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Bad Born Blood Chapter 202

202
라그나타가 휠체어에서 권총을 장전하고 있었다. 그녀가 히죽히죽 웃고 있었고, 탁자에는 다양한 총기가 널려 있었다.

“잘 생각해 봐, 루카 학생. 우린 처음에는 간단한 발차기와 주먹조차 동작 하나하나를 의식하며 교정했어. 그렇게 같은 동작을 반복 숙달하면 그땐 의식하지 않아도 흐트러짐 없이 주먹을 뻗고 발차기를 할 수 있지. 그렇게 우린 기술을 체화하는 거다.”

“말은 그럴싸한데, 발차기와 탄도 예측이 같은 선상에 둘 기술은 아니지 않아?”

나는 구시렁거리며 몸을 풀었다. 신경계가 달아오르는 게 느껴진다.

“약한 소리 하지 마. 우리의 신체 능력은 어떻지? 다른 인간과 우리를 같은 선상에 둘 수 있나? 넌 신경계를 강화했고 의체를 달고 있어. 우린 기존의 인류, 그러니까 정확히 말해서 자연체 인간은 엄두도 못 내는 일도 우습게 해치우는 초인이다. 그쪽의 고정관념을 버리고 창의성을 발휘해 봐.”

라그나타가 장전이 끝난 권총을 들어서 날 겨누었다.

“쓰읍, 젠장, 이건 미친 짓인 것 같은데…….”

“기술의 특이점 이후로 인류의 상상력은 언제나 기술의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어. 빈약한 상상력으로 자신의 한계를 규정하고 넘지 않으려 했지. 상식과 위험 따윈 아랑곳하지 않는 광기만이 그 한계를 깨부쉈다. 그게 진보이고 발전이야.”

“알았으니까, 지루한 수업은 됐어. 방아쇠나 당…….”

난 눈을 크게 떴다. 집중력이 바짝 올라가면서 라그나타의 손톱 갈라짐조차 보일 정도였다.

팅!

손등으로 내 미간으로 오는 총알을 비껴냈다. 정신 나간 훈련 방식이긴 하다. 근위대에서도 이런 짓거리는 하지 않는다. 조금만 실수해도 죽는다.

‘근위대에도 탄도통제술 따위를 연습할 땐 시뮬레이션으로 하지. 통증 내성 훈련도 실제 손상이 아니라 가상 신호를 보내는 거고.’

근위대 생도는 하나하나가 귀한 자원이고 구성원 대다수가 귀족 자제다. 실전 임무도 아닌 훈련에서 죽으면 엄청난 손실이다.

어쨌거나 이딴 정신 나간 훈련의 원리는 지극히 간단했다.

‘고급 응용 기술을 반복 숙달해서 기본기의 영역으로 체화해 끌어내린다.’

수없이 반복하면 의식하지 않아도 기술을 구사할 수 있다. 이론적으론 맞는 말 같긴 하다. 그러나 탄도 예측 같은 기술도 반복 숙달로 체화가 가능한지 의문이다. 라그나타가 가능하다고 하니까 그저 믿을 뿐이었다.

철컥.

라그나타는 휠체어를 움직이고 총기를 바꿔댔다. 온갖 변수를 내 몸에 입력하는 행위였다.

핏!

나는 눈을 찌푸렸다. 팔로 튕겨낸 총알이 내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계산이 엇나간 탓이다.

“집중력이 떨어지고 있군, 루카. 원래 우리의 동작들은 사소한 것조차 많은 양의 물리 연산이 필요해. 그렇지만 우린 그 과정을 생략하고 아무런 연산 부하 없이 가볍게 시행하지. 익숙해졌기 가능한 일이다. 걷기에 익숙해지면 뛸 수가 있듯이, 탄도 예측을 체화한다면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

라그나타가 그리 말하면서 소총의 방아쇠를 재차 당겼다. 그러나 총구의 방향이 이상했다.

등골이 오싹하다. 난 눈을 크게 떴다.

팅!

라그나타는 바닥을 겨누었다. 도탄 사격이었다.

캉!

바닥에 튕긴 총알이 내 옆구리로 날아왔다. 난 팔꿈치로 총알을 튕겨냈다.

“흠, 아깝네. 오늘은 여기까지다. 더 했다간 정말 죽겠군.”

라그나타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소총을 빙글빙글 돌렸다.

‘더 무리했다간 뇌에 손상이 갈 것 같아.’

나도 뇌가 익는 경험을 다신 하고 싶지 않다.

나는 훈련실을 정리하며 라그나타를 슬쩍 보았다. 노화로 인해 약해진 여자다.

‘아무리 강자라도 결국은 쇠약해지는 법.’

난 입술을 달싹였다. 기분이 어떠냐고 그녀에게 묻고 싶었다. 이건 조롱이 아니라 진심이다.

‘자신이 평생토록 쌓아 올린 힘이 모래처럼 손아귀를 빠져나가며 흩어지는 기분.’

나는 견디지 못할 것 같았다. 그때가 언젠가 오리라 생각하니 섬뜩하기 짝이 없었다. 어차피 사라질 거라면 이 모든 훈련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죽음은 두렵지 않아.’

그러나 날 지탱하는 힘을 잃는 건 두렵다. 힘이 없는 나는 무가치한 존재다. 사람들이 무뢰한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이유도 내가 강하기 때문이다.

‘라그나타, 너는 두렵지 않은 건가?’

라그나타의 언행에서는 쇠락의 두려움이 보이지 않았다. 숨기는 걸까, 아니면 정말로 없는 걸까.

나는 입술이 마르는 걸 느꼈다.

“뭘 그리 빤히 보지? 할 말이라도 있는 건가? 고백 말곤 뭐든 괜찮으니 물어봐.”

정신 차린 내가 피식거리며 라그나타의 휠체어를 밀었다.

“고백하기도 전에 차였으니 됐어.”

“싱겁군.”

* * *

‘길거리에 주워온 고양이도 이것보단 신경 쓰겠습니다.’

나는 쟈파의 일갈이 생각날 때마다 보얀의 방을 방문했다. 내 책임 아래에 있는 녀석이니 관리는 해야겠지.

보얀은 크롤러답게 회복을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내게 얻어맞아 반송장이 됐던 게 거짓말 같았다.

“공부 중이로군. 나중에 오지.”

난 보얀의 책상에 펼쳐진 홀로그램과 책을 보며 말했다.

“아, 아뇨. 괜찮아요. 지금 쉬고 있었어요.”

나는 홀로그램과 책의 글자를 힐끗 보았다. 꽤 어려운 내용처럼 보였다.

“흠, 으음, 어, 그래. 학업은 할만하고?”

내가 내뱉고도 한심하기 짝이 없는 말이었다. 그래도 고민하고 내뱉은 거다.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이번에 시험을 쳐봐야 알 것 같아요.”

시험을 앞둔 모양이다. 난 오래 있을 생각이 없기에 자리에 앉진 않았다.

“뭐, 넌 머리가 좋고 열심히 하니까 괜찮을 거다.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해. 어지간하면 쟈파가 다 챙겨줄 테니까.”

“지금도 충분히 좋은 지원을 받고 있어요. 더 필요한 게 없을 정도로요. 그리고…….”

“그리고? 뜸 들이지 말고 말해.”

“이런 말을 해도 될진 모르겠는데…… 요즘 루카 씨의 얼굴이 많이 좋아졌어요. 예전엔 엄청 우중충했거든요.”

보얀이 그렇게 느낄 정도면 다른 사람도 알 터다. 쟈파 등등이 뒤에서 수군수군하며 웃고 있었겠군. 음, 괜히 열이 받는다.

내 상태가 호전된 이유는 여럿이다. 난 공격성을 가라앉힐 정도로 만족할 만한 연전을 치렀고, 라그나타를 조언자로 둠으로 심리적 안정감도 얻었다. 앞으로 일레이와 접촉한다면 더 많은 정보를 얻게 될 거라는 기대도 있었다.

난 손을 뻗어서 보얀의 머리를 쓰다듬듯이 툭툭 쳤다.

“눈썰미가 제법 좋구나.”

나는 짧은 대화를 마치곤 보얀의 방에서 나왔다. 부지런히 공부하는 녀석의 시간을 빼앗고 싶진 않았다.

* * *

발렉의 뇌에서 기억을 추출하는 동안, 평온한 일상은 반복됐다. 물론 라그나타가 쏴대는 총알을 쳐내고 피할 때는 평온하지 않았다.

-분석 단계를 마쳤습니다. 아키에스 빅티마 사용자답게 정보 추출이 용이하진 않더군요. 하지만 늦어도 2주 이내로 끝날 겁니다.

난 쟈파가 보낸 메시지를 확인했다. 늦어도 2주면 발렉의 기억 추출이 끝난다. 일레이와의 약속까진 기간에 여유가 있었다.

나는 복도를 걷다가 걸음을 멈췄다.

‘보얀?’

보얀이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는 예민한 감각을 가진 크롤러다. 그런데도 어딘가에 정신이 팔린 듯이 맞은편의 나를 눈치채지 못했다.

“음, 아, 루카, 루카 씨.”

보얀은 뒤늦게 날 알아보곤 당황했다. 상당히 초췌해 보였다. 눈빛도 흐릿했다.

“야, 혹시 누가 또 너를…….”

“아뇨, 아뇨! 그건 절대로 아닙니다!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서 아무도 절 건드리지 않아요.”

보얀이 기력을 짜내며 말했다. 난 팔과 어깨를 으쓱했다.

“뭐, 그럼 다행이고. 왜 그렇게 힘이 없어?”

“생, 생각보다 시험이 어려워서요. 첫날이라서 긴장했나 봐요.”

“첫술에 배부르긴 힘들지.”

난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그러나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는 보얀의 등이 계속 신경이 쓰였다.

‘만약…….’

내 기우가 사실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나는 보얀이 사옥에 돌아올 시간에 1층 로비나 복도를 배회했다. 이번에도 로비에서 음료를 마시며 멀찌감치서 보얀을 관찰했다.

보얀의 어깨는 하루가 다르게 축 늘어지고 있었다. 표정도 몹시 안 좋았다. 아이의 사정이라 치부하며 무시하기 힘들 정도였다. 난 저런 표정이 언제 나오는지 알고 있다.

‘절망적 상황.’

보얀이 절망에 부딪힐 거라곤 나도 예상했다. 그러나 그 시기가 지나치게 빨랐다.

삑.

내가 귓가에 손을 대며 단말기 통신을 열었다. 곧 쟈파의 목소리가 들렸다.

-흐음, 무슨 일로 먼저 연락하시는 겁니까?

“잠깐 이야기할 게 있다.”

-지금 집무실로 올라오시면 됩니다. 루카 씨를 위해서라면 시간을 얼마든지 낼 수 있죠, 호욧.

“아니, 만나서 할 정도의 이야기는 아니야. 보얀에 관해서다.”

쟈파도 뭔가 짚이는 게 있는지 침묵했다.

-말씀하시죠.

“크롤러가 공부와 학업에서 다른 종족을 따라잡을 수 있긴 해?”

-호요요요……. 일단 단언하자면, 매우 어렵습니다. 보얀은 크롤러 중에서는 학업 능력이 뛰어난 편입니다. 문제는 어디까지나 크롤러 중에서 그렇다는 거죠.

“하지만 지능의 격차가 있는 것 같진 않아. 어디서 차이가 나는 거지?”

-기질적 문제입니다. 크롤러는 사냥꾼과 전사의 뇌를 가지고 있습니다. 보얀이 이질적인 개체라고 해도, 학업 성취 능력이 다른 종족의 평균 이하일 수밖에 없죠. 지적 호기심이 많아도 학습 능력이 받쳐주지 못하는 겁니다. 혼자서 무거운 족쇄를 차고 뛰는 셈이니까요.

또 기질이라는 말이 나오는군.

“보얀의 학교는 상류층 수재들이 모인 곳이니 그 차이를 더 크게 느끼겠군. 넌 이미 예상한 일이지?”

-저도 제 예상이 틀리길 바랐습니다. 누가 봐도 명석한 아이였으니까요. 그러니 보얀도 이렇게 차이가 날 줄은 몰랐을 겁니다.

난 쟈파와의 통신을 끊었다.

“하아…….”

가슴 깊은 곳에서 한숨이 나왔다.

‘난 내 기질과 재능이 맞아떨어졌다. 대부분 사람은 그렇겠지. 기질과 재능이 같이 가는 법이니까.’

하지만 간혹 예외가 이렇게 있었다.

‘그런 상황에선 대개 현실과 타협하지.’

난 보얀이 원한다면 싸우는 법을 가르쳐줄 용의가 있었다.

‘……그러나 전사의 삶을 살겠다면, 여기까지 아등바등 기어온 이유가 없다. 그간의 삶을 부정하는 거야.’

어려운 일이다.

나는 천천히 일어나서 보얀의 방이 있는 층으로 올라갔다. 손님용 객실이 있는 층인지라 복도는 고요했다.

쾅!

보얀의 방에서 굉음이 퍼졌다. 그리고 가재도구를 부수는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분을 이기지 못한 보얀은 감정을 바깥으로 쏟아내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라도 감정을 분출해야겠지. 크롤러가 아니라 다른 종족이라도 이럴 거다.’

복도 벽에 등을 기대며 기다렸다. 5분여가 지나자 파괴가 멎었는지 소리가 잠잠해졌다.

나는 보얀의 방으로 들어갈까 말까 고민했다.

“끄윽, 끕, 아, 아, 아아, 끄아아아아…….”

보얀의 절규가 바깥으로 새어 나오고 있었다.

막상 문을 열더라도, 보얀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실리적 조언은 없었고, 비꼬는 건 잘해도 감정적 위로 따윈 할 줄 모른다.

문 앞에서 고민하던 나는 발걸음 돌려 자리를 떴다. 이게 겁쟁이 같은 행동이라는 건 나도 안다.

그러나 문을 열고 이야기한다면 나는 보얀에게 더 큰 상처를 줄 것이다. 난 글러 먹은 인간이니까,

젠장. 이것도 변명이로군.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나도 여유가 없다. 난 곧 일레이와 마주해야 한다. 그 뒤에는 제국이 있을 수도 있다. 보얀에게 신경 쓸 겨를이 내게 어디 있단 말인가.

Join our Discord for the latest updates and novel requests - Click here!

Comment

0 0 votes
Article Rating
Subscribe
Notify of
guest
0 Comments
Oldest
Newest Most Voted
Inline Feedbacks
View all comments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