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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d Born Blood Chapter 199

199
나는 라그나타를 짊어진 채로 숲을 걸어갔다. 쟈파가 물어온 정보에 따르면, 발렉은 숲 안쪽에 머물고 있다고 말했다.

걸어가는 동안, 라그나타는 ‘변이체’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어떤 특수한 환경과 조건이 맞아떨어지면, 노바스 행성에선 생물이 통상적인 형태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생기지. 처음에는 나도 그게 희귀한 종의 생물이라고 생각했으나…… 변이라는 걸 알게 됐다.”

나는 이야기만 들으며 입을 다물었다. 짚이는 게 있었다.

진가우의 연구소에서 봤던 쥐의 변이 과정이 떠올랐다. 진가우는 홀리스톤의 에너지를 생물에게 투사해 변이를 일으켰다.

노바스 행성에선 종종 특이한 생물 개체가 발견된다. 외피와 내장이 금속질인 기계수도 그 일종이었다. 그 변이들은 고대문명 아케인과 홀리스톤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 앞을 조심해라, 육식 식물이다.”

“그건 나도 알아. 뼈가 대놓고 널렸잖아.”

난 걸음을 멈췄다. 발바닥 아래로 불쾌한 진동이 일었다.

휙.

내가 뒤로 가벼이 물러났다. 뾰족한 촉수가 내가 있던 자리로 치솟았다. 그 자리에 있었다간 엉덩이부터 목구멍까지 꿰뚫렸을 것이다.

‘나무뿌리가 생물처럼 움직이는군.’

나는 나무뿌리를 잡아채서 부러뜨렸다. 표면은 나무 같은데 속살은 생물처럼 부드러웠다. 묽은 수액이 혈액처럼 철퍼덕 튀었다.

“그 육식 식물도 변이의 일종이지.”

“그냥 이런 종류의 육식 식물이 따로 있는 게 아니고?”

내가 화광예도를 뽑아서 바닥을 푹푹 찔렀다. 땅이 들썩이면서 뿌리 촉수가 후퇴하고 있었다.

“초기 정착민들이 노바스 행성의 생태환경을 모를 때는 그렇게 생각하기도 했지. 하지만 조사와 연구가 진척된 지금은 생태학적으로 이상한 동식물을 구분할 수 있어. 자연스러운 동식물은 환경에 맞게 기능이 발달하고 그에 따른 형태를 가지지. 반면에 변이체는 갑작스럽고 이질적이야. 까마득한 시간을 거쳐 생태에 녹아든 생물들과는 엄연히 달라.”

“그런가?”

난 생태학자가 아니니 바로 이해하긴 힘들었다. 라그나타가 웃더니 선생처럼 설명했다.

“예컨대, 방금 널 습격한 뿌리 촉수를 봐봐. 사냥을 위해 다른 식물의 뿌리마저 파괴하며 땅을 헤집지. 일반적인 식물은 저 육식 식물이 있는 땅에선 궤멸할 거다. 실제로도 이 주변의 나무들만 유독 앙상하지. 머지않아 이 근처에는 저 육식 식물 종만 남을 거고, 자연스레 이질감을 느낀 먹잇감도 여길 오지 않겠지.”

라그나타 선생의 수업은 꽤 재밌었다.

“그러면 저 육식 식물도 굶어 죽는 게 아니야?”

“그대로 굶어 죽거나, 다른 생존방식을 터득해 살아남겠지. 아니면 또 다른 변이를 겪는다던가 말이야. 어쨌든 주변 환경을 황폐하게 파괴하며 살아가는 건 정상적인 동식물의 특성이 아니다. 그런 방식으론 종이 수만 년, 수십 만년에 달하는 시간을 버티며 살아남지 못하거든.”

난 눈앞의 육식 식물을 응시했다. 그 밑엔 흙과 낙엽으로 가려진 뼈들이 듬성듬성 거름처럼 있었다.

“주변 환경을 파괴하며 살아가는 게 비정상이라면…… 지성체 대부분은 정상이 아니라는 소리인가? 나고 자란 모성의 환경을 파괴하고 이주한 종족들도 많잖아.”

난 학생답게 질문했다.

“……그렇기에 지성이란 부자연스럽지. 지성이란 죄악의 과실이다. 우주적 관점으로 보자면 지성체들은 극단적인 이기주의자에 불과해. 고향의 쇠락과 함께 멸망해야 할 종족들이 성간비행이란 마법을 얻어 끝없이 이주하며 파괴의 여정을 계속했지.”

라그나타는 나도 알아챌 정도로 강렬한 감정을 뿜었다. 이 부분은 그녀의 사견이 듬뿍 담긴 말이었다. 덕분에 나는 라그나타라는 인간에 대해 좀 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전쟁이 일어나든 말든 알 바가 아니라고 말한 건가? 전쟁이 일어나 지성체들이 죽어 나가고 나아가 공멸한다면 노바스 행성의 생태에 이득이 될 테니까?”

나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라그나타가 웃었다.

“날 극단적인 환경주의자로 여기는구나, 꼬마야. 나도 거기까지 생각하진 않았다. 참고로 그때 받은 착수금만으로 세운 게 이동학교다. 실패해서 잔금은 받지 못했지만 말이야.”

“흠, 속된 말로 돈을 떼먹은 거잖아. 이번에도 넌 실패했지. 암살자라는 게 이렇게 자주 실패해도 되는 일인가? 나도 이참에 암살자로 전업이나 해볼까 싶네.”

내가 빈정거리며 식인 식물을 지나쳤다. 화광예도로 불이라도 지를까 싶었지만, 연기가 나면 눈에 띌 터다.

“보통 암살에 실패하면 죽긴 하지. 누구에게든 말이야. 내가 살아남은 건 간단한 이치다. 난 강했으니 다음 의뢰도 받을 수 있었지. 날 적으로 만들어서 좋을 건 없으니까.”

강자는 다른 사람이 지켜야 하는 규칙을 어길 수 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권력과 힘을 탐한다.

“그렇다면 내게 붙잡히지 않았어도 의뢰에 실패한 너는 죽었겠군. 이젠 약해졌으니까.”

라그나타는 주름진 미소를 띠며 고개를 저었다.

“내가 약해진 걸 아는 사람은 없어. 은퇴하고 심심풀이로 소일거리나 맡는다고 생각하며 아직 날 두려워하고 있지.”

라그나타가 과거에 그 바닥에서 얼마나 명성을 떨쳤는지 알만한 대목이었다. 라그나타가 임무에 실패하더라도 쉬이 건드리지 못한다.

‘하기야 그러니까 황태자 암살이라는 의뢰까지 들어온 거지.’

실패했더라도 전설적인 행보였다. 그녀는 제국의 심장까지 들어와 황태자를 습격하고도 살아남았다.

나는 계속 걸어갔다. 숲인지라 날이 빨리 어두워지고 있었다. 벌써 숲의 바닥은 음지였다.

‘이 숲은 아케인 유적이나 홀리스톤과 연관이 있을 거다.’

일레이 카르티카가 생각났다. 녀석이 여기에 있다면 라그나타와 신나게 떠들어댔을 것이다.

지나가다 보니 군데군데 오래된 야영의 흔적이 보였다.

“사냥꾼이 왔다 갔군. 요즘 학자들의 의뢰를 받아 변이체를 사냥하고 생포하는 게 젊은 노마드 사이에서 유행이라고 들었거든.”

“암살자보단 건전하네.”

쟈파도 노마드 사냥꾼에게 수소문해 발렉의 정보를 얻어낸 것일 터다.

‘발렉은 원래 노마드 출신이다.’

난 쟈파에게 받은 신상정보를 되뇌며 정리했다. 그래서 발렉이 보더시티 바깥, 그렇지만 멀진 않은 곳에서 숨어 있을 거라 판단했다.

‘지하동굴.’

난 눈을 가늘게 뜨며 자세를 낮췄다. 발렉이 머물고 있다는 지하동굴이 보였다. 정상인이라면 꺼림칙해서 들어가기 싫어하는 장소다.

얼핏 보기엔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연스러워 보이는 풍경 속엔 살벌한 함정이 있을…….

“먼저 온 손님이 있군.”

라그나타가 중얼거렸다. 나도 지하동굴 근처의 함정들이 해제된 걸 발견했다.

저물어가는 석양빛이 희미하게 나뭇잎 사이로 비칠 때마다 끊어진 실이 흐릿하게 반짝거렸고, 파손된 센서와 조그마한 기계장치가 바위틈에 있었다.

난 가까이 접근했다. 지하동굴의 입구는 좁았다. 내부의 구조가 어떨지는 예상이 힘들다. 사람 하나 겨우 지나다닐 정도일 수도 있다. 몸을 웅크려야 겨우 지나갈 통로라도 있다면 라그나타가 무척 걸리적거릴 것이다.

‘거기다가 먼저 온 자가 있다, 발렉이 아닌 제삼자.’

어쩌면 ‘키누안’일 수도 있다. 나는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듯한 착각마저 일었다. 척수액으로 냉매로 바꾼 것처럼 머릿속이 시렸다.

“날 여기에 놔두고 진입하는 게 좋을 거다.”

라그나타가 말했다. 나도 똑같은 판단을 내렸다.

스륵.

그러나 나는 라그나타를 짊어진 채로 지하동굴로 진입하려 했다. 라그나타가 어깨를 떨며 웃어댔다.

“날 혼자 놔두면 죽을까 봐 걱정하는 거냐?”

“아니, 여차하면 안쪽으로 미끼 삼아 던져서 안전을 확인하려고. 적이 있으면 소리를 질러.”

평소라면 농이 더 이어졌을 터다.

하지만 우린 입을 닫고 침묵했다. 동굴은 목소리가 울린다.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지하동굴은 어두워지다가 이내 옅은 빛조차 사라졌다. 빛의 상실은 내게 큰 문제가 아니었다. 종유석의 물방울이 떨어질 때마다 소리가 부딪히며 청각 시야로 보였다.

기잉.

나는 걸음을 멈췄다. 통로가 넓어지는 구간이 있었다. 소리의 반사각에 귀를 기울이니 더 안쪽에는 큰 공동이 있었다. 돌이 아니라 금속과 목재에서 부딪힌 반향음도 드문드문 섞였다.

‘저기에 발렉의 거처가 있다.’

난 더 구체적으로 보기 위해 집중했다. 소리에 좀 더 귀를 기울이자. 감각을 확장하고 뇌를 써라.

……젠장, 청각 시야 사용을 자주 해둘 걸 그랬다.

예전보다 범위가 좁고, 시야 테두리가 선명하지 않았다. 저 너머로 뭔가 움직이고 있는데 그 형체가 정확하게 보이지 않았다. 내부 상황을 알기 힘들었다.

툭.

라그나타가 내 어깨를 치더니 수신호를 보냈다. 나는 그녀의 의도를 읽어냈다.

‘나를 저쪽으로 던져라. 시선이 몰릴 테니 그때 움직여 습격해.’

라그나타가 자신의 생각을 내게 전달했다.

난 농담으로 그녀를 미끼로 던지겠다고 말했으나, 라그나타는 내 농을 실제로 실행하려고 했다.

그렇다면 나도 받아들일 뿐이다. 위험에 빠뜨릴 수 없다는 그딴 소리를 하지 않는다. 라그나타가 죽는다면 본인이 객기를 부린 것이다.

스륵.

난 라그나타의 손목에 묶인 구속을 풀었다. 애초에 형식상 구속이었다. 그녀가 마음만 먹었다면 어떻게든 풀어냈을 것이다.

‘가라, 라그나타.’

나는 더플백 채로 라그나타를 안쪽으로 멀리 내던졌다.

툭!

더플백이 안쪽으로 떨어지면서 각종 소음이 동시에 일었다. 철컥, 철컥하는 쇳소리가 사나웠다.

나도 동시에 안으로 들어갔다. 발걸음 아래로 새어 나올 것 같은 소리는 구부린 발가락으로 짓눌러 삼켰다.

끼릭, 끼릭, 철컹.

여러 잡음이 섞였다. 난 옅은 소리와 흔적으로 환경 정보를 차근차근 머릿속에 입력했다.

‘여긴 생활 공간이다.’

침대부터 식탁, 의자 같은 가구와 자질구레한 물건들이 공동 내부에 있었다.

탕!

라그나타를 향한 총성이 퍼졌다. 소리가 사방팔방 울리면서 중첩됐다. 빛도 한순간 퍼졌다.

그 찰나에 모든 게 명확하게 보였다. 총성의 울림이 커서 청각 시야는 시각처럼 깨끗했다.

‘정체불명의 침입자는 두 명. 완전무장한 자들이다. ’

라그나타는 바위 쪽으로 몸을 웅크렸다.

휘릭!

라그나타가 팔만으로 몸을 세우더니 그대로 바닥을 때리듯 뛰어올랐다. 그녀가 벌 수 있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나는 라그나타에게 이목이 쏠린 틈을 타서 침입자들에게 접근했다. 한 명은 날 눈치채지 못했다.

그러나 다른 하나는 곧장 내 접근을 알아채곤 기가 막힐 정도로 빠르게 대응했다.

철컥, 쾅!

총성이라고 믿기 힘든 굉음이 퍼졌다. 귀가 아플 정도였다.

난 가까스로 고개를 틀어서 사격을 피했다. 그런데도 내 머리카락이 그을렸다.

이글거리는 잔열을 느낀 내가 눈을 크게 떴다.

‘권총으로 작렬탄을?’

불꽃이 내 뒤쪽에서 폭발했다. 난 똑같은 화력을 본 적이 있었다.

날 사격한 자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의아해했다. 어떻게 피했는지 궁금한 듯했다. 전신 전투복을 착용하고 있어서 놈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키이잉!

내가 화광예도를 뽑은 채로 적들과 마주했다. 2인조의 침입자는 라그나타에게 신경 쓰지 않고 나를 쳐다봤다.

난 입술이 씰룩거리는 걸 참기 힘들었다. 적은 낯익은 무기를 들고 있었다. 딱 한 번만 본 게 전부지만 인상이 깊어 기억하고 있다.

“일레이냐?”

작렬탄을 쓰는 권총은 일레이의 전용무기였다. 무장헬기 습격 때에 본 적이 있었다. 총신도 똑같이 길었다.

“……루카?”

일레이가 내 말에 반응했다. 그리곤 일레이 옆에 있던 자도 움찔했다. 상당히 놀란 듯했다.

“설마, 루카우스 쿠스…….”

그는 말을 마치지 못했다.

푹!

일레이가 쏜살같이 움직였다. 그는 동료의 머리를 잡으며 단검으로 턱밑을 찔렀다. 뇌를 찢은 칼날의 끝이 정수리로 튀어나왔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싸늘한 대응이었다. 일레이는 날 알아보자마자 동료를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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