억은 불가피하게도 시뮬레이션으로 처리했습니다. 살아있으면 영상 처리도 가능할 텐데, 이미 죽은 사람이라 작업이 어렵더군요.”

바이오 해커가 설명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호욧.”

“별말씀을요. 다만, 기억의 선명도 유지를 위해 최소 심도 단계가 높게 잡아뒀습니다. 종족이 다른 쟈파 님은 시뮬레이션 진입이 힘드실 수도 있습니다.”

“호요오오, 그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제 옆에 분이 볼 거라서요. 인간 남성에다가 추출 대상과 비슷한 일을 하시는 분이니 시뮬레이션 동기화가 쉬울 겁니다.”

기억 추출 시뮬레이션은 추출 대상과 동질성이 높을수록 동기화가 쉽고 선명도가 높아진다. 똑같은 기억을 접하더라도 동질성에 따라 관측되는 기억의 양과 정확성, 세부 사항이 달라진다.

바이오 해커와 쟈파는 화기애애하게 몇 마디 이야기를 더 나눴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바이오 해커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대금은 결과물을 확인하시고 주셔도 됩니다. 오랜 단골이시니까요.”

“내용물은 확인할 필요도 없죠. 전 당신의 실력을 믿고 있습니다.”

“히히, 그럼 대금은 늘 하시던 방법으로…….”

바이오 해커는 쟈파 상사의 소속이 아닌 외부인이었다. 난 그 부분이 마음에 걸렸다.

‘껄끄럽군.’

발렉의 기억은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을 터다. 저 바이오 해커가 발렉의 기억을 다른 곳에 팔아넘긴다면 곤란한 일이 생길 수도 있다.

‘내가 아는 사람이 아니니 어디까지 신뢰해야 할지 가늠이 되지 않아. 쟈파가 사람을 잘 보았길 믿는 수밖에 없지.’

나는 가상 시뮬레이션 장비가 거치된 의자에 앉았다. 근위대의 시뮬레이션 훈련실에서 쓰던 물건과 구조상 큰 차이가 없었다.

끼릭.

난 시뮬레이션 헬멧을 내 쪽으로 당기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대금은 방금 보냈습니다.”

쟈파가 단말기에서 손을 떼며 말했다. 바이오 해커의 고글 의안이 망막 디스플레이가 반짝거리며 글자가 여럿 떠올랐다.

“힛, 히힛, 확인했습니다. 언제나 감사합니다, 쟈파 님. 그럼 다음에 또 일거리가 생기면 불러주시죠.”

바이오 해커가 문 앞에 서며 말했다. 시뮬레이션실의 문이 열렸고…… 그 앞엔 에퀘시안 용병이 서 있었다.

“힛?”

바이오 해커가 눈을 크게 떴다.

저벅, 툭.

에퀘시안 용병이 바이오 해커를 안으로 밀면서 들어왔다. 그는 바이오 해커의 머리를 잡더니 그대로 힘을 줬다.

우드득!

바이오 해커의 목뼈가 덧없이 부러졌다. 섬뜩한 소리가 퍼졌다.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다.

에퀘시안 용병은 쓰러지는 바이오 해커의 몸을 붙잡으며 어깨에 들쳐 멨다.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 아니었어? 제법 친한 것 같던데?”

내가 시뮬레이션 돌입 전에 담담히 물었다. 쟈파는 손톱을 맞부딪히며 혓바닥을 날름거렸다.

“중요한 정보를 공유할 만큼 친하진 않거든요. 그리고 제 의뢰로 추출한 기억을 외부에 몇 번이나 팔아넘긴 자입니다. 그런데도 제가 계속 일을 맡기니, 제가 눈치채지 못했다고 생각하며 저를 우습게 여겼을 겁니다.”

난 눈을 찡그렸다.

“그렇게 신뢰할 수 없는 놈에게 일을 맡긴 거야?”

“……그러니까 갑자기 죽거나 사라져도 주변에서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 겁니다. 죽을 만한 짓을 자주 했으니까요.”

쟈파가 뱀의 눈으로 날 빤히 보았다.

‘날 향한 경고인가?’

쟈파는 굳이 내 앞에서 바이오 해커를 처분했다. 여러 의미가 담긴 행동일 것이다.

‘배신하거나 선을 넘지 마라.’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저 바이오 해커가 쟈파가 의뢰한 기억 정보를 정말로 외부에 팔아넘겼는지 알 순 없다. 쟈파가 적당한 핑계를 만든 것일 수도 있다.

끼릭, 끽.

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가상 시뮬레이션 헬멧을 눌러썼다. 의자에 몸을 기대니 시뮬레이션 장비가 가동했다.

귓가에는 백색소음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윙윙 울렸다. 헬멧 내부 렌즈가 빛나면서 내 눈앞이 번쩍거렸고, 불쾌한 두통도 미약하게 일었다.

우우우웅.

현실이 일그러지듯 감각이 붕 떴다.

난 혓바닥을 굴려 입안에 숨겨뒀던 면도날을 혀에 올렸다. 비상시에 통각을 통해 현실로 빠르게 복귀할 수 있다.

‘뭐, 나도 쟈파를 완전히 믿지 않긴 해. 그러니 깨물 면도날도 준비해 둔 거고.’

내 의식은 발렉의 기억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발렉의 기억으로 구성된 신호가 내 뇌를 두드리며 과거를 재현했다.

나는 의식의 초점을 조종해 기억의 시간대를 확인했다. 과거-현재-미래, 그리고 기억의 선명도 순으로 정렬됐다. 강렬한 기억 몇 개를 제외하곤 최근 3년 정도만 볼 수 있었다.

‘……죽기 전의 기억.’

가장 먼저 보인 기억이다.

‘일레이에게 기습을 당했군.’

발렉은 일레이와 그 부하에게 목숨을 잃기 직전의 장면이 보인다. 여기서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

발렉의 실력은 보통내기가 아니다. 그리고 화광자검이라는 두 자루의 무기도 있었다.

‘아무리 기습이라지만…… 발렉이 이렇게 쉽게 당할 사람은 아니야.’

뭔가 내막이 더 있다. 나는 찜찜한 생각을 담아두고선 기억을 정지했다. 가상 시뮬레이션이라도 죽음을 간접 경험하면 내 정신건강에 좋지 않았다.

키이잉.

기억을 뒤로 감아서 과거로 넘어갔다. 시뮬레이션의 세상이 거꾸로 흐르는 느낌이었고, 내 속도 울렁거렸다.

‘정지.’

난 발렉의 시선으로 기억을 보고 있다.

지직, 칙.

잡음과 함께 기억의 풍경이 또렷하게 보였다.

“발렉, 거기에 가만히. 이쯤이 좋겠군. 자네의 눈이 카메라라고 생각하면 돼.”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면도날을 깨물 뻔했다.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는 얼굴과 목소리로 그가 서 있었다.

‘키누안.’

키누안이 발렉을 통해 나를 보고 있었다. 발렉의 시선은 키누안을 자연스레 따라가고 있었다.

똑, 똑.

주변의 배경은 발렉이 죽어있던 동굴이었다.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군. 아, 그래. 지금 이 기억을 보는 사람이 누구일지 몹시 기대돼. 당장 떠오르는 사람만 다섯 명 정도인가?”

키누안은 손가락을 하나씩 접더니 고요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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